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 사이 여성이 피해자인 살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의붓아버지에 의한 영아 살해, 남자친구에 의한 20대 여성 살해, 성범죄자에 의한 중년 여성 연쇄 살해, 10대 손자들에 의한 할머니 살해 등 내용은 다르지만 이 사건들은 모두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에서 비롯한 ‘여성 대상 범죄’의 유형을 반복하고 있다. 우연이 아닌 구조적인 ‘페미사이드(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로 봐야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벌어진 사건들은 공통으로 의붓아버지·애인·지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적어도 안면이 있는 남성들이 가해자였다. 아동학대살해와 미성년자 강간 등의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양아무개(29)씨는 20개월 된 의붓딸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양씨는 자신의 아내도 빈번하게 폭행했을 뿐만 아니라, 장모 또한 성적 대상으로 보는 언행을 일삼아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26살 여성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남성은 피해자의 남자친구였다.
친밀한 관계에 의한 살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흔한 ‘페미사이드’의 한 형태다.
한국여성의전화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벌어진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된 것만 97건이다.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 131명까지 포함하면 228명에 이른다. 최소한 1.6일마다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했던 셈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가해남성의 여성 살해 이유는) 언뜻 각기 다른 이유인 것처럼 보이지만, 크게 보면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서’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와 연결된다”고 했다. 양씨는 20개월된 의붓딸을 “잠을 자지 않고 운다”는 이유로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분석한 지난해 여성 살해 사건의 경우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했다”(23.4%)거나 “홧김에, 싸우다가 우발적”(22.8%)이라는 가해 동기가 가장 많았다. 그 상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너무 사랑해서” “밥을 안 차려줘서” 등 온갖 이유가 등장한다. 이런 이유들에서 여성을 향한 가부장적 ‘통제욕’이 여성 살해의 근본적인 동기인 점이 드러난다.
전자발찌를 끊기 전후로 여성을 두 명을 살해한 뒤 붙잡힌 강아무개(56)씨의 경우 십수년 전부터 여성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러오다 결국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강씨는 1997년 강도강간 등 성범죄를 저질러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가출소 직후 또다시 공범 3명과 함께 30여명의 여성을 상대로 강도 행위를 벌였다. 특히 강씨는 오토바이로 차를 긁은 척 하고 운전석에서 내리는 여성을 제압해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까지 저질렀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는 “강씨 사건의 경우 여성을 대상으로 크고 작은 범죄들을 쌓아오다가 결국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너무 가볍게 여겨져 온 여성 대상 범죄가 축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여성이어서 죽고 있다’는 여성들의 불안감에 한국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라영 연구자는 “최근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결국 가부장적 소유욕과 연계되어 있거나, 여성 대상 범죄를 경시해온 한국사회의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페미사이드’의 성격이 분명하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여성들이 피해자인 사건들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직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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