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승계위해 반칙”vs“범죄단체 취급”…이재용 재판,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등록 2021-04-26 04:59수정 2021-04-26 10:49

[이재용의 법정을 기록하다]①
검사 11명…공소사실 2시간 낭독
변호인 24명…4시간여 검찰 반박
확정판결 나기까지 수년 걸릴 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또다시 법정에 섰습니다. ‘국정농단 뇌물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삼성 지배권 불법 승계 의혹 때문입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아버지인 고 이건희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최소 비용으로 넘겨받으려는 과정에서 불법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 이 부회장 쪽은 경영상 필요에 따른 정당한 기업활동에 검찰이 죄를 뒤집어 씌웠다고 반발합니다. 지난 1년9개월에 걸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고, 이제 공은 법정으로 넘어왔습니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의 지배권 승계 의혹을 둘러싼 법원의 시간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열린 지난 1월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열린 지난 1월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22일 오전 9시51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양복에 흰 와이셔츠, 넥타이를 매지 않은 차림이었다. 그는 방청석에서 법정을 바라봤을 때 법정 왼쪽에 마련된 구치감(구속된 피고인이 대기하는 장소)에서 나와 법정을 가로질러 오른쪽 피고인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 부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전실 커뮤니케이션 팀장(사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10명이 변호인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어 이 사건을 수사했던 이복현, 김영철 부장검사 등이 줄지어 법정에 들어섰다. 법정 왼쪽에는 검사 11명이, 오른쪽에는 피고인 11명과 변호인 24명이 자리를 잡았다. 변호인단에는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을 담당했던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의 송우철 태평양 변호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안정호 김앤장 변호사 등 다수의 ‘전관’ 변호사들이 눈에 띄었다. 이 부회장의 옆에는 판사 출신 김유진·김현보 김앤장 변호사가 앉았다. 이 부회장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바짝 대고 앉아 정면을 바라보거나, 이따금 방청석쪽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오전 10시가 지나서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권성수) 판사들이 입정했다. “지금부터 2020고합718 사건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법정에 박정제 재판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삼성 ‘지배권 불법 승계’ 의혹이 본격적으로 심판대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검찰 “승계 자체 문제 삼는 것 아냐…승계 위해 벌어진 반칙이 문제”

검찰이 이 부회장과 미전실,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관계자 등 모두 11명을 재판에 넘긴 것은 지난해 9월1일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불공정 합병 의혹(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 배임)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의혹(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미전실과 삼성물산 일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거짓으로 증언한 혐의(위증)도 추가로 받고 있다.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범죄사실은 모두 16개에 달한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두 시간에 걸쳐 공소사실을 낭독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이 부회장과 미전실이 왜 두 회사의 합병을 결정했는지, 합병이 결정된 뒤 이사회 결의단계·주주총회 승인단계·주총 이후 단계 등 단계별로 어떻게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가 발생했는지를 설명했다.

검찰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2015년 9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2012년 말께 미전실 주도로 만들어진 승계 계획안 ‘프로젝트 지(G)’에 따른 것으로, 최소 비용으로 그룹 계열사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지분(2015년 상반기 기준 23.23%)이 많은 제일모직과 이 부회장 지분이 하나도 없었던 삼성물산이 합병하면, 이 부회장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고,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4.06%)까지 간접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피고인들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인 1(제일모직):0.35(삼성물산)로 두 회사를 합병하기로 결정하고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허위 보고서 작성, 인위적 주가 부양, 대통령 포섭 등의 위법을 저질렀다는 게 기소요지다.

검찰은 승계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 이재용의 승계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합병 과정에서 행해진 반칙들, 즉 허위정보 제공, 투자위험 은폐 등의 교란행위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 사건 합병의 목적은 최소 비용을 들인 이재용의 승계, 그룹 지배력 강화임이 수많은 증거로 확인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의혹 또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게 검찰 쪽 주장이다. 이 부회장 등은 2015년 9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뒤, 통합 삼성물산의 자회사가 된 삼성바이오가 회계장부에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에 대한 콜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 1조8천억원 상당을 누락해왔고, 이를 부채로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를 부채로 반영하면 삼성바이오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삼성이 ‘자회사의 중요 사실을 은폐하고 합병을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을 것을 우려해 이 부회장 등이 삼성바이오의 자산규모를 부풀려 자본잠식을 회피하는 회계부정을 저질렀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날 공판에서도 검찰은 2018년 삼성이 회계부정 관련 수사에 대비해 삼성바이오 공장 바닥에 감춰놨던 서버를 찾아내 압수한 일을 언급하며 “본건 증거기록에는 (삼성바이오가 회계부정을 저질렀다고 판단한) 증권선물위원회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다수 존재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서울중앙지법.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변호인 “삼성을 범죄단체로 보는 검찰, 기업 경영을 범죄로 취급”

이 부회장 등의 변호인들은 이날 검찰이 제시한 16개의 범죄사실을 네 시간여에 걸쳐 반박했다.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이 부회장) “저도 인정 못 합니다”(장충기 전 미전실 팀장) 등 11명의 피고인도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은 ‘승계용’이 아니라 “사업상 필요했다”는 게 변호인들의 주장이었다. 합병 전 삼성물산은 국내외 건설경기 악화로 실적 하락이 뚜렷했는데, 이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바이오사업 같은 신수종 사업을 갖추고 있는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새로운 돌파구”가 된다는 판단 아래에 합병을 결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제일모직도 국외 인프라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게 삼성 쪽 설명이다. 변호인들은 미전실이 합병에 관여한 건 사실이지만, 그룹 지배구조가 개편되는 상황에서 그룹 컨트롤타워가 합병을 검토한 게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또한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그가 몸담은 경제개혁연대의 주장과 그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한 발언을 빌려온 것이다. “(삼성 문제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 온) 대표적인 시민단체도 ‘그룹이 있으면 컨트롤타워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도 ‘삼성 미전실을 대체할 컨트롤타워가 시급하다’고 했다. 미전실이 합병을 검토한 것은 기업집단을 인정하는 아래에서 오히려 자연스럽다.”

합병 시점과 합병비율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쪽으로 적용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변호인들은 바이오산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제일모직은 시장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삼성물산은 주가가 우하향하는 상황이었다고 언급했다.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의혹에 대해선 “합병과 무관하다”며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는 회계처리였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검찰 시각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합병, 회계 관련해 상정할 수 있는 모든 범행을 쉼 없이 저지른 것처럼 말하고 있다. 범죄단체로 보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그런데 피고인들은 이 사건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를 저지른 바 없고,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다. 기업 경영 과정에서의 모든 행위가 범죄로 취급되는 상황이 안타깝고 억울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법정에 설 증인 수백명…재판 길어질 듯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과 피고인 쪽이 모든 혐의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공판에서 언급된 내용을 종합하면, 이 부회장 쪽 등은 검찰이 제출한 프로젝트 지 관련 문건, 합병비율 검토 보고서 등 이 사건 주요 문서를 재판에서 증거로 삼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럴 경우, 검찰은 증거채택을 위해 관련자를 증인신청하게 된다. 검찰은 이날 증인만 250명을 신청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검찰의 증인신청을 일부 기각하더라도, 향후 변호인이 신청할 증인까지 포함하면 법정에 나올 증인은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우선 1차로 12명을, 2차로 50명의 증인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검찰의 1차 증인신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증인 12명은 삼성 지배권 승계 관련 문건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등에 개입된 삼성증권 관계자와 미전실, 안진회계법인 관계자 등이다. 첫 번째로 법정에 설 증인은 프로젝트 지를 비롯한 다수의 승계 문건 작성에 관여한 전 삼성증권 팀장으로, 16개 공소사실 가운데 13개와 관련 있는 ‘핵심 증인’이다. 검찰은 주신문만 두 기일에 걸쳐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서는 변호인단도 반대신문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5년, 두 회사의 합병을 둘러싼 삼성그룹 지배권 불법승계 의혹의 길고 긴 재판은 이제 시작됐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속보] 법원, 윤석열 체포영장 재발부 1.

[속보] 법원, 윤석열 체포영장 재발부

“사탄 쫓는 등불 같았다”...‘아미밤’ 들고 화장실로 시민 이끈 신부 2.

“사탄 쫓는 등불 같았다”...‘아미밤’ 들고 화장실로 시민 이끈 신부

‘관저 김건희 개 산책 사진’ 어디서 찍었나…“남산에서 보인다길래” 3.

‘관저 김건희 개 산책 사진’ 어디서 찍었나…“남산에서 보인다길래”

무장한 특전사 112명, 계엄 해제 5분 전 민주당사로 출동했다 4.

무장한 특전사 112명, 계엄 해제 5분 전 민주당사로 출동했다

유동규, 이재명에게 “왜 째려보냐”…재판장 “두 분 눈싸움 하시나” 5.

유동규, 이재명에게 “왜 째려보냐”…재판장 “두 분 눈싸움 하시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