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두번의 실패는 없다”고 했지만 패색이 짙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얘기다. 집값은 올랐고 서민들은 주거 불안에 떠는데 공공택지·주택을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은 땅투기에 나섰다가 꼬리가 잡혔다. ‘윗물은 맑다’더니 청와대 정책실장과 여당 국회의원들은 주택임대차보호법 발효 전 임대료를 ‘남들이 하던 대로’ 올렸다. 언행일치는 물론 역지사지도 없었다. ‘지공주의의 태두’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가 보는 문제의 핵심은 ‘토지 불로소득’이다. 토지를 ‘깔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이득이 생기면 투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자고 했다. 오늘도 “부동산 투기는 전 국민이 언제라도 감염될 수 있는 팬데믹”이라며 이를 종식하기 위한 ‘토지 불로소득 환수’를 백신으로 제시하지만 기득권의 반발은 언제나 그랬듯 강고할 것이다. 지난달 22일 대구 경북대에서 만난 김 교수가 자신의 생애와 지공주의 이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늘이 내려준 땅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모든 사람이 공유하자는 이상은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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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찾아간 대구 경북대학교. 들머리에 ‘진리·긍지·봉사’라는 글씨가 돋을새김된 상징탑이 청명한 하늘과 잘 정돈된 캠퍼스 잔디밭을 잇고 있었다. 고개 들어 향유할 수 있는 하늘과 발 딛고 살아가야 하는 땅. 사람이 곧 하늘이요,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라고 하지만, 땅 위의 사람은 전혀 평등하지 않다. 집값이 치솟아 주거불안에 떠는 서민들의 반대편엔 갖가지 방법으로 땅부자·집부자가 된 ‘성투(성공투자)’ 사례가 부동산 카페에 넘쳐난다.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사라진 지 오래다. 급기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사례까지 터져나왔다. 땅에 돈 놓고 돈 먹으며 영혼과 윤리마저 저당잡힌 현실. 무엇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토지 불로소득 환수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한국의 헨리 조지’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행정학)를 만났다. 추가 인터뷰는 전화로 진행했다.
사회정의·토지정책을 연구한 노교수의 학부 때 전공은 법학이다.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돌이 지나기 전 6·25가 터졌으며 부모 품에 안긴 채 피난을 내려왔다. 아버지 직장인 미군부대의 주둔지를 따라 경남 거제를 거쳐 대구에서 자라게 된다. 경북고 시절 그는 양주동 박사의 고려가요 해설서인 <여요전주>를 읽으며 국문학도를 꿈꿨다. 그러나 어려운 집안 형편에 “국문과 가면 밥 못 벌어먹는다”는 소리를 들었고, 친구들이 다 법대를 간다고 하니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식으로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검사 출신이었던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법대 동기다.
―법학 공부 해보니 어떻던가요?
“막연히 생각하기에는 법 공부를 하면 사회정의라든지 큰 철학적 원리를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아이고… 법학이라는 게 실정법 해석이에요. 돈 빌린 사람이 어떻게 갚도록 해야 한다든지. 너무 재미가 없었죠.”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67년 6월 총선이 치러졌다.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 175석 중 129석을 싹쓸이했다. 부정선거 논란이 가열되면서 전국 대학에는 휴교령이 떨어졌다. 이 시기 청년 김윤상은 서울대 학보인 <대학신문> 기자 활동을 하게 된다. “조금 더 세상물정을 알고 인간적으로 성숙하려면 고등학교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결국 고시 공부를 안 하셨습니다.
“67년도에 부정선거도 있고 졸업 무렵에 유신도 있었으니까 학교 다니기가 참 어려웠어요. ‘이런 시국에 공무원 되면 뭐 하냐’는 마음이 컸죠. 피난 내려와서 어렵게 타지에서 사는데 친척 중에 출세한 사람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으니 판검사가 좋은지도 몰랐죠.”
그래서 그는 “자유로운 교양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정치학·경제학 등 ‘인접 학문’에 눈을 돌렸다. 그러던 중 행정학·도시계획학을 전공한 노융희 교수의 권유로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한다. “컴퓨터, 통계학, 사회과학 전반을 공부하면 사회를 보는 눈이 커질 거 같았다”는 게 전공을 바꾼 이유였다.
도시계획학을 공부하며 그는 토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60~70년대는 대규모 토목공사와 개발로 전국의 땅값이 들썩이던 시기였다. 서울 강남 개발이 시작되고 1966년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착공되면서 3.3㎡(1평)당 300원 하던 강남 신사동 일대의 땅값은 1년 새 10배가 뛰었다. ‘복부인’이라는 말도 이때 등장했다. 투기장으로 변한 서울에서 그는 석사를 마치고 1976년 경북대 교수로 채용됐다. 박사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이어 하버드-옌칭 연구소 장학생으로 선발돼 1978년 미국으로 떠났다. 펜실베이니아대 박사 학위 전공도 도시계획학이었다. 그는 유학 시절 “사회정의와 같은 가치 있는 주제를 택해서 학위논문을 쓰고 싶었지만 영어가 짧아서 못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아쉬움은 1982년에 귀국한 뒤에도 계속됐다. 1986년 펴낸 첫 저서 <도시모형론> 서문에서 “이제는 도시모형 연구에서 멀어지고 싶다. 우리 사회에 보다 절실한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얄팍한 숫자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한국적 현실에서 사회에 기여할 바가 있을지”를 고민했고 부동산 투기 광풍에 따른 빈곤의 심화를 목격하면서 연구 주제를 토지정책으로 바꿨다. ‘토지는 인간의 생산물이 아니므로 토지를 소유하는 것만으로 돈을 버는 건 불로소득이며, 이런 이득을 제거하면 투기도 사라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강원 태백시 성공회 수도원의 대천덕(아처 토리 Archer Torrey, 1918~2002) 신부가 쓴 <토지와 경제정의>라는 책을 읽고 헨리 조지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100여년 전 토지 불로소득 환수를 주장한 헨리 조지와 자신의 생각이 일치했다. 김 교수는 1989년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처음으로 번역했다.
<진보와 빈곤>을 펴낸 헨리 조지의 젊은 시절 사진. 위키피디아
―<진보와 빈곤>을 처음엔 완역이 아닌 축약본으로 번역하셨습니다.
“빨리 전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또 부동산값이 오르고 전셋값이 없어서 일가족이 자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시한 번역자의 책이지만 예상 밖으로 보급이 됐습니다.”
미국의 언론인·사상가였던 헨리 조지는 토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지대(토지 사용료와 매매차익)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고 진단했다. 서부개척과 산업혁명으로 철도가 놓이고 도시가 개발되며 땅값이 폭등하던 시기였다. 헨리 조지는 하늘에서 주어진 땅을 우연한 기회에 소유하게 됐다는 이유로 이득을 보는 건 정의가 아니라고 봤다. “자연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이 베풀어준 기회를 개인이 독점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근본적인 정의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토지 사용자가 땅주인에게 토지 이용료를 내는 건 “사용자가 정당하게 벌어들인 사유재산을 땅주인에게 빼앗기는 결과가 되며 이는 강도행위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근로소득보다 불로소득에 세금을 우선 매겨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서 출발한다.
헨리 조지는 이렇게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국가가 가져가면 사실상의 ‘토지 공유’를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토지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이 “사회의 성장에 따라 증가하는 사회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연법이 마련해주는 기금”이라는 것이다. 헨리 조지는 이를 모두 환수(지대조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김 교수는 토지 가격만큼에 대한 은행 이자는 인정하고 나머지를 세금으로 걷는 ‘지대이자차액세’를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토지사유제가 정착된 지 한참 됐고 현재 땅을 갖고 있는 사람 상당수가 자기 돈 내서 샀습니다. 어제 1억원 내고 땅을 샀는데 오늘 지대조세제 실시하면 땅 매매가격이 0원이 됩니다. 매매가격은 미래 지대의 합인데 미래 지대를 다 거두면 현재 매매가격은 0이 되는 거죠. 그러면 사유재산 침해의 문제가 생기고 땅 가진 사람으로서는 억울합니다. 또 땅값이 0원이 되면 땅을 담보로 잡고 빌려줬던 은행 대출은 어떻게 됩니까. 은행 다 망할 거 아니에요. 가격을 떨어뜨려선 안 되고, 가격만 안 떨어지면 토지공개념을 정착시키고 투기도 막을 수 있으니 이자는 빼고 세금으로 걷자는 겁니다.”
―여기서 이자란 토지 매입 자금을 은행에 맡겼을 때를 상정한 이자를 말하는 건가요?
“정기예금 이자로 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동산 대출 이자와 은행 정기예금 이자 중간으로 볼 수 있고. 실무의 문제니까 그 사이 어딘가에서 결정이 되겠죠.”
―내 돈 내고 산 게 아니라 상속받은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속받을 당시의 시세가 있으니까 그것에 대한 이자가 되겠죠. 그러면 ‘부동산 소유 안 할래’ 하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실수요가 아닌 부동산을 갖고 있어 봐야 부담만 되지, 이익 될 게 없으니까.”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토지 국유화로 가는 거 아닙니까?
“빌려서 쓸 거냐, 소유해서 쓸 거냐 선택해야 할 때 소유해서 쓰는 게 나을 수 있어요. 빌려서 써도 임대료를 내야 하고 소유를 해도 그만큼을 국가에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드는 돈은 똑같아요. 그런데 소유를 하면 누가 나가라고 안 하니까, 안전하니까, 부담이 똑같다면 사람들이 소유하는 걸 택하겠죠. 물론 취득세·양도소득세는 모두 없어집니다.”
―실수요자만 남게 되면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거래하게 하는 토지임대부 주택이 바람직하겠습니다.
“좋죠. 싱가포르가 그래서 부동산 정책에 성공한 것 아닙니까. 토지임대료가 부담되는 계층한테는 환매조건 붙여서 깎아주면 되고.”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2일 인터뷰를 마친 뒤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교정의 벚나무 아래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대이자차액세의 과표는 건물을 제외한 토지다. 김 교수는 2004년 8월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여해 거래세가 아닌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며 “건물이 아닌 토지에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를 사서 월세를 놓았을 때 임대료는 토지와 건물 사용료를 합친 것이 됩니다. 과세 대상은 토지 사용료가 될 것인데 토지 사용료와 건물 사용료를 어떻게 가를 수 있습니까?
“똑같은 품질의 아파트를 서울 강남과 대구 경북대 앞에 지었을 때 가격 차이가 납니다. 땅값 때문이죠. 가격 평가는 전체 단지의 아파트 가격을 전부 평가한 다음에 대지 지분으로 나누면 됩니다. 신축할 경우에 든 비용을 계산해서 만약 10년이 지났으면 그동안 감가상각이 된 금액이 건물 가격이죠. 전체 가격에서 감가상각된 건물 가격을 빼면 나머지는 다 토지 가격이 됩니다. 그 토지 가격을 건물 평수로 나누면 되죠.”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교통시설이 확충되고 그게 또 집값에 반영됩니다. 이런 기반시설도 토지 가치에 반영된다고 봐야 할까요?
“그렇죠.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 환수하게 되면 개발이익 얻으려고 사람들이 들입다 싸우고 그런 일은 없어져요. 붕괴 위험 있을 때 공공이 나서서 보조금 줘가면서 하는, 정말로 필요한 재건축만 하게 되죠. 지금 쓸데없는 재건축 해서 멸실되는 아파트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대이자차액세가 시행되면 당장 내가 가진 집을 팔아서 얻을 수 있는 큰 차익을 잃게 되는데, 이에 대한 불만이 크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불로소득을 기대하면서 집을 소유한 경우라면 물론 실망이 크죠. 그러나 ‘도둑질하려고 했는데 도둑질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라며 저항하는 것과 똑같죠. 설득을 해야 하고 토론을 하면 설득이 될 걸로 봅니다. 결국엔 나한테 그게 이익이구나 알게 된다는 거죠.”
―헨리 조지는 지대만 세금으로 걷는 지대조세 단일세를 주장했습니다. 지대이자차액세만으로 세수 충당이 가능한가요?
“안 되죠. 극단적으로 지대가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당연히 국가가 돈을 내줘야 해요. (지대보다 이자비용이 커서) 마이너스가 되면 (국가가 그 차액을 개인에게) 내줘야죠. 그렇게 되면 정부가 또 다른 대책을 세워야겠죠. 전반적으로 경기가 후퇴하고 인구도 줄고 지대도 줄고 그러면 정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그건 정말 고민이죠.”
―지대보다 이자가 더 많이 나가면 정부가 내줘야 한다고요?
“가령 동네에 혐오시설, 공공에 필요한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오면 그 주변 토지의 지대가 떨어질 거 아닙니까. 지대로 이자를 충당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 차액만큼 돈을 내줘야죠. 땅이 우리 모두의 것이고 토지 가치가 우리 모두의 것이라면, 손해 보는 것도 우리 모두가 손해를 봐야 하니까요.”
―이런 말씀은 처음 듣습니다.
“땅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말을 안 하죠. 그러나 원론대로 하면 내줘야죠. 그렇게 되면 님비 현상도 많이 줄어요. 예를 들어 주변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다고 주민들이 난리를 칩니다. 말로는 치안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땅값 떨어질까봐. 그러면 안 되는데 요즘 공공임대주택 짓는다고 하면 막 반대하잖아요. 그런 게 훨씬 줄어들게 됩니다. 경제적으로는 세금을 덜 내게 되니까.”
김 교수는 헨리 조지의 사상을 ‘지공주의’(地公主義)라고 명명했다. “지대 환수가 단순 세제가 아니고 ‘제3의 이념’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붙인 이름이다.
“토지와 자본을 모두 사유화하는 게 전통적 자본주의이고 이를 모두 국공유화하는 게 사회주의입니다. 토지는 원칙적으로 공유하고, 자본은 사유로 하는 그런 사상을 대변하는 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유를 한다는 건 토지 몰수를 한다는 게 아니고 철학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토지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또 토지공개념의 두 글자가 겹치니까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해서 지공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었죠.”
이런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토지공개념에 보수세력은 종종 ‘좌파 사회주의’라는 꼬리표를 달아 비판하지만 김 교수는 이를 “마음에 안 드는 대상에는 일단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고 보는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나쁜 버릇”이라고 반박한다. 지공주의는 자유와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우파적 방법으로 좌파의 가치인 분배정의와 사회보장을 지향한다. 김 교수가 말하는 ‘좌도우기(左道右器)론’이다.
―“과거 우리나라에 등장했던 토지공개념 정책 중 시장기능과 어긋나는 내용도 있었기 때문에 시장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말씀하신 건지요?
“순수한 시장경제는 가격·소유·거래 규제를 하면 안 돼요. 그런데 토지거래허가제는 거래 규제, 분양가상한제는 가격 규제, 택지소유상한제(1998년 폐지)는 소유 규제입니다. 이런 건 순수한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는 거예요. 불로소득을 제대로 환수 안 하기 때문에 그런 무리한 방법이 나오거든요. 시장에 불로소득이 생기지 않고 모든 소유자가 실수요자가 되면 그런 가외의,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규제가 뭐 필요하냐는 거예요.”
―토지 불로소득 환수로 확보되는 세수만큼 부가가치세나 소득세를 깎아줘야 한다는 주장도 하셨습니다.
“세금 중 제일 나쁜 게 부가가치세예요. 부가가치는 전부 사람이 생산한 생산의 결과잖아요. 거기에 세금을 매기는 건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보는 거고. 그다음 순위는 소득세. 소득은 좀 섞여 있어요. 땀 흘려서 번 노력소득이 있는가 하면, 운에 의한 소득도 있고, 시장의 권력관계에 의한 소득도 있고.”
문재인 정부가 선포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지공주의의 지향과 같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도 집값 상승을 막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3월15일인가 청와대에서 회의할 때 문 대통령이 ‘드러나는 현상에 대응해왔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현상유지에 중점을 뒀어요. 투기 국면에 현상유지가 됩니까. 그런 정책의 실세는 (전 청와대 정책실장인) 김수현씨와 장하성씨라고 생각해요. 장하성씨가 낸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보면 ‘우리나라는 임금 불평등이 크지, 자산 불평등은 크지 않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려 놨어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상식을 가진 사람입니까? 임금주도성장을 해본들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오르는데 무슨 효과가 있어요.”
―헨리 조지의 영향을 받은 김수현 전 실장이 집값 잡기에 실패했으니 결국 ‘지공주의의 실패다’, 이런 지적들도 나옵니다.
“김수현 교수는 참여정부 때는 이정우 교수(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와 한 팀이 돼서 헨리 조지 사상을 긍정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그 양반이 책 쓴 거 보면 보유세 인상에 겁을 먹고 있어요. ‘보유세 인상을 하면 정치적으로 부담이 커진다, 온통 수구언론이 세금폭탄이라고 해서 정권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거 같아요. 이번 정부에 들어가서도 참여정부 자기네 팀이 만들어놨던 보유세 강화 같은 거 안 했잖아요. 그거만 회복시켰으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고 이렇게까지 폭등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는데….
물론 원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만들었죠. 노무현 정부가 만든 걸 형해화시키고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을 펴서 휘발유 좍 깔린 상태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장하성 같은 사람이 근본대책 안 세우고, 자산 불평등 얼마 안 된다고 했으니. 자기 강남 집값이 굉장히 오르고 있는데도 그런 소리를 했잖아요. 이 정부가 진단과 대비를 잘못한 거지.”
2018년 7월3일, 대통령 자문기구인 재정개혁특위는 이명박 정부가 감면한 종합부동산세율을 찔끔 인상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3주택 이상 보유세 중과는 결론도 내지 못했다. 3일 뒤 기획재정부는 2020년까지 공정시장가액비율(과표를 정할 때 적용하는 공시가격 비율) 목표치를 재정개혁특위 권고(100%)보다 더 낮은 90%로 잡았다. 문재인 정부도 보유세 강화에 미온적이라는 강력한 시그널이 시장에 전파됐다. 부동산 대책이 거듭 발표돼도 집값은 잠깐 꺾였다 급등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러고 공공택지·주택을 공급하는 엘에이치 임직원들이 투기에 가담한 사건까지 터져나왔다.
―엘에이치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처음 전개된 과정을 보면 목표와 분노의 대상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정보 이용해서 다른 사람보다 쉽게 돈을 번 건 나쁜 일이에요. 그걸 비난하는 데 이의가 없지만 내부정보를 취득해서 돈을 벌었다는 것에 타깃을 맞추면 근본대책이 어그러져요. 그러면 내부정보 이용 안 했으면 괜찮으냐, 다른 공직자가 하면 괜찮으냐, 공직자 말고 일반국민이 하면 괜찮으냐, 이런 질문을 계속하면서 그러면 근본대책을 세우자, 누구도 부동산 불로소득을 얻지 못하게 하자, 이런 식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적발·처벌 쪽으로 치우쳤다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분노의 성격을 ‘공분’과 ‘사분’으로 구분하며 말을 이어갔다.
“‘나보다 더 유리하게 돈을 벌었어, 이건 참을 수 없다’는 건 사분입니다. 처음에는 사분이 많이 작용해서 정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고 생각해요. 이제 정부가 할 일은 끓어오르는 사분을 공분으로 바꾸는 작업이죠. 이참에 이 분노를 기회 삼아서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없애는 지대이자차액세 같은 근본대책으로 나아가야죠.”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 직전 전셋값을 14% 올린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경질하고 “부동산 부패의 근본적인 청산”을 지시했다. 뒤이어 나온 대책이 ‘1년 미만 보유 토지’의 양도소득세 강화와 토지 담보 대출 규제다. ‘부동산 부패 청산을 위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는 경제부총리, 국토교통부 장관, 검찰총장 권한대행, 경찰청장 모두 기획부동산 근절에 뜻을 모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부동산 투기는 전 국민이 언제라도 감염될 수 있는 팬데믹”이라며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강도 높은 환수 정책이 없는 한 “근본적 대책이 아닌 땜질”이라고 평가했다. “꿀에 개미가 꼬이면 꿀을 치워야 하는데 꿀은 놔두고 개미들에게 이름표만 붙이는 식”이라는 것이다.
헨리 조지는 1879년에 <진보와 빈곤>을 출간했지만 142년 전 경고에도 부동산 투기와 자산 불평등은 여전하다. 복지 강화 등 자본주의를 수정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있었지만 토지 불로소득 문제는 왜 교정되지 못했을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마르크스 경제학,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경제학, 이런 식으로 딱 양분이 되니까 그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헨리 조지 사상이 발붙일 수가 없었죠. 또 시장경제라는 건 사유재산제가 전제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대가를 주는 게 사유재산제입니다. 시장경제라면 지공주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이 만들지 않은 자연물은 모든 사람의 것이고, 인공물은 인공을 가한, 생산한 사람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돼야 진짜 시장경제가 된다고 지공주의는 생각하는데, 우파 경제학에서는 왜 그걸 못했느냐? 한마디로 싫으니까요. 가진 사람이 (그런 식으로 부를 빼앗기는 게) 싫으니까요. 땅으로 부동산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계층에서 양보를 안 하는 거죠.”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는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라고 보십니까?
“농민들이 종래의 형편없는 소작제도 속에서 고생하다가 농지개혁으로 해방이 됐죠.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도시화 과정에서 경자유전의 원칙을 도시 토지에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주택의 경우에는 사는 사람이 집을 소유해야 한다, 즉 ‘주자유택’ 원칙을 적용했어야 합니다. 다른 토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 정권 도시화 과정에서 그런 문제가 간과됐군요.
“경자유전 원리를 도시 토지, 산업화 과정에서 응용해야 했는데 그걸 못했죠. 투기 생기면 투기 대책 내놓고, 경기 시원찮으면 투기 진작시키고.”
―투기에 가담해서 정치자금도 만들고요.
“경부고속도로 처음 생길 때 강남 개발하면서 공화당에서 정치자금 마련하고 그랬잖아요. 고위공직자 특혜 분양하고 정경유착하고. 자기한테 이익이 돌아오는데 개혁하려고 하겠어요?”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2일 인터뷰를 마친 뒤, 2016년 경북대 교수회가 개교 70주년을 맞이해 세운 교수헌장 비문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김 교수가 교수헌장 제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이정우 교수 등이 초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교수헌장 중 “사회적 양심”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치” 등을 강조하며 “개혁적인 내용이 많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대구/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김 교수는 1994년 대구에서 이정우(경북대)·전강수(대구가톨릭대) 교수와 함께 헨리조지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여기에 기본소득 연구자인 강남훈 교수(한신대)와 시민사회 영역의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 등이 합류해 2018년엔 헨리조지포럼으로 확대됐다. 이들을 포함해 이원영(수원대)·정세은(충남대) 교수 등이 함께하는 토지정책학회가 이달 말 발족된다. 지공주의 학파의 외연이 더욱 넓어지는 것이다. 전 교수와 강 교수는 2017년 대선 때 이재명 예비후보 캠프에서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공약을 입안했고, 강 교수는 지금도 경기도 기본소득위원장을 맡고 있다.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해 이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쓰자는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는 조세저항을 우회할 수 있는 전략적 방식이라고 이들은 설명한다. 90%가 넘는 국민이 결국은 수혜자가 되기 때문이다.
―지공주의 학자들이 이재명 경기지사를 도왔고 현재도 돕고 있습니다.
“이 지사가 이야기하는 공직자 백지신탁제도 제가 주장했던 겁니다. 정책결정자들이 부동산 이해관계가 있으니까 자꾸 안 하려고 하잖아요. 제가 살고 있는 수성구는 주호영 의원의 전 지역구입니다. 서울에 아파트 가지고 있고 단기간에 시세차익이 십수억원이라고 하는데 ‘시세차익 한 푼도 없어도 좋으니 이런 개혁 하자’고 하는 게 되겠어요? 자기 불로소득 얻은 건 너무나 당연한 거고, 의도치 않게 생긴 운이고, 세금 올리는 건 부담되니까 싫다, 내가 잘못하는 거 있느냐, 이렇게 자꾸 합리화하게 되잖아요. 그런 걸 없애려면 고위공직자 백지신탁부터 해야 한다고 했어요. 백지신탁제부터 해야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토지보유세 올리자는 게 먹혀들어가죠.
그런데 그 안을 제가 처음 낸 게 아닙니다. 예전(2004년) 박근혜 천막당사 시절에 워낙 다급했는지 자산백지신탁제를 제안했어요. 자산 안에는 당연히 부동산이 들어가죠. 그런데 그중에서 관련성 있는 공직자의 주식백지신탁제만 제도화됐어요. 부동산 백지신탁은 고위공직자가 실수요 아닌 부동산 가졌을 때 전부 백지신탁하자는 건데 그걸 하면 상당히 좋아질 것으로 봅니다. 그리되면 이해충돌방지법도 쉽게 채택되지 않을까요. 완전한 토지 불로소득 환수제도가 들어오기 이전에 공직자 대상으로 해야 할 건 부동산 백지신탁제와 이해충돌방지법 두 가지입니다. 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이론·운동·정치 3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땅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욕망의 대상이다. 기득권의 구심력도 강고하다. 지공주의가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물었다.
―교수님 말씀은 맞지만 너무 이상적이다, 과연 가능할까, 이런 회의적인 시각도 많을 것 같습니다.
“노예제 폐지는 200년 전까지 감히 꿈도 못 꿨습니다. 100년 전에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고 이제 남녀평등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게 되겠나’라며 회의적으로 생각하면 노력도 안 하게 돼요. 결국 토지 불로소득 환수가 이상적이라는 얘기는 ‘그거 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헨리 조지도 <진보와 빈곤>에 이렇게 썼다. “다른 사람도 같은 별을 본다는 사실을 알 때 더 확신을 가지고 별을 보게 된다.”
대구/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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