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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면발 정복자 “죽을 때까지 라면 먹고 싶어, 오늘도 운동!”

등록 2021-04-17 11:24수정 2021-04-17 11:32

[토요판] 기획
헬스 하고 비건라면 즐기는 ‘라면 블로거’ 교사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지영준 교사. 지영준씨 제공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지영준 교사. 지영준씨 제공

“학생들이랑 청소하느라 전화 온 줄도 몰랐네요. 하하.”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지는 ‘라면 정복자’의 웃음에 거창함은 없었다. 충남 서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라면 블로거’ 지영준(32)씨의 첫 느낌은 오히려 소박함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라면 정복자 피키’라는 이름으로 8년째 라면 품평 블로그를 운영해온 ‘라면계’ 인플루언서다. 4년 전 책 <라면 완전정복>(북레시피)을 시작으로 <라면이라면>(2019, 북오션)에 이어 올여름 세번째 라면 관련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전세계 라면을 모두 먹어보고 사람들에게 소개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 실제 계획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지난 14일 블로그에 올린 ‘삼양 짜짜로니 블랙데이 한정판’ 글이 1151번째 라면 품평이었다. 현재 지씨는 일주일에 10개 정도 라면을 맛본다. 한해 500개쯤 먹을 수 있는 속도다. 산술적으로는, 올해 서른둘인 그가 마흔살 이전 5천여 종류의 라면을 맛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1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그는 “건강식만 먹고 살 수 없다. 우리에겐 먹고 싶은 걸 먹을 자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식품 회사들은 라면이 건강에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그도 라면에 미네랄 등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씨는 “지나치게 먹지만 않으면 된다. 또 계란, 야채 같은 부재료를 풍부하게 넣고 국물 섭취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라며 건강하게 라면 먹는 법을 설명했다.

그에게 라면은 그저 입을 즐겁게 하고, 배를 불리는 음식만이 아니다.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라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진 않지만 아이들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학부모들은 책을 통해 ‘라면 정복자’로서 저를 알음알음 아신다”며 “학생들에게 선물로 제 책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라면에 대한 이야기 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라면을 다량 구매해 차에 실은 모습. 지영준씨 제공
라면에 대한 이야기 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라면을 다량 구매해 차에 실은 모습. 지영준씨 제공

지씨는 8년 전 한 미국인의 라면 블로그를 본 뒤, 라면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미국은 라면을 상대적으로 조금 먹는 나라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라면 인기가 높은 한국에서 라면을 소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대 시절 지씨는 네차례나 대학 낙방을 경험했는데, 그때 지씨의 힘겨운 어깨를 다독인 것 가운데 하나도 라면이었다.

“인생이 너무 재미없어서 작은 행복이라도 찾을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때 라면이 제게 왔어요.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맛을 가진 라면은 매력적인 존재였죠. 라면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중 하나예요.”

지씨는 건강과 라면,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게 목표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운동을 쉬다 최근 다시 헬스장에 나가고 있다. 그는 “오랜 기간 라면을 맛보고 소개하기 위해서라도 몸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했다. 그가 올해 초 블로그에 ‘채식주의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비건 라면’을 추천하자, 댓글에서 라면 애호가들은 ‘건강한 채식주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실제 지씨의 추천처럼, 식품 회사들이 육류·해산물·우유·계란 등 동물성 원료를 배제한 라면 신제품을 내놓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채식주의자의 가장 높은 등급인 비건도 먹을 수 있는 라면도 있다. 일부 라면 회사들이 채식 라면을 생산하기 위해 ‘비건 전용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영국 비건 소사이어티의 인증을 받는 등 해외 시장을 노리기도 한다.

지씨는 교사와 블로거 활동을 병행하는 만큼 라면 제품에 대한 광고 협찬을 받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현직 교사로서 그는 학생들의 작은 재능이 커가도록 돕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수없이 다양한 종류의 라면처럼, 우리 사회도 여러 취향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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