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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젠더 프리즘] 마땅하지 않은 입막음 / 이정연

등록 2020-12-08 18:09수정 2020-12-09 02:38

이정연 ㅣ 젠더데스크 겸 젠더팀장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교체된다. 후임으로 정영애 여가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됐다.

이정옥 여가부 장관의 이름은 올해 들어 세간에 자주 오르내렸다. 여성 관련 정책을 다루는 부처의 수장이 ‘권력형 성범죄’에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5일에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두고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학습할 기회”라고 말해 입길에 올랐다.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성명을 내어 이 장관을 비판했다. 마땅한 비판이었다.

지난 2일 이정옥 장관이 다시 화제의 한복판에 섰다. 이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 장관은 입을 한 번도 떼지 못했다. 야당이 “성인지 감수성 집단학습 기회 발언을 한 이 장관이 사퇴하지 않으면 법안 처리에 참여할 수 없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여야는 이 장관의 발언을 제한하는 데 합의하고 전체회의를 진행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언론은 신이 나 보일 지경이었다. ‘초유의 묵언 장관’, ‘입 열면 구설수’, ‘그 입 다무시오’ 따위의 문구를 넣어 관련 기사에 제목을 달았다. 마땅하지 않은 행태였다.

이정옥 여가부 장관이 보여준 행보는 분명히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입막음’이라는 조처에는 의문이 든다. 되레 여가부 장관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의기양양한 이들에게 그 손가락을 자신에게 돌려볼 것을 권하고 싶었다. 여당은 귀책사유가 있는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당헌을 고쳐가며 내년 4월 서울·부산에서 후보를 내기로 했다. 야당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수차례 “정치적인 해석을 말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성범죄 피해를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나서 공개한 것을 두고 온갖 해석을 갖다 붙였다. 이런 여야가 참으로 오랜만에 합의에 이른 게 여성가족부 장관의 발언권 제한이었다.

국회의원이 장관의 잘못을 따져 묻고, 임면권자는 그를 징계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 문제는 징계의 방식과 강도다. 비정상적인 방식과 강도의 징계는 그 정당성을 해친다. 여가위원들이 정부·국회 간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따라 입법 기관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면, 이 장관의 입을 막을 게 아니라 열었어야 했다. 끝내 뚜렷하게 밝히지 않은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입장과, 여가부 장관이 갖춰야 했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을 묻고, 그 답을 들었어야 했다.

어떤 경우 장관의 잘못에 임면권자는 단호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 피해를 본 사람의 빠른 피해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관되지 않은 단호함은 논란을 불러온다. 이정옥 장관 발언 뒤 수많은 주요 부처의 남성 장관들 그리고 정치인들의 잘못된 언행들을 떠올려 본다. 같은 잣대로 평가했던가? 잦은 입방아에 올랐지만, 천수를 누린 거나 다름없던 망언 장관들이 떠오른다.

유독 주요 부처가 ‘아닌’ 부처의, 여성 장관에게만 아주 엄격한 조치를 단호하게 취하는 장면들을 본다. 여기에 겹치는 것은 여성 장관들을 향한 온라인상의 가차 없는 비난이다. “(여성 장관들 언급하며) 이 집구석에 밥은 누가 하나” 같은 말부터 온갖 욕설까지 등장한다. 이 장면들은 결코 다른 맥락에 놓여 있지 않다. 직접이냐 간접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입 막기’이다. 부족한 자질과 잘못을 여성이어서 감싸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관장하는 부처의 규모가 크든 작든, 그래서 그 힘이 강하건 약하건, 장관이 여성이건 남성이건 일하며 빚은 잘못은 비판하고, 입을 열어 그 잘못에 분명하게 사과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은 그 사실을 남겨야 한다.

이정옥 장관의 발언권을 제한한 채 진행한 국회 여가위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은 성범죄자의 주소 공개 범위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일명 ‘조두순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의원과 장관 사이의 질의응답은 통째로 생략됐다.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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