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오른쪽 둘째)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쪽의 기자회견은 13일 오후 2시 박 시장의 운구 행렬이 그의 선영이 있는 경남 창녕으로 향하는 동안 이뤄졌다. 기자회견 소식을 들은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후 1시36분께 “박 시장 유족들이 온전히 눈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고인과 관련된 금일 기자회견을 재고해주길 간곡히 호소드린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기자회견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여성단체들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냥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 앞은 회견 1시간 전부터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리며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여성의전화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된 영상엔 9천여명이 실시간으로 접속해 이번 기자회견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피해자의 변호인 김재련 변호사와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등 여성단체 관계자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박 시장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데다, 피해자에 대한 원색적 비난 등 ‘2차 가해’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오른쪽)이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의 편지를 대독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이날 장례 일정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기자회견을 연 배경에 대해 “죽음으로 사건이 무마되거나 피해 사실 말하기를 금지할 수 없다”며 “이 사건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이다.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의 목소리가 헛되지 않게 마련된 자리”라고 밝혔다.
박 시장의 장례 직후 긴급하게 진행된 기자회견을 두고 시민들의 의견은 나뉘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박 시장의 딸과 부인도 사람이고 여성이다. 장례기일 이후에 기자회견을 해서 그분들도 보호해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글을 남겼다. 한 누리꾼은 “뭐가 그렇게 급해서 발인한 날 꼭 (기자회견을) 했어야만 했는지 싶다. 그의 가족들에겐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반면, 다른 트위터 이용자는 “사법절차를 밟고자 했던 고소인의 의지를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꺾어버리고 기자회견을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박원순 본인이다. 기자회견마저 방해하려는 장례위원회의 후안무치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미경 소장은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최대한 예우했다”고 말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해자에게 다가오는 2차 피해 상황이 있다. (지금은 피해자가 고통받는) 피해자의 시간이다”라고 덧붙였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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