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에 맞서 싸울 때 꼭 필요한 것은 ‘용기’와 ‘연결’입니다.”
경기 지역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 보육교사인 이아무개(41)씨는 어린이집 원장의 갑질에 맞서 ‘위탁 취소’를 이끌어낸 과정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지난 2월 어린이집에 취업한 뒤 원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이씨는 “전 근무지에서 내부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원장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학부모와 동료 교사들에게 험담을 했고 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부당한 업무를 지시했다”고 털어놨다. 원장은 이른바 ‘바른말’을 조금이라도 하는 교사들을 괴롭히기 일쑤여서 1년 새 9명이 일을 그만뒀다.
원장의 괴롭힘을 견딜 수 없었던 이씨는 지난 6월 동료 교사와 함께 노동조합(전국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과 직장갑질 119의 문을 두드렸다.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으로 신고하고, 언론에 제보했으며, 시의원에게 행정감사를 요청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시 당국은 지난 7월께 해당 어린이집의 위탁을 취소했고 현재 해당 어린이집은 사회서비스원이 운영하고 있다. 이씨는 15일 <한겨레>에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이 원장으로부터 괴롭힘을 많이 당하는데 이를 바꾸기 위해선 스스로 권리를 찾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며 “고용주에게 개인이 맞서 싸우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동료들과 연대하고 노조와 같은 단체의 도움도 꼭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이씨의 사연을 ‘제2회 직장갑질 뿌수기’ 공모전의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직장갑질 119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모욕, 폭언, 감시 등 여러 갑질에 시달리면서도 향후 이직 시 평판조회 등을 우려해 참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씨의 수기는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희망을 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직장갑질 119는 “지난해부터 실시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 개정을 통한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간접·특수고용,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노동자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괴롭힘에 대한 처벌 조항과 ‘보복갑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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