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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5년째 준공 못한 내집, ‘강탈자들의 성’이 됐다

등록 2020-02-20 04:59수정 2020-02-20 09:20

[현장] 서울 한복판 주상복합에 무슨 일이
‘공정률 90%’ 신림 가야위드안
용역들, 시행사 비리 공백 틈타
편법 법인 동원해 점거·불법 임대
분양 받은 사람 내쫓아도 무방비

눈앞에서 현관문 뜯고 쳐들어와 ‘살벌한 주인행세’
“괴한들이 느닷없이 집 비우라 해”
시행사 대표 구속 뒤 용역과 결탁 ‘미완공 땐 소유권 없다’ 허점 이용
문짝 떼어가고 번호키 바꾸는 등 60가구 ‘강탈’ 등 건물 대부분 장악
내집 뺏긴 최씨 “월셋집 살며 식당 일”

주민에 경고하듯…화단엔 일본도
점거세대·상가 등은 불법 임대사업
수익은 ‘폭력조직 운영비’ 사용 정황…임차인도 권리금 등 몽땅 날릴 판
서울 신림역 주위엔 주상복합 건물들이 즐비하다. 숱한 자취생과 상인들이 이곳을 보금자리 삼아 삶을 일군다. 그러나 우후죽순 솟은 주상복합 건물들 사이에 ‘무방비도시’가 있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내 돈 주고 산 집에서 느닷없이 쫓겨나고, 불현듯 괴한들이 침입해 내 집 문짝을 떼어가는 일이 벌어지는 곳, 신림역 5분 거리의 가야위드안이다. 240여 세대를 품을 수 있는 이 10층짜리 재건축 건물은 5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7일과 18일 두 차례 가야위드안을 찾아 관계자들에게 지난 5년간 이곳에 벌어진 일을 들어봤다.

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상복합아파트 가야위드안에서 주민순찰대가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확인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상복합아파트 가야위드안에서 주민순찰대가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확인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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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단도가 널린 아파트의 비밀

‘전쟁터’의 외관은 평범했다. 1층엔 오는 5월 중형 마트가 입점할 것이란 펼침막이 크게 내걸려 있었다. 페인트를 바른 지 몇 년 되지 않은 옥색 외벽은 단정한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부르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몇 발자국만 들어가면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외국 여성들이 접대한다고 알려진 유흥업소 간판이다. 지하 1층엔 슬롯머신이 돌아가는 오락실이 입점해 있다. 이런 오락실이 10층짜리 건물 안에 4곳이나 자리잡았다.

멀끔한 건물의 외관과 달리 내부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폐가처럼 흉흉하다. 층마다 자리잡은 전기 설비실의 문이 있던 자리엔 용접으로 뜯어낸 흔적이 뚜렷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문짝엔 호수가 없어, 매직으로 적어놓거나 하얀 종이에 숫자를 인쇄해 임시방편 격으로 붙여놓았다. 검은 스프레이로 아무렇게나 도색된 문짝에는 ‘불법점유’한 이들에게 물러날 것을 명하는 ‘경고장’이 붙어 있기도 했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가야위드안 전경. 전광준 기자.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가야위드안 전경. 전광준 기자.

가야위드안 지하에 위치한 성인 오락실. 안에는 슬롯머신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 전광준 기자.
가야위드안 지하에 위치한 성인 오락실. 안에는 슬롯머신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 전광준 기자.

그나마 이날은 가야위드안이 잠시 ‘안정’을 찾은 뒤였다. “저기 화단 보이시죠? 한달 전 순찰하다가 화단 풀숲 사이에서 일본도를 발견했어요.” 7일 만난 공병호 가야위드안 주민자치위원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 위원장은 “옥상에서는 지난해 10월에 단도를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건물을 지배하는 살벌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건 ‘용역’들이다. 이 건물이 용역직원의 탈을 쓴 ‘폭력조직원’들에 장악됐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각층 복도마다 3개씩 매달린 폐회로텔레비전(CCTV)도, 한때 이곳에서 세력 다툼을 벌였던 여러 조직들이 남긴 흔적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폭력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용역들의 패악질을 막기 위해 자경단을 꾸려 하루 세 차례 순찰을 돌고 수상한 일이 있으면 신고한다.

올해 가야위드안 화단에서 발견된 일본도. 주민 제공.
올해 가야위드안 화단에서 발견된 일본도. 주민 제공.

‘강탈’을 위해 용역 세력이 부순 현관문. 주민 제공.
‘강탈’을 위해 용역 세력이 부순 현관문. 주민 제공.

‘용역’들은 지난 2016년부터 지하 2개층 상가와 지상 2개층 상가, 8개층 오피스텔을 포함해 가야위드안의 240여 가구 가운데 160여 세대를 하나하나 ‘점거’했다. 준공 뒤에 분양 계약을 맺은 이들이 입주해야 할 곳 또는 미분양된 곳을 무단으로 점유한 것에 가깝다. 준공도 떨어지지 않은 건물에서 이들이 보증금과 월세, 관리비를 받으며 ‘불법 임대사업’을 벌여왔다. 100여 세대는 미분양된 곳을 점거한 것이지만 60여 세대는 분양받은 이들로부터 갖은 방법을 동원해 ‘강탈’한 곳이다. 주민들은 이를 ‘강탈세대’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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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탈세대’, 현관문 떼어가고 번호키 바꿔 무단점거한 용역들

남대문시장에서 평생 재봉틀을 돌려 모은 돈으로 가야위드안 923호를 분양받은 최윤석(63)씨도 집을 ‘강탈’당했다. 15평(49.6㎡) 크기의 작은 아파트에 투자한 1억8천만원은 최씨 부부의 전재산이었다. 입주를 앞두고 923호를 찾은 2016년 2월27일, 최씨는 눈앞에서 집을 빼앗겼다. 덩치가 산만한 남자 7명이 찾아와 “집을 비우라”며 거실에 들어앉았다. 놀란 최씨가 잠시 밖에 나와 기다리는 사이 괴한들은 현관 번호키를 바꿨다. 경찰에 신고해도 “준공이 안 된 건물이라 분양금을 완납했어도 소유권이 없어 보호해줄 수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노후자금을 쏟아부은 923호의 문을 최씨 부부는 끝내 열지 못했다. 전세금조차 새로 마련할 수 없는 최씨 부부는 현재 충북 제천에 내려가 월셋집에 살며 식당 일을 하고 있다. 최씨의 집이 되어야 할 923호에선 다른 이들이 용역들과 계약해 살고 있다. “어려서부터 소아마비가 있어서 아내와 남의 집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번 돈이에요. 이것마저 잃으면 삶이 의미가 없어지지 않겠어요?” 최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가야위드안은 공정률이 90%에 머물러 있는 미완성 건물이다. 2010년 재건축의 첫 삽을 떴지만 2014년 시행사인 남부중앙시장 대표 정아무개씨가 공무원에게 재건축 관련 뇌물을 주고 분양대금 37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1년10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공사가 무기한 중단됐다. 준공되지 않은 건물은 분양금을 완납한 주민이라도 법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이처럼 비리로 생긴 법적 공백에 ‘용역세력’이 들이닥쳤다.

616호를 분양 계약한 김기창(61)씨도 결혼하는 아들에게 집을 물려줄 계획이었다. 가야위드안 관리업체에도 이를 통보했다. 주차를 위해 차 번호까지 등록을 마친 뒤였다. 하지만 2017년 3월 가야위드안을 찾았을 때 616호에선 개 세 마리와 함께 젊은 남녀가 살고 있었다. “112에 바로 주거침입으로 신고했죠. 그런데 주거침입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등기에는 내 이름이 없었으니까요.” 관리업체로부턴 “억울하겠다. 다른 사람에게 따져라”라는 말만 돌아왔다. 갑작스레 집을 날려버린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진 김씨의 아내는 암을 얻어 투병 중이다.

용역 세력의 외피는 아민산업개발이라는 법인체다. 시행사 대표 정씨가 감옥에 간 뒤 사실상 ‘무주공산’이 된 가야위드안을 장악하려 남부중앙시장 임직원들이 편법으로 대표를 세우고 용역세력과 손잡아 세운 회사다. 준공검사 전 입주는 불법이지만 인테리어를 뺀 공사가 대부분 마무리된 만큼 불법 임대사업을 강행하려 한 것이다. 아민산업개발이 관리를 맡게 되면서 이들이 고용한 용역세력이 주민들을 상대로 전횡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공사를 마무리하려던 시공사마저 2016년 2월 용역세력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쫓겨났다.

주민들은 “아민산업개발의 실세들은 공사 중단 현장들만 찾아다니며 상습적으로 불법점유해 돈을 버는 이들”이라고 주장한다. 아민산업개발에서 급여를 받는 이 중 한 명인 김아무개씨는 2018년 명도집행 현장에서 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공병호 주민자치위원장은 “이들이 서울 구로구, 인천,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가야위드안에서와 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들이 기존 입주자들을 내모는 방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추운 겨울 현관문을 드릴로 떼어내거나, 지병 때문에 집주인이 약국에 간 사이 문을 따고 들어와 집을 차지한 적도 있다. 분양 계약자에게 임대를 받은 임차인이 살고 있을 경우, 용역 세력은 ‘회유’를 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미리 점유한 집으로 이사하면 보증금을 더 싸게 해주겠다고 설득해 이사를 시킨 뒤, 빈 집을 강탈해 또다른 이에게 임대를 줬다는 것이다. 주민 박찬빈(55)씨는 “임대를 줬던 주민들이 ‘왜 마음대로 사람을 들이냐’고 항의하면 용역들은 월세를 절반 나눠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두달이 지난 뒤에는 용역들이 월세 전부를 가져가곤 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강탈세대’에 포함된 주민들은 준공이 완료된 뒤에는 완납한 분양금을 바탕으로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반면, 아민산업개발로부터 집이나 상가를 빌린 임차인들은 준공 뒤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2018년 지인의 소개로 가야위드안 내 상가를 임차한 ㄱ씨는 자신에게 상가를 임대하고 월세와 관리비를 받아가는 아민산업개발에 법적 권한이 없다는 걸 1년 만에야 알았다. 권리금과 보증금을 5000만원 가까이 투자했지만 받아낼 방법이 없다는 걸 뒤늦게 안 것이다. ㄱ씨는 “다른 곳보다 싼 데다 지인 소개라 의심없이 들어왔다”며 “분양 계약을 한 주민들도 피해자지만 우리 같은 사람도 피해자”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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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액만 수십억원, 피해자 100여명…무방비도시 정상화는?

아민산업개발이 임차인들에게서 걷어간 보증금과 월세, 관리비는 조직 운영비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아민산업개발이 임차인들에게서 입금을 받은 ‘임대료 계좌’를 보면, 가야위드안에서 활동하는 용역들에게 적게는 150만원, 많게는 천만원 넘는 돈이 한달에도 수차례 지급됐다. 같은 통장에서 폭력조직 ‘군산 그랜드파’의 우두머리로 알려진 전아무개씨에게 2016년 12월 400만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간 기록도 있다. 주민들이 군산 그랜드파라는 폭력조직과 용역들의 밀접한 관계를 주장하는 단서 중 하나다. 용역 중 한 명이 주민들에게 “군산 그랜드파”라고 소속을 밝히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야위드안 사태의 피해액은 수십억원대, 피해자는 100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아민산업개발과 남부중앙시장 전 관계자 등 5명은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됐다.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점거 중인 부동산에 대한 명도소송 등 40~50건의 민사소송도 제기돼 있다. 피해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맡은 이진화 변호사는 “100여가구를 임대해 발생하는 수익만 월 7천만원에서 1억원 정도다. 2016년부터 발생한 불법 수익만 수십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아민산업개발 관계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 “합법적으로 사업을 운영했다. 집을 강탈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폭력조직과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씨에게 돈을 보낸 적은 있으나 채무 변제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주민들은 경찰의 미온적 태도도 비판했다. 2016년부터 112신고 등을 통해 100차례 이상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준공 전인 건물을 점유하고 있으니 양쪽 다 건축법을 위반한 상황이어서 경찰로서도 폭력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뾰족한 수가 없다. 서울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서로 이해가 얽혀 있는 민사적 관계여서 법원 판단이 떨어지기 전엔 나서기가 어렵다. 물리적 충돌이라도 막는 게 최우선 목표다”라고 말했다.

비리와 횡령, 탈법이 횡행한 ‘무방비도시’는 사업 10년 만에야 정상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9월 ‘주영인더스트리’라는 새 투자업체가 예금보험공사로부터 가야위드안의 우선수익권을 낙찰받은 것이다. 주영인더스트리는 곧바로 새 관리업체를 선정해 아민산업개발을 떨쳐냈다. 전기 설비 등 막바지 공사를 마치고 건물을 준공하면 주민들은 그토록 바라던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2월 안 준공이 목표다. 그러나 지난 18일에도 용역 60명이 현장을 찾아 몽니를 부려 경찰이 출동하는 등 아민산업개발의 마지막 저항이 있어 우려는 여전하다.

빼앗긴 집에 주민들은 돌아갈 수 있을까. 나이 예순에 작은 집 하나를 가지려던 최윤석씨는 이 싸움에서 결코 질 수 없다. “우리에겐 목숨이 달린 문제예요. 대부분 주변 시장에서 일하다 노후에 집이라도 하나 장만하려고 한 사람들이에요. 더 이상은 물러설 수가 없어요.”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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