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네이버 본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25일 네이버에서 리더급 직원 ㄱ씨가 지나친 업무 압박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 관련해 노동조합이 “명확한 진상 규명을 위해 고인에 대한 사내 모든 데이터를 보존하라”고 회사 쪽에 요구했다. 노조는 회사의 진상조사와 별도로 법무법인을 선임해 고인이 부당한 업무지시나 폭언 등의 폭력을 겪었는지 자체조사할 방침이다.
30일 네이버 노조인 ‘공동성명’은 조합원들에게 보낸 전자우편 입장문에서 “회사의 적극적인 데이터 보전 노력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이 업무 압박과 괴롭힘 여부를 조사하는 데 출근 기록 등이 핵심 자료가 되는 만큼, 노조가 ㄱ씨의 자료 보존을 요구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노조 쪽의 설명을 종합하면 ㄱ씨 사망 이틀 뒤인 지난 27일 오전께부터 회사 내부망인 ‘커넥트’에서 ㄱ씨의 계정이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네이버 내부망의 부서 조직도 등에서는 ㄱ씨의 이름을 비롯해 직책, 연락처 등 사원 정보가 모두 사라진 상태다. 이 때문에 네이버 안팎에서는 본격적인 조사도 시작되기도 전에 기본적인 정황 증거들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노조는 △전자우편, 업무 달력 등 업무기록 △인트라넷(내부망), 가상사설망(VPN) 접속기록 △출퇴근·휴가·업무결재 내역 △데스크톱·노트북 등 업무 기기 저장장치 등 ㄱ씨의 모든 사내 기록을 보존할 것을 회사에 요구했다.
공동성명은 “회사 출입, 업무기록 등 중요한 데이터는 모두 회사의 업무시스템에 있다”며 “고인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가 로컬(기기조작) 및 원격을 통해 삭제되지 않고 보전되도록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조합의 공식적 요구에도 데이터 삭제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삭제 지시자뿐 아니라 행위자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며 “데이터 보존과 관련해 부당한 지시를 받거나 (데이터를 지우려는) 움직임에 대해 알게 된다면 노동조합에 제보를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노동분야 전문 법무법인을 선임해 자체 진상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지난 28일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는 본사 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사외이사진이 외부기관에 의뢰해 이번 사건을 엄중히 감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와 별개로 노조가 ㄱ씨 동료들의 증언과 관련 자료를 모으겠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은 “고인이 업무지시나 괴롭힘 등으로 괴로워했다는 증언, 주요 관계인으로부터 유사하게 괴롭힘을 당한 경험 등이 있다면 노조에 연락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진상조사와 함께) 전문기관, 다른 노조의 사례 등을 참조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철저히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네이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직원이 퇴사하면 커넥트 계정은 바로 삭제가 된다”며 “회사는 이사회에 의뢰해 신뢰성 있는 외부기관을 통해 사안의 진상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ㄱ씨의 죽음을 조사하는 경찰은 타살이나 범죄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고 그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경위를 살펴보고 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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