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기 힘들어요.” 지난 8일 오후 4시45분께 119안전신고센터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의 신고자는 “배달 근무를 가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곤란이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신고자는 당일 오후 5시1분께 119구급대에 의해 발견됐다. 구급대가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세워진 씨제이(CJ)대한통운의 택배 화물차를 발견했을 때, 그는 의식을 잃고 운전대에 쓰러져 있었다. 맥박도 이미 멈춘 상태였다. 20년차 택배노동자 김영진(가명·48)씨는 그렇게 늘 오가던 거리에서 갑작스레 스러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사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된 이후 또 한 사람이 죽었다. 올해만 8번째 죽음이다. 12일 부검을 통해 김씨의 명확한 사인이 가려지겠지만, 가족과 노조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씨는 지병이 없는 건강한 택배노동자였다. 김씨는 코로나19 발생 뒤 30% 가까이 늘어난 택배 물량 때문에 거의 매일 1시간 안팎의 추가 근무를 한데다 ‘대목’인 추석 전후엔 가족을 부양하려 상품 분류작업까지 도맡았다고 한다.
김씨의 아버지 김삼영(78)씨는 11일 <한겨레>에 “새벽 6시30분에 출근해 밤 10시나 돼야 퇴근했다. 얼굴 볼 시간도 거의 없었다”며 울먹였다. 숨진 당일에도 김씨는 355개의 택배상자를 들고 나갔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과로사 대책위)의 지난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이전 택배노동자의 하루 평균 배송 건수는 247.3개였지만 코로나19 이후엔 313.7개로 26.8% 늘었다. 김씨가 실어나른 한달 평균 택배 상자는 8천여개였다고 노조는 전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평소 집에서 일 얘기를 하지 않던 아들이 최근 부쩍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내가 걱정할까봐 웃으며 말하는데 속으로는 얼마나 힘들기에 저럴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노조와 유족은 김씨의 죽음을 과로사로 보고 있다. 과로사 대책위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에 응답한 택배노동자 821명 가운데 37.1%(305명)가 호흡곤란 또는 가슴통증을 경험했다. 지난 7월 택배노동자 서아무개씨도 근무 중 가슴통증을 느끼고 병원을 찾았으나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과로사 대책위는 “김씨가 일하던 터미널에 추석 기간 분류작업 인력이 단 한명도 투입되지 않았다”며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그가 격무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앞서 정부와 택배회사들은 추석을 앞두고 택배노동자들의 업무량을 덜어주기 위해 분류작업을 위한 인력 2067명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김씨의 근무지에는 분류인력이 투입되지 않아 김씨와 동료 2명이 분류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택배 상자를 세부 지역별로 구분해 차량에 싣는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의 ‘본업’은 아니지만 가외로 떠맡겨진 업무로 실제 업무량의 43%를 차지한다. 씨제이대한통운 관계자는 “현재 고인의 사인과 관련해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며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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