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마음은 정책마다 달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4·7 재보궐선거를 치른 뒤인 5∼6월 만 19∼29살 남녀 15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남성 출산휴가·육아휴직 확대, 스토킹 처벌 강화, 고위직 여성 비율 확대 등 14개 성평등 정책에 대해 찬반 의견을 물었다.
거의 모든 성평등 정책에 대해 고르게 90% 넘는 찬성률을 보였던 여성 응답자와 달리, 남성 응답자 찬성률은 정책에 따라 30~90%까지 큰 차이를 보였다. 비혼모 지원처럼 여성에 한정된 지원에는 찬성률이 높았고, 여성 고위직 진출 확대 등 남녀가 ‘경합’하는 고용 분야에서는 찬성률이 뚝 떨어졌다.
조사 결과는 26일 오후 2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진행한 제126차 양성평등정책포럼에서 공개됐다. ‘청년세대의 성평등 인식 격차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센터장은 ‘청년세대 ‘젠더 갈등’ 논의 지형과 성평등 정책의 대응’ 주제발표에서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남성 응답자 찬성률이 낮았던 정책은 △경찰·소방관 등 남성 다수직종 여성 진입 촉진(30%) △국회의원·기업 임원 등 고위직 여성 비율 확대(34.1%)였다. △채용 승진 등 고용상 성차별 해소(55.9%) △공공기관·기업 성별 임금격차 공개 의무화 (56.2%) △보육교사·요양보호사 등 여성다수직종 남성 진입 촉진(59.8%) 정책에서는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을 근소하게 앞섰다.
남성 응답자 찬성률이 가장 높은 정책은 △남성 배우자 출산휴가·육아휴직 활용 촉진(89.7%) △스토킹 처벌 강화(86%) △출산휴가·육아휴직 이용자 차별금지(85.4%) △노동시간 단축(81.1%) 등이었다.
남녀 찬성률 격차가 가장 큰 이슈는 ‘국회의원·기업 임원 등 고위직 여성 비율 확대’였다. 여성은 87.8%가 찬성한 반면, 남성은 34.1%만이 찬성해 53.7%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조사를 진행한 김원정 센터장은 “여성을 지원하는 정책에는 찬성이 많았다. 반면 여성 대표성 확대나 고용 문제처럼 자원을 나눠야 하는 문제는 남성들이 굉장히 격렬한 반대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어떤 측면이 이런 반응을 만들고 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또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 가운데 서울·부산지역 거주자만을 대상으로 ‘4·7 재보궐선거에서 특정 후보에 투표한 이유’를 물었다.
4·7 재보궐선거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 70% 이상이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자,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선대위 뉴미디어본부장(현 국민의힘 대표)은
‘더불어민주당이 페미니즘에 올인했기 때문에 졌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에서도 면밀한 선거 결과 분석 없이 이런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취지의 발언과 행보가 잇달았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투표 당사자들에게 물어봤더니 젠더 이슈보다 정권 심판이 더 주요한 변수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부산에 사는 20대 남성 응답자(300명, 1·2순위 응답 합산)들은 △현 정부·여당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경고(48.4%) △전임시장 잘못에 대한 심판(33.6%)을 투표 이유로 가장 많이 꼽았다. ‘성평등 관점과 관련 정책을 명확히 제시해서’를 이유로 꼽은 응답자는 8.6%에 불과했다.
반면 서울·부산지역 20대 여성 응답자들은 △정치적 성향(진보/보수) 일치(38.8%) △내가 바라는 정책 공약 제시(31.3%)를 꼽았다. 김원정 센터장은 “이런 결과는 원하는 정책을 말하고 그걸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여성과 달리) 남성들은 ‘사회적 소통’에 실패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성평등 관점과 관련 정책을 명확히 제시해서’ 투표했다는 20대 여성 응답자는 20대 남성과 비슷한 9.5%였다.
김 센터장은 기존과는 다른 성평등 담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청년 남성 목소리는 일자리·주거·복지 같은 ‘청년 일반’의 문제, 실체 없는 역차별 주장, 여성혐오로 치부되어 왔는데, 이런 추상적 진단과 해법으로는 군복무, 위험한 노동, 생계부양 문제 등 여전히 요구되는 전형적 남성성 이슈에 제대로 응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발표문을 통해 그동안 성평등 정책이 전통적 젠더 관계를 유지시키는 핵심적 제도에 대한 대처에 미흡했다며 대표적 사례로 ‘남성 징병제’를 꼽았다. “남성 징병제 개선 논의는 성평등 정책 범주에서 제외돼 왔다. 성평등 정책이 어떻게 남녀 모두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 구체적 경로와 대안을 보여주지 못한 채 ‘남성에게도 좋은 성평등 정책’이라는 식의 수사에 그쳤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새로운 세대의 현실 및 기대와 달리 전통적 젠더 관계에 기반한 노동시장과 기업 등의 변화는 지체되고 있다. 청년 여성뿐 아니라 청년 남성 또한 페미니즘을 통해 자신의 불안과 고충을 사회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젠더통합적 청년 담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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