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패소한 21일 오전,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트워크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낸 1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이번 2차 손배 청구 소송과 달리 지난 1월 승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실제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외교관계 등이 얽혀 일본 정부의 자산을 강제로 매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최근 법원이 1차 소송의 비용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강제집행할 수 없다’고 제동을 거는 등 걸림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1일 법원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차 손배 소송 원고 쪽은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에 재산명시 신청을 했다. 재산명시신청이란 채권자가 승소판결을 받고도 채무자의 재산을 알지 못해 강제집행을 할 수 없는 경우, 채무자의 재산을 공개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는 절차다.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의 재산 목록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앞서 1차 소송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당시 재판장 김정곤)는 지난 1월 “일본은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한 바 있다.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가 손배 소송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강제집행 절차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법원에서 일본의 국내 재산 목록을 받더라도 이를 집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일본이 한국에 보유한 대표적인 재산은 일본 대사관인데,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22조는 공관 지역과 지역 내 비품류 및 기타 재산을 “강제집행으로부터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자산을 찾아야 하는 처지다.
집행 가능한 자산을 찾더라도 이를 매각해 현금화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금화하려면 우선 법원이 일본의 국내 자산을 압류한다는 압류명령 결정문 등을 일본 정부에 보내야 하는데, 일본 쪽이 관련 문서 수령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크다. 법원이 공시송달(서류가 상대방에게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결정해 현금화 절차에 돌입할 수도 있으나, 이 경우 한·일 관계는 더욱 경색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을 강제 매각하는 과정에서 이런 어려움이 확인된 바 있다. 당시 한국 법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은 미쓰비시 중공업 등 전범 기업의 국내 자산 강제 매각을 위한 공시송달을 결정했지만, 일본 정부는 현금화 조처가 이뤄지면 경제적 보복을 하겠다고 반발한 바 있다. 민간기업의 강제집행에도 일본 정부가 크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정부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은 상당한 외교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한편, 지난 1월 1차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 승소판결을 내린 재판부가 소송 비용에 대해서는 “일본에 추심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승소판결을 내린 이후 재판장이 바뀐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는 지난달 말 “외국에 대한 강제집행은 그 국가의 주권과 권위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소송 비용은 추심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앞서 같은 재판부는 ‘패소한 쪽이 소송 비용을 부담한다’는 원칙에 따라 “소송 비용은 피고(일본)가 부담한다”고 판결했는데, 판결 확정 뒤 법원이 기록 보존을 위해 소송 비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추심할 수 없다고 다시 판단한 것이다. 다만, 이는 인지대(법원에 지불하는 소송 비용)에 대한 판단이어서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 결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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