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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차별 해소하라”는 인권위 권고에도 “구속력 없다”는 대전MBC

등록 2020-06-19 05:00수정 2020-06-19 07:44

[현장에서]
남성은 정규직으로, 여성은 비정규직으로 뽑아온 대전MBC
“늙은 여자 쓰지 말라는 태클 들어와” 차별 발언 일상화
인권위 조사에 대표이사는 “공정한 채용 명예훼손” 주장
회사쪽에선 “수용하기 어렵다”며 권고 가벼이 여겨
지난해 ‘채용성차별공동행동’이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 본사 앞에서 채용 성차별 관행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채용성차별공동행동’ 제공
지난해 ‘채용성차별공동행동’이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 본사 앞에서 채용 성차별 관행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채용성차별공동행동’ 제공

지난 1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성 아나운서들을 비정규직으로 뽑아온 <대전문화방송(MBC)>에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불이익을 당한 데 대한 위로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6월 회사의 성차별적인 채용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권위에 진정을 낸 뒤 1년여의 시간 동안 불이익을 감내하며 기다려온 비정규직 아나운서들의 눈물을 닦아준 권고다. 인권위 권고는 강제력이 없기에 이행하기까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인권위 권고에 대한 공영방송사 대전문화방송의 응답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신원식 대전문화방송 대표이사는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으로, 여성 아나운서는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는 주장은 오히려 공정한 채용 시스템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의 권고안이 나온 뒤 대전문화방송 관계자도 <한겨레>에 “수용하기 어려우며 사법적 판단을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문화방송의 명예를 훼손한 이는 문제를 제기한 아나운서들이 아니라, 이처럼 소수자를 무시하고 국가기관의 권고를 가볍게 여긴 사쪽이다.

“늙은 여자 쓰지 말라고 (시청자들한테) 태클이 많이 들어와.” 진정인 아나운서들이 평소 동료들한테서 들었던 말이다. 경영진이 성차별 관행을 묵인하는 동안 조직에서 여성 아나운서들은 이처럼 일상적인 차별에 시달려왔다. 공영방송은 방송의 내용뿐 아니라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민주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 더욱이 문화방송은 과거 보수정권에서 언론정상화 투쟁을 하는 동안 ‘어용 경영진’에게 상처 입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약자들의 아픔에 더 크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설령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이라는 결과가 의도된 게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문화방송 구성원들은 그간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않은 채 성차별 채용 관행을 지속해온 점을 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회사 쪽은 진정을 낸 유지은 아나운서에게 “구속력 있는 고발을 하라”고도 했다고 한다. 이는 문제 해결의 책임과 부담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처사다. 법정 다툼엔 돈이 필요할 뿐 아니라 피해자가 조직 내 고립된 생활을 긴 시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진정을 낸 아나운서들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진행하던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교체됐다. 결국 진정인 중 한명은 주 5만원까지 수입이 줄어 생계가 어려워지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인권위는 이미 대전문화방송의 채용 관행이 헌법상 평등권, ‘근로기준법’ 등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대전문화방송이 헌법과 법률을 지켜낼 것인지, 관행을 지켜갈 것인지는 구성원들의 선택에 달렸다.

박윤경 ㅣ 사건팀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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