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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과로사 대책에도…머리 다치고, 퇴근 늦춰진 롯데택배 기사들

등록 2020-11-06 07:59수정 2020-11-06 09:12

분류인력 투입 대책 발표 뒤
파주집배센터로 옮긴 40여명
하역 도크와 탑차 높이 달라
머리 부딪히는 부상 잇따라
회사 “작업 인원 증원 등 개선”
5일 오전 롯데택배 택배기사 ㄱ(66)씨가 ‘까대기’ 작업을 하다 1톤 탑차 뒷문 상단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고 있다.
5일 오전 롯데택배 택배기사 ㄱ(66)씨가 ‘까대기’ 작업을 하다 1톤 탑차 뒷문 상단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고 있다.

“피 나잖아.” 5일 택배 레일 돌아가는 금속음만 가득하던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 경기도 파주집배센터(센터)가 갑자기 술렁거렸다. ㄱ(66)씨가 모자를 벗자 흰머리 사이로 빨간 피가 보였다. “도크(트럭 하역 플랫폼)가 높아 탑차 뒷문 상단에 머리를 부딪히기 십상이야.” ㄱ씨를 보러 온 ㄴ(59)씨의 이마도 부어 있었다. 그도 지난 3일 ㄱ씨처럼 탑차 뒷문 상단에 부딪혔다. 두 사람 뒤로 머리가 부딪힐까 허리를 굽힌 채 택배를 옮기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왜 머리를 찧으며 ‘까대기’(택배를 지역별로 분류하고 트럭에 실어 정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을까?

롯데택배가 과로사 대책으로 노동 강도 완화를 약속했지만 경기 북부 택배기사들은 오히려 근무 환경이 나빠졌다고 하소연한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달 초 롯데택배는 고양시에 있던 롯데택배 5개 대리점 작업장을 폐쇄하고, 해당 작업장을 모두 파주집배센터로 옮겼다. 택배기사 40여명의 업무 장소도 파주로 바뀌었다.

롯데택배 파주집배센터 도크 모습. 11톤 트럭 용으로 설치돼 1톤 탑차 적재함보다 60㎝∼70㎝ 가량 높다.
롯데택배 파주집배센터 도크 모습. 11톤 트럭 용으로 설치돼 1톤 탑차 적재함보다 60㎝∼70㎝ 가량 높다.

5일 오전 롯데택배 택배기사 ㄷ(70)씨가 1톤 탑차로 들어가고 있다. 트럭에 머리가 닿을까 조심스레 내려가는 모습이다.
5일 오전 롯데택배 택배기사 ㄷ(70)씨가 1톤 탑차로 들어가고 있다. 트럭에 머리가 닿을까 조심스레 내려가는 모습이다.

문제는 센터가 11톤 트럭 물류 작업에 맞춰진 시설이라는 것이다. 11톤 트럭에 맞춰 사람 가슴 높이에 설치된 도크보다 1톤 탑차 높이가 60~70㎝가량 낮다. 택배기사들이 ‘까대기’를 위해 도크에 있는 택배를 들고 트럭에 실으러 내려갈 때면 머리가 탑차 뒷문 상단에 닿을까 봐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보통 택배기사들은 탑차 높이보다 낮은 곳에서 일한다. 기자가 택배를 수차례 날라보니, 머리가 부딪힐까 몸을 잔뜩 숙이게 돼 허리에 가해지는 부담이 컸다. ㄴ씨는 “며칠 안 됐는데 벌써 허리에 부담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롯데택배에서 일한 ㄷ(70)씨도 “이렇게 열악한 환경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탑차로 이동할 때 때 밟는 도크 끄트머리가 고무 재질인 것도 위험해보였다. ㄴ씨는 “새벽에는 이슬이 맺혀 고무가 미끄러워 중심을 잡기 힘들다. 겨울이면 얼텐데 미끄러져 다칠까 벌써 두렵다”고 말했다.

롯데택배 파주집배센터 한켠에 있는 대리점 모습. ㄴ씨는 “정상적인 대리점은 이래야 한다. 이 높이여야 짐을 옮기기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롯데택배 파주집배센터 한켠에 있는 대리점 모습. ㄴ씨는 “정상적인 대리점은 이래야 한다. 이 높이여야 짐을 옮기기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레 오분류 물량이 늘고 까대기 시간이 길어진다. 이는 과로로 연결된다. 40대 택배기사 ㄹ씨는 4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11시가 돼서야 퇴근했다. ㄹ씨는 “예전에는 낮 12시면 배송지로 출발할 수 있었는데 어제(4일)는 오후 2시 넘어 출발했다. 퇴근 시간도 그만큼 늦어졌다”며 “제대로 분류가 안 돼 오분류 물량만 전체의 30% 가까이 발생하고 있다. 하나하나 원래 장소로 되돌려야 해 일이 늘었다. 과로사 대책도 발표했는데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지난 3일 1톤 탑차 뒷문 상단에 부딪혀 롯데택배 택배기사 ㄴ(59)씨 머리에 난 상처.
지난 3일 1톤 탑차 뒷문 상단에 부딪혀 롯데택배 택배기사 ㄴ(59)씨 머리에 난 상처.

ㄴ씨는 “대리점 차원에서 롯데택배 본사에 이러한 문제를 항의했지만 본사에선 ‘그만둬라’는 식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에 ㄴ씨는 지난 2일부터 삐뚤빼뚤한 글씨로 ‘우리는 살고 싶다’라고 쓴 머리띠를 둘렀다. 본사 직원들이 보라는 ‘무언의 시위’다.

이에 대해 롯데택배 관계자는 “본사가 ‘그만둬라’는 식으로 말한 적은 없다. 택배기사들을 위해 자동분류장비를 설치했지만 초기라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작업 인원을 늘리고 택배기사들의 의견을 취합해 개선 방안을 만들어 진행할 예정이다”라며 “고양시 내 택배부지를 찾고 있으며 부지 물색이 완료되는 즉시 대리점을 옮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11톤 트럭에 싣는 컨테이너와 1톤 탑차의 높이 차이. ㄴ씨 제공
11톤 트럭에 싣는 컨테이너와 1톤 탑차의 높이 차이. ㄴ씨 제공

▶바로가기: “틈없이 상자 붙여!” 2초에 한개씩 착착…한시간만에 온몸 통증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6010.html

택배와 18시간 씨름…‘짜장면 점심’ 20분이 휴식의 전부였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58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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