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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구의역 김군’ 4주기…“책임자 중 실형받은 이 없어”

등록 2020-05-23 18:04수정 2020-05-25 02:42

2016년 구의역서 스크린도어 고치다 숨진 김군 4주기
유가족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더 이상의 죽음 막아야” 목소리 모아
2016년 5월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근로자 김아무개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지 4년이 되기 5일 전인 23일 오후 서울 구의역 스크린 도어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벽에 시민들이 포스트잇 손편지를 붙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16년 5월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근로자 김아무개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지 4년이 되기 5일 전인 23일 오후 서울 구의역 스크린 도어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벽에 시민들이 포스트잇 손편지를 붙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구의역에 국화꽃 하나, 강남역에 국화꽃 하나, 성수역에 국화꽃 하나.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 동료를 잃은 노동자의 손에 들려있던 국화꽃 세 개가 전철역을 거치면서 하나씩 줄어들었다. 손에 들린 국화꽃이 줄수록 김군과 노동자들이 숨진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도어 앞 노란 점자블록 위는 하얀 국화꽃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국화꽃 위 스크린도어에는 “기억하고 행동해 또 다른 누군가의 목숨은 지켜내겠습니다”라는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오는 28일은 2016년 5월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당시 19살)군이 열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지 4년째 되는 날이다. 그보다 앞서 성수역과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여 2013년 1월 숨진 심아무개(당시 37살)씨와 2015년 8월 숨진 조아무개(당시 28살)씨를 추모하는 날이기도 하다.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김군이 떠난 뒤에도 최근 이천 물류창고 화재에서 노동자 38명이 사망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없다”며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2016년 5월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근로자 김아무개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지 4년이 되기 5일 전인 23일 오후 서울 구의역 스크린 도어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앞에서 한 추모객이 국화를 들고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16년 5월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근로자 김아무개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지 4년이 되기 5일 전인 23일 오후 서울 구의역 스크린 도어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앞에서 한 추모객이 국화를 들고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군이 떠난지 4년이 됐지만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9년 8월,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 1부(재판장 유남근)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스크린도어 정비용역업체 은성피에스디(PSD) 대표 이아무개씨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서울메트로 이정원 전 대표는 대법원 상고 결과 벌금 1천만원형을 확정받았다. 김군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 중 실형을 받은 이는 없다.

2015년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 센서를 점검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조씨와 관련된 책임자 처벌도 마찬가지다. 2018년 7월,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유진메트로컴 대표 정아무개씨에게 벌금 2천만원을 선고했다. 같은 회사 실무진에게는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고 원청인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 전 대표 이아무개씨에 대해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관리 및 감독 의무가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심지어 2013년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 장애물 검지센서를 점검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은성피에스디 직원 심씨와 관련된 책임자들은 법의 심판조차 받지 않았다. 서울동부지검이 사고 두 달 뒤인 2013년 3월, 해당 사건을 수사하던 성동경찰서에 “내사 종결하라”고 지휘했기 때문이다. 당시 성동경찰서는 서울동부지검에 “용역협약서, 교육 내용 등을 볼 때 서울메트로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의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결국 심씨의 죽음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은 채 단순 사고사로 처리됐다. 임선재 은성피에스디 지회장은 “지난 성수역과 강남역 참사 때 책임자에 대한 처벌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구의역) 김군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라고 지적했다.

23일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열린 ‘구의역참사 4주기 추모식’에 모인 유가족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4월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공사장 5층에서 작업하다 추락해 숨진 특성화고등학교 졸업생 김태규(당시 25살)씨의 누나 김도현씨는 “경찰이 관련 책임자들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지만 수원지검은 이들을 아예 불기소하거나 기소를 하더라도 양형 기준보다 더 적게 구형하고 있다”며 “부품값보다 사람값이 싼데 뭐가 무서워서 기업들이 안전장치를 하겠냐.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고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과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어야 기업이 노동자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고 지적했다. 서울지하철공사 노조 출신인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눈물 흘리는 걸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고 노회찬 의원이 2017년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21대 국회에서는 꼭 제정하겠다”고 말했다.

구의역에서 강남역, 성수역까지 이어진 한 시간 가량의 헌화가 끝나자 유가족들과 김군의 동료들은 각자의 길을 떠났다. 김도현씨는 “내년 5주기 추모식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됐다고 동생 태규와 김군에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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