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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00만명 중에 1명…세아는 크게 웃지도 울지도 못한다

등록 2020-11-25 04:59수정 2021-07-06 15:34

‘모야모야병’ 앓는 8살 세아 가족
어릴 때부터 잦은 구토와 두통
성격 예민한 탓이라 여겼지만…
작년에 몸 오른쪽 마비 오고서야
뇌혈관 좁아지는 희귀병 진단

10시간 대수술은 끝이 아닌 시작
후유증으로 성조숙증까지 와
고작 8살에 감정 변화도 조심
격한 운동이나 공부도 조심

아버지 당뇨 앓으며 택시 영업
아픈 남편과 세 자녀 돌보는 엄마
코로나 실직으로 알바도 끊겨
월수입 150만원, 지출 240만원

“다섯식구 탈 없이 살 수 있다면…
새벽마다 깨서 세아를 봐요
숨쉬면 다행이다, 눈물이 막 나요
갑작스럽게 혈관이 막히는 모야모야병이 발병해 지난 3월 뇌혈관 수술은 받은 세아(가명·오른쪽)가 지난 18일 오후 대전 서구 도마동 집 안에 쳐놓은 텐트 안에서 오빠와 놀고 있다. 세아는 감정 변화가 크면 뇌혈관에 안 좋아 과하게 웃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된다. 대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갑작스럽게 혈관이 막히는 모야모야병이 발병해 지난 3월 뇌혈관 수술은 받은 세아(가명·오른쪽)가 지난 18일 오후 대전 서구 도마동 집 안에 쳐놓은 텐트 안에서 오빠와 놀고 있다. 세아는 감정 변화가 크면 뇌혈관에 안 좋아 과하게 웃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된다. 대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랑이 너무 아쉬워~.” 8살 세아(가명)는 ‘미스터트롯’을 즐겨 본 뒤 트로트에 푹 빠졌다. 요즘 가장 꽂힌 노래는 가수 장윤정의 ‘사랑 참’이다. 웃풍을 막느라 천장에서 담요를 늘어뜨린 현관 옆 전신거울 앞쪽이 세아의 주 무대다. 무대 위에서 세아는 하루에도 몇번씩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춤춘다. 여느 가정 같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딸의 모습을 보며, 엄마 김진아(가명·43)씨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100만명당 1명…뇌혈관 좁아지는 ‘모야모야병’

세아가 걸린 희귀병 ‘모아모야병’ 때문이다. 병 때문에 세아는 과하게 웃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된다. 감정 변화가 크면 뇌혈관에 안 좋다. 뜨거운 걸 먹을 때 ‘후우’ 부는 것도 금물이다. 춤도 크게 춰서는 안 되고 운동은 더더욱 안 된다. 공부 때문에 머리를 지나치게 써도 좁아지는 뇌혈관에 악영향이 올 수 있다. 뇌혈관이 연기처럼 ‘모락모락’ 올라가는 모습에서 이름을 딴 모야모야병은 인구 100만명당 1명 정도만 걸릴 정도로 희귀병이다.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협착되는데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 방법도 아직 나오지 않은 불치병이다.

엄마는 지난 8년이 후회스럽다. 너무 세아에게 소홀하지 않았나 싶어서다. 어렸을 때부터 세아는 유난히 두통을 자주 호소했다. 토하는 횟수도 잦았다. 체한 것 같아 손을 따주거나 월요일마다 병원에 데려가 수액을 맞는 게 일상이었다. 18일 대전에서 만난 엄마 김씨는 “그냥 성격이 예민한 줄 알았어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푸나 싶었고요. 토를 해도 음식물이 섞여 나오는 게 아니라 물처럼 액만 나오니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모야모야병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라고 말했다.

모야모야병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지난해 9월. 외갓집에 놀러 가 오른손에 통닭을 집고 먹던 세아가 갑자기 손에 잡았던 닭을 놓쳤다. 몸 오른쪽 절반이 마비가 와 혀까지 굳은 세아가 “말이 안 나와”라고 말하는 듯했지만 어눌해 알아듣기 힘들었다. 맨 처음엔 장난인 줄만 알았다. 몸에 힘이 빠지고 마비가 계속되자 급하게 소아과로 세아를 데려갔다. 그러나 바로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를 못 받았다. 80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바로 융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몇주 뒤 찍은 엠아르아이 결과 세아는 모야모야병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뇌 뒤쪽 혈관이 엄청 꼬여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날 집에 와서 4시간 넘게 울었어요.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전조 증상이 토와 두통이라는데 그걸 왜 못 알아차렸는지 지금도 제 자신이 원망스러워요. 돈만 있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진단을 받았을 텐데 그것도 너무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엄마 김진아(가명)씨가 세아의 수술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대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엄마 김진아(가명)씨가 세아의 수술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대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머리에 두뼘 길이 흉터 생겼지만…완치 불가에 성조숙증까지

지난 3월 세아 머리에 두뼘이 넘는 흉터가 생겼다. 이마 머리선을 따라 한뼘, 왼쪽 관자놀이를 따라 한뼘씩 머리를 열어 혈관을 자라게 하는 수술을 받았다. 오전 8시 반에 들어가 오후 6시까지 종일 진행된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1차 수술은 시작일 뿐이다. 왼쪽 뇌를 수술해 오른쪽 몸의 마비를 막았으니 다음에는 오른쪽 뇌를 수술해 왼쪽 몸 마비를 막아야 한다. 최대 5번까지도 수술이 이어질 수도 있다. 감정이 격해지면 몸에 마비가 올 수 있고 그럼 바로 2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 다시는 머리를 빡빡 민 딸의 모습을 보기 싫은 김씨는 너무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세아를 달래며 지켜본다.

“세아가 걱정되니까 매일 같이 자요. 새벽이면 저도 모르게 깨요. 그러면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서 세아를 비춰봐요. 살아서 숨 쉬는구나 싶으면 다행이다 싶어서 눈물이 막 나요.”

그렇지만 세아는 마냥 가만히 있을 수 없는 8살이다. 하루는 할머니 집에 놀러 가 트로트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를 불렀다. 다음날 새벽 머리가 너무 아파 잠에서 깨 응급실에 실려 갔다. 코로나19 환자 때문에 응급실이 가득 차 병실 밖 의자에 누웠다. 담요를 덮은 채 세아는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울었다. 세아는 “아이돌 노래는 음 맞추기 힘들어서 트로트를 많이 불러요. 랩 하기 어렵고요. 그날 할머니 앞이라 노래를 불렀는데 다음날 새벽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어요. 원래 머리가 아프면 왼쪽만 아프거든요. 근데 그날은 누가 머리 전체에서 쿵쿵 뛰는 느낌이었어요. 원래 안 우는데 엄청 울었어요”라고 말했다.

뇌수술은 세아에게 예기치 못한 후유증을 남겼다. 바로 성조숙증이다. 김씨는 “뇌수술 뒤 뇌하수체에 문제가 생겼는지 성조숙증이 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커지는 증상이 나타나서 한달에 한번씩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성조숙증 때문에 세아가 느끼는 신체적인 고통이 더 커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8살에게 2차 성징이 벌써 나타난다는 건 스트레스다. 호르몬 주사도 고역이다. 평소에 아무리 머리가 아파도 웬만해선 울지 않는 세아지만 호르몬 주사는 너무 아픈지 눈물을 찔끔할 때가 많다.

세아가 동생과 함께 컴퓨터 그림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린 엄마 열굴을 보여주고 있다. 대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아가 동생과 함께 컴퓨터 그림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린 엄마 열굴을 보여주고 있다. 대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버지 당뇨라 일 어려운데…쌓여가는 다섯 가족의 걱정

세아는 언제라도 왼쪽 몸에 마비가 오면 2차 뇌수술을 받아야 한다. 엄마는 수술비는 한시름 놓는다고 했다. 1차 수술비 1400만원은 보건소로부터 1250만원(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한달에 한번 받는 모야모야병 검사나 호르몬 주사도 산정 특례 대상자라 따로 돈이 들지 않는다.

문제는 생활비다. 아버지 박필우(가명·43)씨가 심한 당뇨병으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여름 당뇨병 검사를 받았을 때 혈당 수치가 400mg/dL가 넘게 나올 정도로 박씨의 병세는 악화됐다. 당뇨로 이가 빠져 생니가 5개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다. 세아 집에서 유일하게 돈을 벌지만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일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 수 있는 야간에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박씨는 하루를 일하면 사흘을 쉬어도 몸이 무겁다. 어쩌다 운행을 나가면 코로나19 때문인지 손님이 없을 때가 많다. 코로나19가 너무 심할 때는 혹시 손님에게 감염돼 가족들에게 옮길까 봐 일을 몇주 동안 쉰 적도 있다. 박씨는 “사람이 너무 없을 때는 온종일 뛰어 5만원 번 적도 있어요. 한시간에 사람 한명 겨우 타더라고요. 그래도 요즘 좀 나아져 한달에 150만원 정도 버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식당 아르바이트와 학교 배식, 옷집 아르바이트까지 ‘안 해본 일’이 없는 김씨 수입도 사라졌다. 아르바이트할 때는 그나마 50만~60만원이라도 벌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다니던 옷집이 문을 닫았다. 일을 새로 알아보려 해도 아픈 남편과 세아를 포함해 세 자녀까지 돌봐야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수입은 150만원인데 다섯 식구의 생활비와 월세까지 매달 240만원이 나간다. 겨울이면 보일러 돌리는 돈이 추가돼 더 걱정이다. 기온이 낮아지면 세아 뇌혈관이 더 수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지하 빌라라 그런지 벌써 웃풍이 강하다. 방 안에 방한 텐트까지 설치했지만 겨울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인 세아 말고 첫째와 셋째가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면 모야모야병 원인이 ‘유전’일 수 있다는 말이 떠올라 당장에라도 엠아르아이를 찍고 싶지만 빠듯한 형편에 엄두를 못 낸다. “그 전까지는 보일러를 잘 안 틀고 살았어요. 껴입으면서 버티고 그 돈으로 애들 맛있는 거 사주자는 생각이었죠. 이번 겨울에는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야 하는데 얼마나 나올지 두려운 게 사실이에요. 곰팡이도 많고 습기도 자주 차서 이틀에 한번씩 장판을 말려야 하는 곳인데 세아한테도 안 좋을 거 같아 집을 옮겨야 하나 고민인데 쉽지가 않네요.”

3월 수술 때 삭발했던 머리카락이 어느새 자라 흉터를 가렸다. 흉터는 보이지 않지만 지워지지는 않는다. ‘흉터’는 세아가 누리는 일상의 영토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잠식해간다. 운동을 좋아하는 세아는 지난해 태권도 1품을 땄지만 1살 어린 동생이 자기보다 먼저 2품을 따는 걸 지켜봐야 했다. 어린 마음에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다. 줄넘기도, 달리기도 못 하고 좋아하던 피구도 못 한다. 매운 음식도 못 먹는다. 학교 공예 시간에 점토로 초밥을 만들고 ‘샌드위치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석할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는 세아지만 요리사의 꿈도 포기했다. 오래 서 있지도 못하고 너무 무거운 걸 많이 들어야 하니 몸이 못 버틸 것 같아서다. ‘흉터’를 안고 사는데도 수학 쪽지시험에서 95점을 맞아 올 정도로 매사에 열심인 세아를 보고 엄마 김씨는 고맙기만 하다.

엄마의 꿈은 별다른 게 아니다. “세아가 견뎌내서 고맙고 살아 숨 쉬는 게 고마워요. 세아에게 바라는 건 없어요. 공부해서 머리 아플 수 있으니 빵점 맞아도 돼요. 남편도 세아도 모두 건강하게, 지금처럼 우리 다섯 식구가 먹고 자고 그렇게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세아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우리은행 1005-903-850183 예금주: (사)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굿네이버스(1544-7944)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굿네이버스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16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세아의 의료비 및 통원치료비, 긴급생계비, 주거환경 개선비로 사용되고, 1600만원 이상 모금되면 세아네 가족처럼 어려운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수현(가명)의 사연(<한겨레> 2020년 10월5일치 19면)이 소개된 뒤 총 2138만7200원(11월20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많은 후원자가 “수현이에게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일시후원계좌를 통해 후원해주신 296명과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후원의 손길을 전달한 1491명의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후원금은 수현이에게 필요한 재활치료비와 눈 수술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대전/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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