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무심코 건드린 지뢰…전쟁에 두 손과 행복을 뺏겼습니다”

등록 2020-06-25 05:00수정 2020-06-25 07:35

9살 때 빨래하다 양손 순식간에
동네 뒷산서 건드렸다 두 눈 멀고
학업 중단한 채 평생 가난 시달려
2015년에야 2천만원 보상이 전부
군 “2006년까지 제거” 약속했지만
후방지역 묻힌 3021발 아직도 남아
후방지역 지뢰 민간인 피해자인 권금자씨와 김영식씨가 23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채윤태 기자
후방지역 지뢰 민간인 피해자인 권금자씨와 김영식씨가 23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채윤태 기자

권금자(75)씨는 발로 음료수병을 능숙하게 땄다. 손이 아닌 두 손목만으로도 글씨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두 손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권씨는 9살 때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경기도 파주의 한 냇가에 빨래를 하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흘러내려온 지뢰를 건드린 것이다.

눈앞이 하얘진 뒤 정신을 잃었다. 권씨는 미군 헬기에 실려가 동두천의 미군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내 양손이 없는 것을 보고 엄마가 놀라서 기절하셨지.” 50여년 전의 일을 그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 손이 6·25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그 전쟁이 없었다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을까.” 23일 경기도 연천에서 <한겨레>와 만난 권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6·25가 터진 지 70년이 됐지만 전쟁의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70년 전에 매설된 지뢰로 피해를 입는 사고가 발생한다. 후방지역(비무장지대가 아닌 지역) 지뢰 민간인 피해자를 돕고 있는 시민단체 평화나눔회가 2018년 5월 집계한 결과를 보면, 1953년 전쟁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 지뢰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39명, 부상자는 369명으로 피해자는 모두 608명에 이른다. 국방부 자료를 보면 2015~2019년에도 1명이 지뢰 폭발사고로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김영식(64)씨도 8살 때 형, 누나, 동생과 동네 뒷산에 올랐다가 사고를 당했다. 장난감인 줄 알고 지뢰를 건드린 김씨는 두 눈과 오른손, 왼쪽 고막을 잃었다. 김씨는 “새벽에 자고 일어나면 눈이 안 보이는 게 무섭고 서러워 6개월 동안 울었다”고 말했다. 그 상처로 김씨는 반백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권씨와 김씨는 모두 지뢰 폭발사고 때문에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성인이 돼서도 수입이 없었고, 기초생활급여를 통해 생계를 이어왔다.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 2015년에야 2천만원을 받은 게 국가가 해준 보상의 전부다. 권씨 등과 같은 민간인 지뢰 피해는 최근까지도 발생하고 있다. 조재국 평화나눔회 이사장은 “산책로와 등산로, 그리고 논밭 등 일상생활 속에서 지뢰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2001년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전략적 필요가 없어진 후방지역 지뢰를 2006년까지 제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합참에서 제출받은 통계를 보면, 후방지역에 매설된 지뢰 5만3700발 가운데 3021발이 아직 남아 있다.

녹색연합은 지뢰 제거 활동을 군에만 맡길 게 아니라 민간을 포함한 범정부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엔 역시 국제지뢰행동표준(IMAS)을 통해 국제기구, 민간단체와의 협력을 권고한다. 이지수 녹색연합 활동가는 “행정안전부 또는 국무총리 소속의 범정부 전담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천/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계엄 때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에 폭행 당해” 1.

윤석열 “계엄 때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에 폭행 당해”

윤석열 아전인수…“재판관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2.

윤석열 아전인수…“재판관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윤석열 쪽 증인 국정원 3차장 “선관위, 서버 점검 불응 안했다” [영상] 3.

윤석열 쪽 증인 국정원 3차장 “선관위, 서버 점검 불응 안했다” [영상]

헌재, 윤석열 쪽 ‘한덕수 증인신청’ 기각…13일 8차 변론 4.

헌재, 윤석열 쪽 ‘한덕수 증인신청’ 기각…13일 8차 변론

공룡 물총 강도에 “계몽강도” “2분짜리 강도가 어디 있나” 5.

공룡 물총 강도에 “계몽강도” “2분짜리 강도가 어디 있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