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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척추장애 작은 아이, 고운 꿈은 쑥쑥 “아프리카 어린이 돕고파”

등록 2020-08-10 04:59수정 2020-08-10 09:42

선천성 질환 앓는 8살 세연
날때부터 척추뼈 일부 세모꼴
그래도 학교 씩씩하게 다니려 노력
화장실 갈 땐 엄마가 출동해야

시간강사인 아빠 수입 적은데 코로나로 대면강의 줄어 더 감소
100만원 넘는 생활비 대출로 충당
최근 척추 지지대 박는 대수술…가족들 수백만원 치료비 전전긍긍
“장애인이라 죄송” 딸 편지에 울음

아프리카 다큐 보고 울었다는 세연 방에는
점토 인형·그림 한가득 “캐릭터로 돈 벌어 돕고 싶어요”
주상병 연골무형성증, 허리협착증을 앓고 있는 세연이(가명)가 엄마와 함께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연은 허리가 아파 오래 앉아 있기 힘들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주상병 연골무형성증, 허리협착증을 앓고 있는 세연이(가명)가 엄마와 함께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연은 허리가 아파 오래 앉아 있기 힘들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세연이가 책장에 적힌 자신의 키 기록들을 보고 있다. 기록들 맨 위에는 ‘축하해요’라고 써 있다. 저 선에 도달하면 엄마가 선물을 사주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세연이가 책장에 적힌 자신의 키 기록들을 보고 있다. 기록들 맨 위에는 ‘축하해요’라고 써 있다. 저 선에 도달하면 엄마가 선물을 사주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서영(가명·45)씨는 ‘5분 대기조’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 세연(가명·8)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집이든, 학교든 달려가야 한다. 하도 학교에 자주 가다 보니, 학교 보안관도 김씨가 도착하면 익숙한 듯 교문을 열어준다. 세연이는 하체 감각이 무뎌 대소변이 마려워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팔도 또래들보다 짧아 화장실 뒤처리도 스스로 하기 힘들다. 매번 특수교사 선생님에게 부탁할 수도 없어 엄마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세연이의 척추뼈 일부는 태어날 때부터 ‘세모’꼴이다. 뒤틀린 모양 때문에 쌓여 있는 척추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그래서 허리는 65도 이상 휘고, 척수를 짓눌렀다. 방치하면 척추가 무너져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다고 의사는 경고했다. 그런 탓에 팔다리도 자라지 않았다. 세연이의 키는 105㎝다. 또래보다 20㎝쯤 작다.

아기 때 누워만 지내던 세연이는 유모차와 휠체어에 의지해 자라났다. 이제야 조금씩 걸을 수 있다. 생후 9개월부터 일주일에 두차례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아온 덕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연이가 외출할 때 김씨는 꼭 필요하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저리다”며 주저앉기 일쑤여서다. 오래 앉아 있는 일도 세연에겐 버겁다. 걷기 힘든 아이의 휠체어를 밀고, 버스에 탈 때 업어주는 건 엄마의 몫이다.

■ 중환자실에서 세상과 만난 세연이

세연이의 병명은 연골무형성증, 수두증, 허리협착증, 주상병 등이다. 모두 선천성 질환이다. 의사는 임신 중인 김씨에게 “이상하다. 태아가 움직여야 할 때 안 움직인다”고 말했다. 정밀검사를 해보니 태아의 척추가 휘어 있었다. 병원에서는 “산모의 몸도 너무 좋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보다 김씨의 귓가엔 “아이가 희귀병인 연골무형성증이 의심된다”는 말만 맴돌았다. 조금 일찍 태어난 세연이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중환자실 신세를 지게 됐다. 자라면서 중이염, 비만 등의 질병도 얻었다.

여전히 세연이는 거의 누워서 하루를 보낸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눈 때문에, 선생님이 오해할까봐 누워 있기 어렵다. 그럴 때마다 세연이는 양호실을 찾는다. 그곳에서만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다. 그렇지만 세연이는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체육시간, 소풍에도 빠지지 않는다. 조금만 걸어도 몸이 저리지만, 소풍 때만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느린 걸음으로 친구들을 따라간다. “학교 친구들이 자기와 모습이 다르다고 세연이랑 안 놀아준다고 해요.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요.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다리가 아프고 저려도 따라 걸으려고 노력하더라고요.” 김씨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 다섯 가족이 부담해야 할 경제적 부담

이제 점점 무거워지는 세연이를 업어 돌보고, 아이가 아파하는 걸 지켜보는 것보다 당장 김씨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 경제적인 부담이다. 세연이는 일주일에도 서너차례 진료를 다녀야 한다. 엄마와 아빠는 세연의 언니, 오빠도 뒷바라지를 해야 하지만 언감생심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장기임대아파트에 사는 세연이 가족은 전세자금 대출금을 매달 30만원씩 갚고 있다. 100만원이 넘어가는 생활비는 카드와 은행 대출로 충당하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인 아빠의 수입만으로는 계속해서 적자만 불어난다. 곧 둘째 딸 우희(15)양이 고등학교에 입학해 교육비도 더 들어갈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는 가족의 수입을 반토막 냈다. 생계는 전적으로 대학 시간강사인 아버지 정승현(가명·57)씨가 책임지고 있다. 월 170만~200만원 정도의 급여로 가족이 빠듯하게나마 살아왔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정씨의 강의는 실습이 필요한데, 대학이 대면강의를 대부분 중단했기 때문이다. 정씨의 한달 수입은 30만~4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외부 강의라도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던 정씨는 급성폐렴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이다.

대학생인 맏아들 우식(가명·25)씨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새 영화관에서 일하고 있다. 부부는 늘 고된 하루를 보내고 쓰러져 잠드는 아들을 보며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해볼 테니 일을 그만해라”고 만류하지만, 우식씨는 “장학금을 받든, 학자금 대출을 받든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만 한다. 그나마 영화관도 상영을 줄여 우식씨의 알바 수입도 절반으로 줄었다.

■ 12시간이 넘는 대수술은 성공적이지만…

지난달 29일 세연이는 12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을 받았다. 주치의는 ‘2차 성징이 진행되기 전에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모난 척추뼈가 뒤로 빠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박는 수술이다.

수술을 앞두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컴컴하고 추운 수술실에 혼자 들어가는 게 무서워.” 세연이는 자꾸 수술을 안 받겠다고 했다. “꼭 필요한 수술이래.” 엄마가 타일러봐도, 세연이는 두려운 마음을 어쩔 길이 없었다. 병원의 배려로 마취 직전까지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었지만 수술 뒤의 고통까지 엄마가 함께해줄 순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자 세연이는 몰려오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1인실에 입원해야만 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주치의는 “척추가 더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65도 이상 휘어져 있던 허리는 25도까지 펴서 고정시켰다. 세연이는 “너무 아파서 이제 다시는 수술을 안 받겠다”고 했지만, 앞으로 꼭 받아야 할 수술이 많다. 더 자라지 않는 다리를 늘리는 수술은 선택이지만, 팔 길이를 늘이는 수술은 일상생활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 제대로 걸으려면 정형외과의 고관절 치료도 필요하다. 정기적으로 척추정형 재활치료, 비뇨기과, 정형외과 등의 통원치료도 받아야 한다.

남아 있는 치료비 부담은 가족의 짐이다. 이번 수술에만 6천만원이 넘는 수술비와 입원비가 들었다. 정부의 ‘희귀 질환자 의료비 지원 사업’ 덕분에 대부분의 수술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수백만원의 잔여 수술비와 1인실 입원비를 두고 가족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런 엄마의 고민을 아는지, 세연이는 올해 수술을 앞둔 생일, 김씨에게 서툰 한글로 편지를 남겼다. “어무니 저를 키워주고 그 아픈 고통을 드려서 죄송하고 저가 장에인(장애인)이여서 죄송해요. 평범한 아이였다면 지금보다 활슨은 나한는 고 죄송해요(훨씬 나았을 텐데 죄송해요). 그치만요 오늘 재밌게 놀게요. 귀욤이 세연이가.” 김씨는 편지를 받아들고 울음을 터뜨렸다.

주상병 연골무형성증, 허리협착증을 앓고 있는 세연이가 엄마에게 쓴 편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주상병 연골무형성증, 허리협착증을 앓고 있는 세연이가 엄마에게 쓴 편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주상병 연골무형성증, 허리협착증을 앓고 있는 세연이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세연이의 그림 속 주인공은 거의 대부분 사랑하는 가족들이다. 세연은 캐릭터를 만들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아프리카 친구들을 돕고 가족들이 함께 살 6층 건물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주상병 연골무형성증, 허리협착증을 앓고 있는 세연이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세연이의 그림 속 주인공은 거의 대부분 사랑하는 가족들이다. 세연은 캐릭터를 만들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아프리카 친구들을 돕고 가족들이 함께 살 6층 건물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그림으로 그리는 세연이의 미래…“아프리카 아이들 돕고 싶어요”

또래보다 작고 불편한 몸을 갖고 있지만 세연이의 꿈은 작은 몸에 갇혀 있지 않다. 손재주가 좋은 세연이의 방에는 아이가 직접 가족들의 특징을 담아 빚은 점토인형과 ‘세연이의 방’ 문패가 있다. ‘똑똑 꼭 노크’라고 쓰인 문패 글씨 사이에는 세연이의 캐리커처, 세연이가 갖고 싶어하는 스노볼, 사랑하는 반려동물 햄스터와 ‘무지개 유니콘’이 그려져 있다. “별거 아니에요.” 쑥스러워했지만 세연이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요정,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세연이는 최근엔 캐릭터 디자이너를 꿈꾼다. “캐릭터로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돈을 벌어서 세연이는 자신이나 가족들을 위해 쓰려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돼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많이 울었다던 세연이는 고운 마음, 큰 꿈을 빈 연습장에 그려 넣었다.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세연이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우리은행 269-800743-18-309 예금주: 나눔꽃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면 월드비전(02-2078-7000)으로 문의해주세요. 기부금 영수증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3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세연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수술비와 병원비, 재활치료비, 가족의 생계비 지원에 쓰이고 3천만원 이상 모금되면 세연이네 가족처럼 어려운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우주(가명)네 가족의 사연(<한겨레> 2020년 7월15일치 14면)이 소개된 뒤 모두 381분께서 2475만9727원(8월4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소중한 후원금은 우주네 가족의 주거지원비와 생계비로 전달하겠다. 또한 목표액을 넘어선 후원금은 우주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다른 위기가정에 소중히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주네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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