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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한항공 사내 성폭력, 가해자 사직으로 끝낼 일인가요?”

등록 2020-12-01 04:59수정 2020-12-01 07:52

피해자는 ‘인사 불이익’ 호소
회사, 공식 조사·가해자 징계 안해

“직장내 성폭력 뿌리뽑아야”
조원태 회장에 의견서 보내고
손배소송·고용노동청 진정 제기
“적어도 전수 실태조사는 해야”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와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한진칼 앞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에게 사내 성폭력 사건의 직접 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와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한진칼 앞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에게 사내 성폭력 사건의 직접 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한항공 직원인 ㄱ씨는 2017년 7월 사내 성폭력을 경험했다. 피해자의 상사인 ㄴ씨는 업무와 관련된 보고를 하라며 회사 밖으로 불렀다. 자신의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ㄴ씨의 지시를 ㄱ씨는 뿌리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ㄱ씨는 “성폭행을 피하기 위해 1시간가량 상사와 몸싸움을 벌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ㄱ씨는 이후 ㄴ씨가 평가자인 사내 테스트에서 네차례 탈락했고,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ㄱ씨는 이 모든 일을 우연이라 믿을 수 없었다.

ㄱ씨는 2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자신의 피해를 회사에 알렸다. 회사는 ㄴ씨를 징계 없이 사직 처리했다. 이에 반발한 ㄱ씨는 1년째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과 고용노동청 진정 등을 제기하며 싸우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ㄱ씨와 만나고 이후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했다. 자신의 피해에 대한 회사의 공식 조사와 사내 성폭력 실태 조사를 요구하는 그는 “피해를 당한 사람이 더 고통받는 문화를 바꾸기 위한 사명감으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ㄱ씨가 성폭력 피해를 2년이 지나 회사에 알린 것은 과거의 경험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12년 전에도 회식 자리에서 다른 상사로부터 성추행(강제적 신체접촉)을 당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주변으로부터 “분위기를 흐린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시선에 계속 시달렸다. “사건이 공공연하게 회사 안에 공유되면서 주변 동료와 상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았어요. 철저히 혼자였죠.” 이번에도 ‘주홍글씨’가 따라다닐까 봐 주저했지만 ㄱ씨는 2017년 사건 뒤에 자신이 부당한 인사 조처를 당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 동료들이 자신과 같은 피해를 겪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그는 ㄴ씨의 성폭력과 부당 인사, 2차 가해 등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해달라고 지난해 12월 회사에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의 바람과 다르게 지난해 12월31일자로 ㄴ씨를 공식 조사, 징계 없이 사직 처리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대한항공은 <한겨레>에 “피해자 보호 원칙하에 모든 진행사항을 결정했다”며 “피해사실 확인 후 즉각적으로 징계 절차를 밟고자 했으나 피해자와 대리인의 비밀유지 요청으로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ㄱ씨는 “회사는 절차대로 징계위원회 등을 열면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입단속을 시켜도 제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사직서 처리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식으로 몰아갔다”고 반박했다.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피해자 보호와 조사를 같이 할 수 있음에도 조사를 개시조차 하지 않은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ㄱ씨는 자신의 사건을 계기로 직장 내 성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올해 3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하고, 7월에는 가해자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9월에는 고용노동청에 ‘직장 내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및 사용자 조치 의무 위반’으로 진정을 넣어 최근 조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20일 손해배상 소송 2차 조정기일에서 ㄱ씨는 대한항공에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외부기관의 전수 실태 조사를 실시하는 조건으로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ㄱ씨는 “회사는 피해자 특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조사를 회피하고 있다”며 “회사가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성폭력 없는 일터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는 30일 서울 중구 한진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항공은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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