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원지로, 현재 ‘봉쇄’ 상태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우리나라 교민을 태워 올 대한항공 전세기 KE9883편 보잉747 여객기가 30일 저녁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하고 있다. 이 여객기는 우한에서 교민 360명가량을 태우고 31일 오전 김포공항으로 들어온다. 인천공항/공동취재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가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대응에 혼선을 빚고 있다. 특히 이번 감염증의 발원지로 ‘봉쇄’ 상태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발이 묶인 교민 철수를 위해 30일 출발하려던 전세기 운항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애초 정부는 30~31일에 걸쳐 전세기 두 대를 하루 두 편씩 보내 우한 교민 720명을 귀국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중국과 협의 과정에서 한나절 이상 출발이 지연됐고, 전세기도 하루 한 편으로 축소됐다. 이는 정부가 중국과 최종 합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귀국시키는 방침을 발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이 민심을 고려해 외국 정부들이 우한에 전세기를 대거 보내 ‘대탈출’이 빚어지는 모양새를 피하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 현지 교민 철수 준비 상황이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실시간 중계되다시피 한 점이 중국에 부담을 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민들을 안전하게 데려오는 게 목표라면, 최대한 신중하고 치밀한 준비와 함께 어느 정도의 보안 유지도 필요했는데 너무 성급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전세기가 덜 드러나는 밤이나 새벽에 조용히 이륙하는 방안을 선호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우한에서 전세기로 교민을 귀국시킨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이다. 일본은 이를 ‘성과’로 자랑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중국과 먼저 협의를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국력과 외교력도 작용했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과 협의하는 과정이 이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도, 정부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중심으로 전날 전세기 운항 계획을 자세히 발표했다. 지난 20일 첫 국내 확진자가 나온 지 일주일 만인 27일 출범한 중수본에는 외교부가 포함돼 있지 않다. 복지부 쪽은 “현재 중수본이 꾸려진 지 얼마 안 돼 과도기적 단계여서 부처 인력 파견이 다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입국 교민들이 14일 동안 지낼 임시 생활시설을 어디로 할지를 두고서도 혼선이 생겼다. 외교부는 28일 기자들에게 사전 보도 참고자료를 돌리면서 충남 천안의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을 넣었지만, 실제 장소는 하루 만에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바뀌었다. 언론들은 이를 근거로 격리 장소를 보도했고, 해당 지역 시민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정작 같은 날 열린 관계장관 회의에서는 소재지가 최종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국의 국립 교육연수시설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 쪽은 “(보도자료에 왜 천안이 명기됐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강립 복지부 차관은 30일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역사회에 상당한 불만과 혼선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29일엔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발열 등 의심 증상이 있는 우한 교민도 전세기에 태우겠다는 방침을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으나, 이날 오후 중수본은 다시 증상이 없는 교민만 중국 출국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같은 신종 전염병으로 인한 두려움과 사회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정보를 전해야 한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협력을 하되, 정부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관성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전염병 관련 정책은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정부 정책이 엇박자를 내는 모양새를 보이면 반발을 키우고 신뢰도도 떨어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28일 질병관리본부가 국내 네 번째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을 172명이라고 발표하기 직전, 경기도 평택시는 96명이라는 다른 통계를 내밀어 혼선을 빚었다.
박현정 박다해 박민희 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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