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열린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코로나19, 차별 없는 안전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대책본부는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빠르게 모여 정부, 지자체에 익명검사를 요구하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검사를 독려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2007년부터 법제화가 본격 논의된 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면 이태원발 코로나19 확산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법이 보호한다면, 소수자는 두려움 없이 검사를 받고, 사회의 안전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나영 셰어 SHARE 대표는 진단한다. 성소수자, 이주민 등에 대한 차별이 드러났지만, 사회 구성원 서로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도 더욱 명백해진 코로나19 위기를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로 만들자고 그는 제안한다.
지난 5월6일, 이태원 K클럽은 페이스북에 “관할 보건소로부터 확진자가 이태원을 방문한 동선에 K클럽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연락받았다”는 내용과 함께 “모두의 안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 소식이 있을 경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며 “해당 확진자에 대한 소문 및 신상 공개 등은 자제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때는 클럽 방문자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통고를 받은 직후로, 어떤 언론에서도 아직 관련 기사를 작성하지 않은 때였다. 그럼에도 클럽 운영자는 방문자들의 안전과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해 가장 먼저 나서서 소식을 알리고 확진자의 사생활을 보호할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지난 몇 달간의 지난한 코로나19 대응을 통해 빠른 검사를 통한 감염 확산 방지가 방역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언론이라면 아마도 이 클럽의 책임감 있는 대응과 요청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국민일보>는 “[단독]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고, 잇따라 다른 언론들도 자극적인 제목과 기사로 그 내용을 확산시키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성 댓글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확진자의 직장이나 거주지역까지 샅샅이 캐내려 했다. 결국 이 때문에 방역당국은 검사를 받아야 할 클럽 방문자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데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해당 클럽이 일부 무책임한 언론들에 의해 ‘성소수자 클럽’으로 특정되면서 성소수자이든 아니든 이 클럽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일단 무조건 성소수자로 의심받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라는 의심을 받기만 해도 혐오와 비난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사회, 누군가는 학교나 집에서 폭행을 당하거나 쫓겨날 수도,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될 수도 있는 사회에서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될 상황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19의 상황은 “감염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배제되고 내몰렸던 이들이 누구인지를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동시에,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 중 누구라도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청도대남병원 흡연실과 이태원 클럽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던 초기, 청도대남병원의 감염 경로를 추적해본 결과 이 병원의 옥외 흡연실이 감염 확산의 유력한 경로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적이 있다. 정신병동의 환자들과 요양병원 환자, 요양보호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흩어졌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청도대남병원의 환자들은 대부분 장기 입원 상태로 지낸 환자들이었다. 한동안 언론에서는 이 병원에 있었던 정신병동의 환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는지가 보도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신병동 입원환자 대부분이 5~25년간 장기 입원 상태에 있었고 치료보다는 수용에 따른 ‘격리 상태’에 있었다고 보았다. 많은 환자들이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조건에서 그렇게 열악한 상태를 감내하고 있었다. 이 환자들에게 흡연실은 어떤 의미였을까. 누군가에게는 내내 방치되어 있던 맨바닥에서 한 번씩 몸을 일으켜 바람을 쐴 공간, 누군가에게는 잠시나마 시름을 놓고 깊은 한숨이라도 제대로 들이켤 공간이었을 것이다. 감염을 확산시키고 사망률을 높인 것은 이들의 한숨과 짧은 대화, 그 짧은 휴식의 공간인 흡연실 자체가 아니라 이들을 격리하고 방치한 우리 사회, 그리고 정신병동이라는 시설의 문제였다.
이태원에서 확진자가 방문했던 몇 개의 클럽이 집중 보도되고 이후 수면방까지 보도되었을 때에도 이 공간들은 곧장 ‘성소수자들의 문란함’을 증명하는 곳인 것처럼 다뤄졌다. 감염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기사라면 해당 수면방 이용자 중에 확진자가 있었으니 방문자는 검사를 받으라는 내용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태원 클럽의 자발적인 공지를 ‘게이 클럽’으로 특정해 자극적인 보도를 유발했던 <국민일보>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수면방을 다룬 많은 기사들도 편견과 낙인만 조장함으로써 방역 활동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다려 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는 꾹꾹 참아온 분노를 터뜨릴 만한 소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코로나19의 신규 확진자가 확연히 줄어들어 ‘곧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컸던 연휴 기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친구들을 만나 클럽, 노래방, 술집에서 갑갑함을 풀었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성소수자들도 자신에게 좀 더 편한 공간을 찾았을 뿐이다. 연휴 내내 집에 머물거나 일을 했던 성소수자도 있고, 연휴가 끝나면 다시 돌아가야 할 일상을 한탄하며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성소수자도 있다. 그 와중에 성소수자들이 전국에서 그 먼 거리를 이동해 굳이 이태원의 클럽을 찾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 사회에 성소수자들이 편히 모일 수 있는 관계와 공간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반증한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해고와 폭력,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공간에서의 추방을 의미하는 일이 되지 않는 사회였다면 굳이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가까운 곳에서 편한 만남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며, 자신이 방문한 공간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처럼 빠르게 검사를 받고 자신에게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면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이전부터 이미 우리가 누군가와는 아예 느끼지도 못할 만큼의 거리를 두어왔다는 사실이 아닐까.
쫓겨난 자리에서 만드는 또 다른 자긍심
만약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었다면 지금의 상황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퇴학이나 해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큼은 덜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개인의 특정한 정체성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거나 징계, 해고를 하는 행위, 교육이나 직업훈련에서 차별하는 행위 등이 금지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이태원을 방문했던 모든 이들이 다른 걱정 없이 보다 빠르게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메르스와 신종플루, 코로나19까지 짧은 주기로 새로운 감염병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차별금지의 원칙은 점점 더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차별당하거나 배제되지 않을 한 사람의 권리가 모두의 건강과 안전에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2007년부터 계속해서 나중으로 밀려온 차별금지법의 제정 필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추진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한국의 방역 사례가 해외 언론으로부터 한참 주목받던 지난 3월 중순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한국의 기본적인 전략은 ‘개방성’과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이 봉쇄 조치를 우선적으로 취할 때 한국은 봉쇄 대신 빠른 검진과 치료, 확진자 파악을 통한 방역활동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불법체류자 통보 의무 면제 제도’를 통해 미등록 이주민들이 추방 걱정 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또한 성공적인 방역을 위해 시행된 조치 중 하나였다.
그러나 며칠 전 언론에는 베트남 국적의 한 이주노동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같은 베트남 출신의 귀화한 경찰로부터 모국어로 안내 문자를 받고서야 연락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노동자는 미등록 체류 상태에서 확진 사실이 알려지고 병원에 가면 곧장 추방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 연락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누구라도 추방당할 걱정 없이 일단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통용되는 사회였다면 이 이주노동자도 더 빨리 연락을 취하고 주변인들에게 감염 사실을 알린 다음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비난을 조장하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정부는 전례 없이 분명하게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비난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방역의 필요성이 없어진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한국 정부가 자랑했던 ‘개방성’과 ‘투명성’은 이주민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바꿔나가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뒤에, 이미 오래전부터 알아차릴 수조차 없이 존재해왔던 낙인과 배제의 거리두기는 풀릴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개방성’과 ‘투명성’을 자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든 휴대기기와 신용카드로 개인의 일상과 동선을 추적하여 사생활 침해로 연결될 수 있는 현재의 방역 시스템은 코로나19 이후에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우리는 이제 이러한 물음들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답은 지금의 어려운 순간들 속에서도 차별의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있다.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빠르게 모여 정부와 방역당국, 지자체에 익명검사를 요구하고 차별 대응에 나서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검사를 독려했던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의 활동은 그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하나의 사례이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현재 이태원 방문 이력이 있는 사람들은 서울시,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 각 지역에서 휴대전화 번호만으로 익명검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성소수자를 배제와 추방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식하고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한 결과, 성소수자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성소수자 대책본부는 이제 네 개 단체를 통해 상담 창구를 열고 다국어와 수어로 제작된 정보들도 공유하며 다각도로 차별의 현장들을 좁혀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차별 뒤집는 새 사회를 위하여
감염병에 대한 대응을 넘어 차별의 현실을 바꿔나갈 때, 코로나19 이후의 다른 세상은 가능해질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 땀 흘리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의료진들의 노력과 방역당국의 노력,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여러 현장의 노력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혼자 생활하는 중증장애인들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재난지원금 지급 체계에서 배제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과 노숙인, 탈가정 청소년 등의 요구를 모아내는 노력, 가정폭력과 돌봄 노동의 가중, 임신중지가 필요한 상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의 요구와 코로나19로 인한 해고와 생계 위협에 함께 대응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도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낙인이나 차별, 혐오와 비난 대신 쫓겨나고 밀려난 자리에서 새로운 자긍심을 만드는 연대의 움직임이 우리에게 새로운 사회를 열어줄 것이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