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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 방은 범죄조직, 그 방의 너희는 수괴 조주빈의 조직원

등록 2020-12-13 09:14수정 2020-12-13 09:22

[토요판] 기획
‘박사방’ 사건 1심 판결문 분석

법원 ‘성범죄 범죄단체’ 최초 인정
‘시민방’ 13명 범죄조직 구성 판단
“오로지 범행 목적에 구성한 조직”

피해자 유인, 착취물 제작, 유포 등
재판부 “조직적 구조 갖춰” 판시
“조직원 아니다” 공범들 주장 기각
‘수괴’ 조주빈 40년, 공범들 7~15년형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범 조주빈씨에게 지난달 26일 징역 40년형이 선고되고, 공범들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사건 1심은 무거운 형으로 단죄했다는 것뿐 아니라 법원이 성범죄 사건에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19쪽으로 이뤄진 판결문을 입수해 이런 판단의 이유를 분석했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현우)는 ‘박사방’을 운영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범 조주빈(25)에게 징역 40년형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조씨가 공범들과 함께 범죄단체를 만들었다고 보고 법원이 범죄단체조직죄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최초 인정이다. 법원이 조씨 등의 범행을 조직범죄로 판단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한겨레>는 조씨 사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해봤다.

119쪽으로 이뤄진 판결문은 조씨 등 피고인 6명의 공소사실을 설명하는 부분만 61쪽이다. 방대한 분량만으로도 이 사건이 얼마나 중대한 강력범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에서 피해자 법률 지원을 하는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조씨의 형량에 대해 “살인 사건에서도 여러명을 고의로 살해했을 경우 나오는 정도의 형량”이라고 설명했다. 역시 범죄단체조직죄까지 적용된 공범들도 징역 7~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형법 제114조는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행위를 범죄단체조직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범죄단체에 가입만 해도 처벌한다는 뜻이다. 형량은 이런 단체가 목적하는 범죄를 기준으로 한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디지털 경로를 통한 조직적 성범죄를 더욱 폭넓게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재판부는 조씨가 다른 텔레그램 성착취범인 ‘부따’ 강훈(19)과 경남 거제시 공무원 천아무개(29) 등 12명과 함께 성착취 범죄단체를 조직했다고 봤다. 이번 판결에선 ‘태평양’ 이아무개(16), 전 담임교사 스토킹범 강아무개(24), 유료회원 임아무개(34)와 장아무개(41) 등 4명은 이런 범죄단체에 가입해 활동한 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 이유를 5쪽에 걸쳐 설명했다.

“범행 공모만을 목적으로 한” ‘시민방’

핵심은 ‘시민방’의 존재다. 판결문을 보면, 조씨는 지난해 8월부터 텔레그램 활동을 시작했는데 한달 뒤 ‘부따’ 강씨, 닉네임 ‘사마귀’ 등과 함께 ‘무법지대’라는 방을 시작으로 성착취방 운영자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조씨는 활동 가담 정도와 돈을 낸 액수에 따라 등급을 나눠 ‘일반방’(무료방), ‘시민방’, ‘유료방’ 등을 운영했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시민의회’, ‘노아의 방주’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운영한 ‘시민방’에서 범행 공모가 시작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시민방’을 “조씨와 그 공범이 아동·청소년 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이를 배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구성원들이 오로지 그 범행을 목적으로만 구성하고 가담한 조직”이라고 규정했다. ‘시민방’ 안에서 이뤄진 행위를 볼 때 “일련의 범죄 목적 외에 다른 조직 목적이나 구성원 상호 간의 인적 유대 관계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일반방에서 조씨가 제작한 성착취물을 소비하다가 ‘조씨와 어느 정도 친분 관계가 생겼거나 조씨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해준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특수한 그룹방’으로 연결되며, 그게 바로 ‘시민방’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조씨가 암시한 성착취물이 실제로 존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참여하면서 가상화폐를 제공하거나 조씨에게 제작을 원하는 성착취물의 내용을 제시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시민방’이 오로지 성착취 범행만을 목적으로 한 방이었다고 판단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의 박수진 변호사가 지난 7일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연서 기자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의 박수진 변호사가 지난 7일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연서 기자

“조주빈씨가 부여한 대로 역할 분담”

조직원들은 조씨의 지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재판부는 조씨가 이 조직의 ‘수괴’이자 ‘총괄책임자’라고 봤다. 조씨와 ‘부따’ 강씨는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마치 고액을 줄 것처럼 거짓말로 접근해 피해자를 물색하고 유인했다. 그러면 당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던 전 담임교사 스토킹범 강씨가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휴대전화번호 등을 조회해 조씨에게 넘겼다. 유료회원 임씨와 장씨, 공범 남경읍(29)은 조씨에게 돈을 내고 ‘시민방’에 들어가 특정 내용의 성착취물 제작을 조씨에게 요구했다. 공범 한아무개는 조씨가 시키는 대로 피해자를 성착취했고, ‘이기야’ 이원호(20)와 ‘태평양’ 이군은 조씨의 지시로 ‘박사방’을 관리하고, 조씨가 협박해 피해자로부터 뜯어낸 성착취물을 다른 방에 홍보하는 역할을 했다. 재판부는 ‘박사방’이 조씨가 부여한 대로 공범들이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체계를 갖췄다고 판단했다.

“조씨 단독범죄 아닌 조직범죄”

무엇보다 재판부가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 입증한 건 ‘범죄를 반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조직체계인가’라는 점이었다. 범죄단체조직죄가 인정되려면 통솔 체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범죄의 계획과 실행을 용이하게 할 정도의 조직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조씨의 범행이 조씨 단독으로는 이뤄질 수 없었고, 조직원의 단계별 역할 이행을 통해서만 가능했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의 근거는 다음 문장에 담겨 있다. “조씨가 각 범행을 통해 그 목적인 돈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유인해야 하고 유인된 피해자에 대한 성착취물을 제작해야 하며, 조씨가 성착취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그중 일부가 실제 조씨에게 가상화폐 등으로 대가를 제공해야 하며, 그 대가를 안전하게 돈으로 환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공범들은 “(‘박사방’ 범죄는) 조씨가 주도적으로 벌인 것으로, 다른 피고인들은 조씨로부터 속거나 이용당한 것에 불과하고, 구성원들 사이의 결합 정도나 역할 배분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삭제와 생성을 반복했던 수많은 박사방의 회원들 가운데 일부일 뿐, 구분되는 역할을 수행한 조직원이 아니”라고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들 사이에 거래된 가상화폐의 역할 등을 짚으며 공범들의 항변을 반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구성원들이 지급한 가상화폐가 직접 성착취 범행 자금으로 투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씨에게 가상화폐가 제공된 것은 일련의 성착취 범행이 이어지고 반복된 데 가장 직접적이고 주요한 동기라고 할 수 있는 점, 조씨의 지시에 따라 구성원들이 행한 피해자 유인 및 성착취물 유포 행위는 범행의 규모와 반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요인인 점 등은 ‘박사방 조직’이 범죄의 계획과 실행을 용이하게 할 정도의 조직적 구조를 갖추었는지를 판단하는 데 주요한 요소로 평가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의 삭제와 생성이 반복됐던 점에 대해서도 “조씨가 만든 성착취물을 유포한다는 사실과 참여자들이 조씨를 추종하며 그 지시를 따른다는 본질적 측면과 정체성은 변함이 없다”고 반박했다.

박 변호사는 이에 대해 “디지털 성폭력의 단계를 소지, 시청, 판매, 유포, 제작으로 나눴을 때, 각각의 단계는 이전 단계가 실행돼야만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지나 시청할 사람이 없으면 판매와 유포하는 자가 생기기 어렵다”며 “각각의 단계가 서로 다른 범죄가 아니라, 각 단계가 종합돼 범죄를 구성한다는 디지털 성폭력의 중요한 특징을 재판부가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범죄에 직접, 혹은 고의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말했다.

인용되지 않은 조씨의 반성문

조씨는 구치소 생활을 ‘1일 1반성문’을 쓰며 보냈다. 그는 구속 기간에 100장이 넘는 반성문을 재판부에 냈고, 10월22일 검찰의 무기징역 구형 뒤에는 거의 매일 재판부에 호소문도 제출했다. 이제까지 이런 반성문과 호소문은 형량 감경에 유리하게 작용해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주요한 요인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선 조씨가 쓴 반성문이 양형에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부는 양형 사유에서 “조씨는 피해자들을 속였을 뿐 협박·강요하지는 않았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자신의 범행을 진지하게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피고인이 오로지 금전적 이익만을 추구하며 반사회적, 반인륜적 범행을 태연히 반복한 점, 자신의 범행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통상 형사사건에서 그 정도로 반성문을 내면 판결문에 언급은 했을 텐데, 양형 사유에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며 “반성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이 몇마디 말로는 반성이 불가능한 심각한 반인륜적 범죄라는 인식을 재판부가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절반의 성공’이다

조씨와 공범 5명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검찰도 항소했다. 박 변호사는 1심 재판부가 조씨의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말한 이 문장에 상급심 재판부가 주목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피고인 조주빈은 피해자들을 속였을 뿐 협박이나 강요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피해자들을 이 법정 증인으로 불려 나오게 했다”는 문장이다. 박 변호사는 “조씨가 물증이 확실한데도 굳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내서 추가적인 고통을 안겨준 것을 재판부가 불리한 양형 사유로 본 것”이라며 “피해자가 피해 이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겪는 고통에 대해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조씨 판결이 난 뒤 성범죄자들이 수사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에선 “성범죄자를 살인자 취급한 건 너무하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누그러진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반면 조씨 1심 선고 당일 법원 앞에 모인 시민들은 “그 방에 입장한 너희들은 모두 살인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조씨의 엄벌을 촉구했다. 이번 선고로 이들의 구호는 절반쯤 가닿은 셈이다. 이번 판결이 일회성으로 그쳐선 안 되는 까닭이다.

“이번 판결은 디지털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의 잔혹성뿐만 아니라 피해의 심각성까지 재판부가 이해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 판결이 ‘엔(n)번방 사건’의 이례적 판결로만 남아선 안 됩니다. 지금 여기가, 디지털 성폭력 판결문을 올바르게 고쳐 쓰는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박 변호사가 단호히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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