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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소선 어머니부터 지학순 주교까지…‘민주화운동’ 국민훈장 모란장 받은 12인 누구?

등록 2020-06-10 16:24수정 2020-06-10 20:49

전태일·박종철·이한열 열사 부모 포함
10일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을 맞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12명은 한국 사회 민주화를 앞당기고 인권 신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들이다. 독재정권과의 싸움에서 이들은 항상 맨 앞자리에 섰다. 폭압적인 권력에 의연하게 맞서온 이들을 독재정권의 하수인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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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 등 노동자 권리 보장을 외치며 분신해 숨진 뒤 어머니 이소선씨는 아들의 뜻을 이어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40여년 간 앞장섰다. 전 열사가 숨지자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평화시장에서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설립한 게 시작이었다. 이씨는 1978~1979년 동일방직과 와이에이치(YH)무역 노동자 투쟁에 나섰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땐 진상규명 투쟁에도 나섰다. 의문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1998~1999년 국회 앞에서 422일 동안 장기간 농성을 했다. 그는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등의 노동 현장도 계속 지켰다. 이런 활동들로 인해 4차례 옥고를 치렀다. 2011년 9월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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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아버지 박정기

1987년 1월 막내아들 박종철 열사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한 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숨지자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게 됐다.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씨,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씨와 함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6월 민주화운동 선두에 섰고, 1988년과 1998년 장기 농성을 통해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을 제정하는 것을 이끌었다. 1991년 강경대 열사 사건때 법정소란죄로 석달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2018년 3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박정기씨를 찾아 사과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 피해자에게 사과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그해 7월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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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어머니 배은심

1987년 6월 아들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어머니 배은심씨는 이소선, 박정기씨와 함께 민주화운동 유가족 모임을 이끌며 민주화운동 현장을 이끌었고, 이는 현재도 진행중이다. 배은심씨는 10일 열린 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해 ‘서른세번째 6월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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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규 목사

박형규 목사는 유신 독재에 맞서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평가된다. 목회를 맡으며 교회갱신운동은 물론 민주화운동과 남북평화를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83년 예배 방해로 시작된 서울제일교회 박해 사건 당시 6년동안 노상예배를 끈질기게 이어갔고 그 곳은 민주화운동의 현장이 됐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장을 맡으며 <인권소식>을 발간해 언론 역할도 담당했다. 독재정권은 그를 끊임없이 박해했다. 박 목사는 1973년 4월 유신체제를 비판한 ‘남산 야외음악당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으로 징역 2년을, 그 다음해 4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았다. 2016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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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변호사

독재 시절 수배와 투옥을 겪고 1982년 늦깎이로 변호사가 된 조영래 변호사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변론하며 국가 권력의 야만성을 폭로했고 한강물 역류로 수해를 입은 서울 망원동 주민 2400가구를 대리해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등 약자 변론에 앞장섰다. 최초의 공해병 판정을 받아낸 ‘상봉동 진폐증’ 사건도 그의 손을 거쳤으며 전태일의 ‘법대생 친구’이자 <전태일 평전> 저자로 많은 이들에게 전태일 정신을 전했다.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을 이끌었다. 1990년 12월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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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순 주교

지학순 주교는 군부 권위주의 통치에 맞서 민주구국선언, 지식인선언을 주도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강론 등을 이어간 인물이다. 지 주교는 1974년 김지하 시인과 함께 내란을 선동했다며 연행됐고 당시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의 배후로 지 주교를 지목했다. 소환장을 받은 지 주교는 서울 명동 카톨릭회관 앞마당에서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내용의 양심선언문을 발표했고 구속됐다. 이 사건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결성의 기폭제가 됐다. 1993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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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조비오) 신부

5·18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인 조비오 신부(조철현 신부)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수습위원으로 참여해 당시 계엄당국과 협상하는 등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독재 정권의 부조리에 맞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1989년 열린 5·18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에 나와 신군부의 학살 행위를 증언했다. 2016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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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보 기자

1974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해 언론 자유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 등을 거쳐 1988년 <한겨레> 창간에 참여했다. 초대 및 4대 편집위원장, 논설위원 등을 지낸 뒤 1992년부턴 <사회평론> 재창간위원장 및 대표 등으로 활약했다. 2000년에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2014년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을 맡는 등 평화운동과 남북통일에도 힘썼다. 2014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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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균 교수

진보사회과학계의 거목으로 꼽히는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1980년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강제로 해직된 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대표 등을 역임하며 민주화 운동과 진보적 개혁을 위해 힘썼다. 민교협 초대 의장뿐만 아니라 학술단체협의호 공동대표, 민주노총지도위원 등을 지내는 등 진보 운동에 두루 관여했다. 2004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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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국 총장

대표적 진보 신학자인 김찬국 전 상지대 총장은 1964년 대한 와이엠시에이(YMCA)연맹 대학생 위원장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한 그는 평화시장대책위원회 위원장, 인천 동일방직긴급대책위원회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1972년 긴급조치 1·4호 위반 혐의로 구속돼 군사재판에서 징역5년, 자격정지 5년형을 선고받고 연세대 교수직에서 강제해직을 당했다. 복직 뒤 연합신학대학원장 등을 거쳐 1992년 정년퇴임한 뒤 1993~1999년 상지대 총장을 역임했다. 2009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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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대 의장

농민운동에서부터 통일운동까지 재야에서 헌신한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1978년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농민운동을 시작한 그는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결성한 뒤 초대 의장 등을 지냈다. 농산물 개방 반대 운동 등을 이끌었다. 1991년부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을 맡는 등 통일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2004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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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철 변호사

유신 독재에 맞서 인권변론에 앞장섰다. 1975년 민청학련 사건을 시작으로 1979년 김재규 사건,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 등 독재 시대 수많은 시국사건 때마다 약자 편에 서며 ‘인권 변호사 4인방’(이돈명·조준희·홍성우·황인철)으로 함께 활약했다. 1993년 타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실로 이름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이며, 엄혹했던 독재시대 국민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분들”이라며 “저는 거리와 광장에서 이 분들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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