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상담 4만4746건 진행 종결 있고 피해자 명확해 이타적 마음을 갖기 쉽던 다른 재난과 달리, 코로나19는 확진자 혐오 극심 자기 마음 돌보지 못하면 스트레스 신체반응 나타나 복식호흡, 실내 스트레칭 통한 근육 이완 도움 돼 “마스크 양보하기 운동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 대단”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답답함과 불안감,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인데요. 코로나 블루에 잠식당하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인은, 또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 부장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Q.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는 어떤 일을 하나요?
A.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대돼 어느 한 기관이 심리지원을 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면서 보건복지부가 국립정신의료기관과 전국 250여개 정신건강센터를 통합해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했습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이 통합심리지원단의 업무를 규정하고 배분하며 시설에 직접 입소해 상담하는 등 총괄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3월 12일 오전 9시 기준 총 4만4746건의 상담을 진행(확진자 6267건/ 비확진자 3만8479건)했습니다. 최근에는 대구시 한 곳에서만 하루에 1477건의 상담이 이뤄질 정도로 상담 요청 건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Q.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2015년 메르스 사태 등 국가 비상 상황마다 피해자 심리지원을 해왔는데, 코로나19사태가 이전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A. 보통의 재난은 사건 종결이 확실하고 피해자가 특정됩니다. 그래서 이타적인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고통은 저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감염병은 위협이 특정인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고, 나 역시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에 압도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를 불안하게 만든 모든 사람을 다 혐오하게 되는 거예요. 확진자에 대한 혐오가 극심한 이유입니다.
Q. 감염병을 소재로 다룬 영화를 보면 사태가 장기화 될수록 폭력 사태가 빈발하고 사회 질서가 와해 됩니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개인은, 또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A. 장기화되더라도 결국은 종식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이후의 상황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이타적인 마음입니다. 타인을 혐오하고 싸운 사람이 ‘결국 나는 안 걸렸으니 이 국면을 잘 이겨냈다’라는 마음을 가질까요? 아닐 거라고 봅니다. 분명 마음에 찝찝함이 남아 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를 잘 끝냈다고 자부할 수 있으려면 감염 여부, 격리 여부보다도 내가 이것들을 ‘성숙하게’ 잘 이겨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마스크 양보하기 운동’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Q. 확진자들은 주로 어떤 고민을 상담하나요?
A. 확진자들은 자신의 건강에 대한 불안에 못지않게 죄책감을 갖고 있어요. 가족과 직장, 이웃에게 피해를 줬다며 자책합니다. 낙인에 대한 불안도 상당합니다. 실제로 이웃이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분노를 퍼부은 사례도 있어서 ‘이 상황이 끝나도 내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염려하시는 분이 많고요. 또 태반이 사실이 아닌 루머가 돌아다니는데도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억울함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댓글 읽지 말라고 말씀드려요. 마음이 불안하면 부정적인 내용에 눈이 가기 마련이고, 그걸 보면서 마음이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회복이기 때문에 의료진과 보건당국을 신뢰하고 협력하라고 조언을 드립니다. 이분들이 사실 몇 번 비난 받고 나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마음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정작 내가 협력해야 하는 의료진과 보건당국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지는 거죠. 저 사람이 나를 정말 도와줄 사람인지, 속으로는 나를 비난하고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회의가 생기거든요. 그러면 회복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의료진 지침을 따르고 협력하는 관계를 형성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인간관계가 정리되더라’라는 말을 하세요. 정말 나를 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할 수 있게 됐다고요. 피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평소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안쓰러워하고 도와주는 분들도 보이는 거죠. 이런 분들의 지지를 통해서 신체적 회복 못지않게 심리적 회복도 가속화됐고, 인생에 경험이 됐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확진자 중에는 ‘열감이 느껴지는데 이상하게 체온은 정상’이라며 반복적으로 체온을 재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 분들께는 체온 측정하는 시간을 하루 두 번 정해두라고 조언합니다. 안심하기 위해서 체온을 재는 거지만, 정상이라고 해서 불안이 없어지지는 않거든요. ‘조금 있으면 올라갈 거야’‘체온계가 고장인가?’ 같은 의심이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한겨레TV 갈무리
Q. ‘지하철 옆자리 사람이 기침만 해도 노려보고 혐오하게 된다’는 고민을 토로하는 분도 많은데요. 비확진자의 주된 상담 내용은 무엇이고, 이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주시는지 궁금합니다.
A. (주변 사람에 대한 혐오가) 이상한 반응은 아닙니다. (코로나19는) 새로운 경험이고 모르는 게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게 정상입니다. 다만 너무 매몰돼 있으면 안 되고 한쪽 발은 건강한 쪽에 걸치고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것,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 신체 긴장을 배출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걸 권해드립니다.
특히 ‘연결감’을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불안에 너무 압도돼 있으면 당연한 것도 잘 찾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 소통을 통해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게 좋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연결감을 확보하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다. SNS나 편지T쓰기도 도움이 되고요.
많은 분이 집에서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무한 반복하는데, 이 역시도 ‘균형’이라는 측면을 염두에 두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가장 추천할 만한 활동은 실내 스트레칭과 복식호흡입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홈페이지(nct.go.kr)에는 이 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도 있습니다.
착지기법도 도움이 됩니다. 불안할 땐 마음이 과거로, 미래로 떠다닙니다. 이럴 때 현재에 집중하고 만족감을 찾는 게 중요해요. 주변에 보이는 사물 다섯 가지를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주의를 기울이고 음미하는 겁니다. 컬러링북, 안전지대(본인이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실재 혹은 가상의 장소)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일도 도움이 됩니다.
저희가 우한 교민들 임시생활시설에도 입주해 다양한 심리지원을 했는데요, 그 가운데 ‘방송 정신건강 교육’이 유독 호응이 좋았습니다. 감염병의 특수성이 고립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함께 한다, 전문가와 함께 있다는 메시지 자체, 목소리 자체가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Q.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저희는 일대일로 확진자의 얘기를 듣잖아요. 사실이 아닌 댓글 때문에 화병이 날 정도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일 수도 있는데 확진자 당사자한테는 감염병에 걸렸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이런 댓글이) 더 상처가 됩니다. 2차 가해죠. 이런 악플은 부메랑이 되어서 나 또는 내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감염병 사태에선 내가 이타적이고 배려해야 결국 나와 내 주변이 안전해지는 걸 알아야 합니다.
Q. 코로나19 국면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은 누구고, 어떤 정책 대안이 필요할까요?
A. 감염병 국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불확실성입니다.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한데 정보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소아·청소년, 노인, 장애인, 외국인 같은 분들인데요. 이분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고, 공적체계가 동원돼 (이들을 지원하면) 좋겠지만, 그게 한계가 있다면 민간 자원봉사자를 활용해서라도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