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랜선 동남아
① 열린 세계 동남아: 동남아의 산물과 교역 1
신드바드 배가 동남아로 향한 이유
인도 등에 ‘황금의 땅’으로 알려져
귀하고 비싼 향료·염료 산지이기도
로마 ‘지리학’에도 황금반도 나와
고대부터 사람 끄는 지남철 구실 한
금붙이 미얀마·베트남·타이서 발굴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금화도 나와
활발한 동서교류의 현장임을 증명
① 열린 세계 동남아: 동남아의 산물과 교역 1
신드바드 배가 동남아로 향한 이유
인도 등에 ‘황금의 땅’으로 알려져
귀하고 비싼 향료·염료 산지이기도
로마 ‘지리학’에도 황금반도 나와
고대부터 사람 끄는 지남철 구실 한
금붙이 미얀마·베트남·타이서 발굴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금화도 나와
활발한 동서교류의 현장임을 증명
황금의 땅, 수완나부미로 불렸던 동남아시아에는 금빛 불교 사원들이 많다. 미얀마 바간에 12세기 지어진 쉐지곤 스투파. 서강대 동아연구소 제공
인도 고대 문헌의 ‘수완나부미’ 증기선이 개발되기 전까지 배를 이용한 지역 간의 이동은 제약이 많았다. 오랜 항해를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선박을 만드는 것도 망망대해에서 항로를 제대로 찾아가는 것만큼 중요했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기 전까지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근거리 항해였고, 되도록 육지 가까이 항해하다가 적당한 항구에 내려 물과 식량을 보충하고 배를 수선해 다음 목적지에 가는 식으로 장거리 항해를 했다. 인도, 스리랑카에서 동남아 방면으로 갈 때 거쳐 가는 곳이 바로 이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였다. 신드바드가 외국에서 물건을 사다 팔며 이문을 얻기 위해 항해를 한 방식도 이런 근거리 항해였기에 니코바르 제도가 그의 모험담 속 배경이었다는 주장이다. 신드바드 역시 바닷길 교역의 일원이었던 셈이다. 이미 9세기에 쓰인 중국과 인도의 여행기에 안다만 제도에 식인종이 산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신드바드가 니코바르 제도에서 난파했다는 추정은 비단 식인종 때문만은 아니다. <천일야화>에는 신드바드가 여기서 단향 등을 구해 귀국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동남아는 아랍과 중국에서 귀하게 여긴 값진 향료와 염료의 산지이기도 하다. 신드바드의 배는 왜 인도에 머물지 않고 동남아로 향했을까? 여행기와 모험담에 나오는 동남아는 다종다양한 위험이 도사린 곳이지만 동시에 일확천금의 땅이기도 했다. 동남아가 ‘열대’, ‘미개’, ‘원시’의 땅이라는 상상은 근대의 것이다. 이국인들에게 동남아는 일찍이 “황금의 땅”으로 알려졌다. 정말 황금이 나오는가, 황금을 구할 수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아랍에서 인도를 거쳐 동남아로 떠난 사람들, 인도에서 동남아로 떠난 사람들에게는 동남아가 황금의 땅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흔히 동남아의 고대 문명, 동남아의 역사시대는 인도인들이 기원전 2세기부터 대거로 혹은 간헐적으로 이주함으로써 시작됐다고 한다. 이를 ‘동남아의 인도화’라고 한다. 조르주 세데스라는 프랑스 학자가 처음 주장한 ‘인도화’는 고대 동남아 문명에 미친 막대한 인도의 영향을 말해준다.
금판, 4세기, 베트남 옥애오 출토, 안장성 박물관. 서강대 동아연구소 제공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금화, 2세기, 베트남 옥애오 출토, 호찌민역사박물관. 서강대 동아연구소 제공
방콕 공항의 이름이 된 이유 아마도 수완나부미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타이 방콕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방콕 국제공항의 이름이 수완나부미(수완나품)이다. 그러면 방콕이 황금의 땅일까? 방콕 국제공항은 2006년에 개항했으니 원래 수완나부미라 불리던 곳이 아니다. 방콕에 동남아의 허브 공항을 만들기 위해 처음 땅을 매입한 것이 1973년이고, 이때 수완나부미란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그러면 타이는 왜 옛 지명을 버리고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황금의 땅이라는 명성을 언제 처음 얻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타이가 수완나부미를 공항 명칭으로 차용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동남아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곳이 수완나부미이기 때문이다. 불교 경전 <밀린다팡하>(彌蘭陀王問經)와 스리랑카의 역사서 <대사>(大事, Mahavamsa)에는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아소카)왕이 소나와 웃타라라는 두 승려를 보내 동남아에 불교를 전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즉 황금의 땅, 수완나부미는 불교가 최초로 전해진 곳이다. 국교는 아니지만 국민의 95%가 불교신자인 타이가 불교 종주국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이름은 있을 수 없다. 처음 불교가 전해진 나라, 불교국가로서의 타이라는 자긍심을 수완나부미 공항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금은 동남아 여러 곳에서 난다. 미얀마 중부, 타이 푸껫과 말레이반도, 중부 베트남과 캄보디아, 필리핀 루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중서부 등에서 금이 난다. 인도와 지리적 거리가 먼 필리핀이나 보르네오를 기원전부터 수완나부미라고 불렀을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푸껫을 포함한 말레이반도 중부, 오늘날 타이와 말레이시아 접경지대가 ‘황금의 땅’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서아시아나 인도에서 배를 타고 동진했을 때, 먼저 닿는 곳이 이곳이고, 고대부터 이 지역이 교역항으로 번창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충분히 이를 입증한다. 오늘날도 인도 결혼 시즌에는 전세계 금값이 들썩인다고 할 정도이니 예나 지금이나 금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지남철 구실을 했던 것이다.
금판을 만드는 미얀마 장인들. ‘앰퍼샌드 트래블’(ampersandtravel.com) 갈무리
여전히 동서로 열린 동남아 동남아 현지에서는 인도의 고대 문자들이 종종 발견된다. 타이 끄라비에서 발견된 3세기께의 도구 중에는 인도 남부 타밀 문자로 새긴 금세공 장인의 이름 ‘페룸파단’(Perumpadan)이 확인됐다. 인도의 11세기 문헌에서는 수완나부미에서 가져온 금을 은이나 구리가 섞인 정도에 따라 붉은 금, 백금으로 다르게 분류하여 쓰기도 했다. 금에 대한 집착은 금을 발견하고 순도 높은 금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기술 발전을 낳았다. 그 첫째 조건인 ‘금의 발견’이 수완나부미에서 가능했다면 너나없이 동남아로 향하는 배를 띄우지 않았겠는가? 신드바드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금은보화의 유혹 탓이다. 수완나부미는 모험가의 환상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한 이상향이었다. 금으로 비롯된 동서교류는 동남아가 동서로 ‘열린 지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는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아시아 지역연구의 새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해 40년간 지역연구에 매진해왔다. 동남아시아의 경제·사회·문화적 중요성이 커진 신남방 시대, 연구소는 그동안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두어 멀지만 가까운 이웃 동남아의 다양한 면모를 전한다. 랜선 여행을 하듯이 흥미롭게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를 소개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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