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규 변호사가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경기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등 외국인 형사사건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경기 안산시 원곡법률사무소의 최정규(43) 변호사는 공익 활동으로 외국인 형사사건을 많이 다뤄온 변호사 중 한명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고양 풍등 화재 사건 변호인단’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가 외국인 변론 현장에서 느낀 점들을 들어봤다.
―외국인 형사사건을 많이 맡게 된 계기나 동기가 있나?
“2006~2009년 대한법률구조공단 안산출장소장을 할 때 외국인 국선변호를 많이 맡았다.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여주면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거나 ‘통역인이 그렇게 얘기하래서 진술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자주 봤다. 잘못을 감추려는 허위 주장일 수도 있지만, 외국인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에 의문이 생겼다. 제도권 법률 구조에서 소외된 이들을 변론하고 싶어 2012년 외국인들이 밀집해 사는 안산 원곡동에서 개업하면서 외국인이 피의자이거나 피해자인 사건들을 자주 다루게 됐다.”
―외국인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서 무엇이 가장 어렵고 아쉽나?
“언어다. 수사기관이 위촉하는 통역인 중 오랜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실력과 객관성이 검증되지 않은 통역인이 수사에 참여하는 것은 피의자 방어권 행사에 큰 걸림돌이다. ‘난 조서에 있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의 사실 여부를 사후에 확인할 장치가 없다는 건 실체적 진실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형사사법 체계에 큰 구멍이다.”
―신문조서 문제는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최소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전문 번역인을 통해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해 제공한 뒤 서명, 날인을 받아야 한다. 이게 왜 중요한지는 사법 농단 사건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3차례 조사의 신문조서 검토에 21시간 넘게 쓰고도 따로 날을 정해 조서를 추가 검토하겠다고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장 모든 사건에 적용하는 게 어렵다면 무죄 주장 사건부터라도 번역을 해야 한다.”
―사법기관이 외국인 노동자 사건을 다루는 데 편견이나 자기 편의주의에 빠져 있다고 보나?
“사법기관도 업무 가중이 심각하다. 그래서 더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사건을 처리하려는 태도가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변론하며 무죄 주장을 하면 판사, 검사, 경찰관들이 ‘어차피 떠날 사람인데 그냥 인정하면 되지, 왜 이렇게 다투지?’라는 식의 질문을 넌지시 던지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그것을 벗고 싶은 건 본능이다. 외국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고양 화재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변호인이 입회했는데도 경찰관은 피의자에게 ‘거짓말하지 마라’고 윽박지르며 자백을 강요했다. 객관적 증거와 명백히 배치되는 진술에 대해 거짓말 마라고 할 수는 있지만, 수사관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100회 이상 남발하는 건 허용될 수 없다. 그것도 강압 수사, 자백 강요 수사로 문제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국내외에서 외국인 혐오가 표출되는 상황에서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고양 화재 사건 때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반려하고 피의자가 석방되는 과정에서 피의자 얼굴 등이 언론에 노출됐다. 무죄 추정을 받고, 구속영장이 반려된 피의자를 언론에 공개할 이유가 있었을까? 경찰은 피의자의 성명 일부, 국적, 나이, 성별, 비자 종류를 적은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런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 보도가 외국인 혐오를 더 부추기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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