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공장식 축산의 대안을 고민하며 키운 토종돼지 ‘예산이’와 ‘홍성이’가 마을 빵집에서 팔고 남은 유기농 식빵을 먹고 있다.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제공
▶ 2020년 여름 한국에 닥친 유례없는 장마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게 했다. 호평받는 ‘케이(K)-방역’과 달리 ‘케이-안전’과 ‘케이-생존’은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 지구적 감염병과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서 정부도 ‘그린뉴딜’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혁명적인 전환이 있어야 최소한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녹색전환연구소가 5회에 걸쳐 연재(격주)한다.
지난해 9월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는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조문객을 맞았다. 그날 삶을 마감한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예산이’ ‘홍성이’라는 이름의 토종돼지들이었다.
‘예산이’ ‘홍성이’는 다른 돼지들에 비해 행복하게 살았던 돼지였다. ‘고기 공장’ 같은 축사가 아니라 마을의 농장 한켠에서 살았다. 수입 사료를 먹는 대부분의 돼지와는 달리, 친환경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과 마을의 유기농 빵집에서 팔고 남은 빵을 먹고 자랐다. 좁은 공간에 갇혀서 본능을 억압당하지 않고, 돼지의 습성대로 생활했다. 더울 땐 진흙 목욕으로 체온을 낮추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토막을 갖다주면 장난감 삼아 놀기도 했다.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던 ‘예산이’ ‘홍성이’가 빨리 삶을 마감하게 된 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이었다. 국내 최대의 축산 지역 중 하나인 충남 홍성군에는 무려 57만마리의 돼지가 살고 있었다. 대부분 공장식으로 지은 축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돼지들이어서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공장식 축사의 돼지들이 아니라 ‘예산이’ ‘홍성이’에게 불똥이 떨어졌다. 군청에서는 ‘예산이’ ‘홍성이’를 도축하든지, 아니면 야생동물과 접촉하기 힘든 콘크리트 시설로 넣어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예산이’ ‘홍성이’를 키우던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에서는 긴급회의 끝에 콘크리트 시설로 보내느니 차라리 삶을 마감하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 보내기 위해 장례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상주 구실을 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생명과 공존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준 예산이, 홍성이에게 감사’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죽어가는 모든 생명들을 애도’했다. 그리고 뼈는 잘 수습해서 흙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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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본이 장악한 축산산업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이 ‘예산이’ ‘홍성이’를 키우게 된 것은 공장식 축산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전국의 많은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홍성도 공장식 축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충남도청이 옮겨간 내포 신도시(예산과 홍성의 경계)에서는 인근 축사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민원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농장은 대기업인 사조그룹에서 운영하는 농장이다. ‘악취 때문에 살기가 힘들다’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충청남도, 홍성군이 예산과 인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농장을 폐쇄·이전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사조농산은 보상을 요구하고 있어서, 폐쇄·이전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보상을 한다면 결국 예산이 더 들어가야 한다. 돈은 대기업이 벌고, 환경문제로 인한 부담은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짊어지는 상황이 되고 있다.
‘예산이’와 ‘홍성이’의 장례식 공지문.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제공
돼지 1만4천여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사조농산은 단일 농장으로서는 충남 최대 규모다. 사조그룹은 ‘참치’로 유명하지만, 2000년대부터 양돈사업에 뛰어들었다. 양돈사업이 돈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조농산의 경우에는 2019년 매출액이 80억원인데 영업이익은 10억원이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13%에 육박하는 ‘돈 되는’ 사업인 것이다. 사조그룹은 사조농산 이외에도 양돈기업 여러 개를 갖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사조농산이 돼지를 사육하는 곳이라면, 이 돼지들에게 먹일 사료를 공급하는 기업도 있다. 사조그룹은 배합사료 제조업체인 ㈜사조동아원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2019년 매출액이 4122억원에 이르는 큰 기업이다. 또한 사조그룹은 양돈농장에서 키운 돼지를 가공해서 파는 육가공 사업도 하고 있다. 사료 공급→사육→판매와 가공 등을 사조그룹이 모두 관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수직계열화라고 한다.
이런 수직계열화는 3대 육류(소, 돼지, 닭) 중 닭과 돼지 쪽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닭고기와 관련해서는 ‘하림’이 대표적이다. 하림그룹은 사료 수입·공급→사육→도축→육가공의 전 분야를 수직계열화했다. 닭고기와 관련해서는 이런 식의 수직계열화 기업이 전체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하림그룹은 최근에는 돼지까지도 수직계열화하려고 양돈사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이렇게 대자본이 장악해가는 공장식 축산의 사슬이 가축들을 지배하고 있다.
한 농장에서 키우는 닭, 돼지, 소의 마릿수를 보면 규모화의 실태를 알 수 있다. 2020년 2분기 기준으로 한 농장에서 키우는 닭의 평균 마릿수는 6만2735마리에 이른다. 한 농장에서 키우는 돼지의 평균 마릿수도 1792마리다. 한우의 경우에는 한 농장에서 평균 35.8마리를 키운다.
이렇게 자본이 축산을 지배하는 상황이다 보니,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악취뿐만 아니라 분뇨로 인한 환경오염, 동물 학대 등에 눈감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민원을 피하기 위해 비수도권 농촌 지역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한다. 그래서 악취 등 각종 피해는 농촌 지역 주민들이 고스란히 보게 된다. 고기 소비는 대부분 도시에서 이뤄지는데, 피해는 농촌이 집중적으로 보는 ‘지역 간 환경부정의’ 문제가 심각하다. 홍성에서 사육되는 돼지에서 나오는 고기 중 지역에서 소비되는 양은 4.2%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의 ‘공장식 축산’을 일국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서, 축산에서도 글로벌한 자본의 사슬이 움직인다. 수요만 있다면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고기가 수출입 되고, 사료가 수출입 된다. 대한민국은 그런 글로벌 축산 사슬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국가다.
대한민국에서 소비되는 육류 중에서 국내에서 생산되는 육류 비율은 2018년 64.2%였다. 가장 국내산 비율이 낮은 것은 소고기로, 36%에 불과하다. 지금 국내에서 먹고 있는 소고기의 3분의 2가량이 수입되는 셈이다. 그리고 돼지고기는 66.9%, 닭고기는 78%가 국내에서 생산(2018년 기준)된다.
고기만이 아니다. 공장식 축산을 하려면, 가축에게 사료를 먹여야 한다. 그런데 국내에서 키우는 가축들에게 먹이는 배합사료 원료의 순수자급률은 5%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부분의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다. 수입하는 통로도 카길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다국적 대기업들이다.
이렇게 자급률이 낮다는 것은, 우리가 먹는 고기로 인한 환경 부담이 국내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료를 재배할 땅을 마련하기 위해 숲을 불태우는 과정, 사료를 생산해서 운반하는 과정, 고기를 생산하고 운반해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환경 파괴와 온실가스 배출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충남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마을 주민들이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행정기관의 도축 명령을 받은 ‘예산이’와 ‘홍성이’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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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 대책 빠진 그린뉴딜
그런 점에서 현재 논의되는 그린뉴딜에서 공장식 축산 문제가 빠진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공장식 축산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발표하는 축산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한국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2%(방귀·트림 등 가축 ‘장내 발효’와 분뇨처리 과정에서 발생)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온다(2017년 기준). 그렇다고 이 수치가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의 크기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세계화된 축산 사슬의 문제가 반영되지 않았다.
우선 수입되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의 생산·운송 과정에서 생기는 온실가스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수입 고기를 먹는 이상, 거기서 배출된 온실가스에 대한 책임이 있다. 또한 가축들에게 먹일 사료의 생산·운반 과정에서 생기는 온실가스도 계산에서 빠져 있다. 전세계 사료의 재배·생산·운반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축산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의 41%를 차지할 만큼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크다.
이와 관련해서 식량농업기구(FAO)는 세계축산환경영향평가 모델(GLEAM)을 개발해서 2017년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축산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81억 이산화탄소환산톤(CO₂-eq)으로,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6.5%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이 정도면 운송 분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더 많다.
그러니까 내가 먹은 고기와 올여름의 긴 장마와 폭우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 한국인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980년 11㎏에서 2000년 31.9㎏, 2018년 53.9㎏으로 급속하게 증가해왔다. 이렇게 늘어난 육류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국내 축산업 규모도 커졌지만, 수입하는 육류, 사료의 양도 계속 늘고 있다. 축산은 점점 더 공장식이 되고 덩치를 키워왔다. 그 결과 고기의 생산-유통은 점점 더 대자본에 장악되었다. 그 속에서 온실가스와 각종 환경오염 물질 배출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런 구조가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뭔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후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 그린뉴딜의 기본 취지라면, 육류 소비를 줄이고 공장식 축산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는 것도 그린뉴딜의 핵심으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1.5℃ 이하로 묶어야 한다는 목표에 합의했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혁명적인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만으로는 어렵다. 그와 함께 ‘먹는 것’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하승수 녹색전환연구소 기획이사
*도움 주신 분: 신나영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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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
“채식, 기후위기 극복의 히든카드”
―채식으로 전환하면 기후위기 극복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2016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의 보고서에 따르면, 육류 소비를 줄였을 때 식량 시스템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적게는 29%에서 많게는 70%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채식을 많이 할수록 감축 정도가 더 큽니다.”
―여건상 개인 차원에서 채식을 하기 쉽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텐데요?
“학교, 병원, 공공기관 등의 공공급식에서 채식을 옵션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소속 구성원이 모두 동참하는 채식의 날을 운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
“기업 식당에서 채식 옵션을 제공하면, 정부가 이에 상응하는 탄소 크레디트(탄소배출·상쇄권)로 보상하는 방안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육류 대체식품이 확대될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들의 움직임은 어떤지요?
“2010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전세계인이 ‘채식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육류 소비를 50% 감축하는 안을 발표한 바 있으며, 미국 뉴욕시는 그린뉴딜 안에 2030년까지 소고기 소비를 50% 줄이고 육가공품을 퇴출시키는 방안을 포함시켰습니다.”
하승수 녹색전환연구소 기획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