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앞장서온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두번째 기자회견을 열 어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대구/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 투쟁을 통해 손가락질과 거짓 속에 부끄러웠던 이용수에서, 오롯한 내 자신 이용수를 찾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단체인 정의기억연대를 비판한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준비했던 기자회견문 일부다. 그러나 정작 기자회견장에서 이 할머니가 말한 것은 자부심보다는 슬픔과 부끄러움에 가까웠다. 할머니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세계 여성분들에게 ‘위안부’가 여자라는 두 글자에 손상을 입혔다는 게 참 죄송합니다.” 미국 의회에 나서 당당히 피해를 증언했던 인권운동가 ‘이용수’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수십년 전의 일을 날짜까지 정확히 짚어가며 할머니는 또다시 ‘증언’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전혀 새롭지 않거나, 굳이 세밀히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내용이었다. 사회가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에 점차 익숙해지는 동안, 할머니의 ‘기억’은 돌부리처럼 비집고 나와 무뎌지지 않는 마음을 괴롭혔던 걸까. 생중계되는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우리가 ‘시차’를 간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을 뒤흔드는 고통을 지우기에 70년은 충분한 시간인가. 30년의 고백은 충분한가.
오늘날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피해자의 기억을 넘어, 지구상 또다른 폭력들을 막는 데 집중하자고 말한다. 그 방향성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할머니는 수십년의 시차 속에서 홀로 남은 듯한 외로움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수없이 많은 진술과 강연을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를 거듭 ‘증언’하도록 요구받았으나, 이제는 과거를 말하는 이가 없다. ‘동무’들은 세상을 떠나고 있고, 30년 ‘동지’는 더 큰 발판이 필요하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 속에서 이 할머니의 외로움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돼왔을지 모른다. 위안부 피해자 운동이 ‘역사적 성과’를 남기더라도, 정작 할머니의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일까.
추운 날이면 소녀상에 담요를 덮고 목도리를 둘러준 시민들도, 정작 ‘현재진행형’인 할머니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속에서 미국 하원의원들 앞에서도 당당하고 강인했던 할머니의 모습엔 열광했으면서도, 이제 일각에선 할머니의 ‘자격’을 논한다. 책임이 분명한 정부와 정치권 역시 국가범죄인 위안부 문제 해결의 책임을 피해자와 운동가들에게 떠넘겨왔다. 할머니의 고통을 끌어안을 책임도 고스란히 활동가들에게 남겨져왔다.
고통과 울분을 말하면서도 할머니는 1·2차 회견에서 스스로를 ‘여성인권운동가’로 소개했다. ‘위안부’ 피해자나 ‘성노예’ 같은 공식 명칭을 거부했다. 어쩌면 모순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타협하지 않는’ 이용수의 인생이다. 과거의 상흔 속에 아파하면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일본 정부의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는 운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소녀’ 또는 ‘할머니’로 납작하게 그려내는 동안, ‘여성인권운동가’로서 김복동·길원옥·이용수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통을 견디고 불의를 꾸짖어왔다. 그의 고백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섣불리 배후를 제기하기보다는, 그가 더이상 “이용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그의 운동에 든든한 배후가 돼야 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박윤경 ㅣ 사건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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