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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음식과 세상을 ‘짓는 일’ 기록한… 조리서 속 여성을 읽다

등록 2021-09-06 14:48수정 2021-09-06 15:03

국립여성사전시관 ‘세상을 짓다- 조리서로 읽는 여성의 역사’
1660년대 <최씨음식법>부터 1990년대 <수도요리백과>까지 역사적 조리서 총망라

오직 책만이 맛을 전수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절 여자들은 ‘가문의 맛’을 보전하기 위해 밤마다 호롱불 앞에 앉았다. <최씨음식법>은 그렇게 탄생한 최초의 한글 조리서다. 신창 맹씨 가문이 자손에게 교훈과 정보를 전하기 위해 만든 책 <자손보전>에 수록된 문헌으로, 김치류 6종을 포함해 총 20종의 음식조리법을 담았다. 글쓴이는 해주 최씨(1591∼1660). 인조 때 예조 정랑 겸 춘추관 기주관·금산 군수·장흥 부사 등을 거친 맹세형(1588~1656)의 부인이다. ‘남자들의 맛’을 기록으로 후대에 전한 것은 여자들이었던 셈이다.

국립여성사전시관은 ‘조리서의 역사’를 조명하는 특별전시 ‘세상을 짓다- 조리서로 읽는 여성의 역사전’을 6일부터 2022년 6월30일까지 연다. 이 전시는 17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쓰였던 조리서와 조리도구 등을 통해 ‘음식 짓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 보기 위해 기획됐다.

해주 최씨가 쓴 최초의 한글 조리서 자손보전(사진 왼쪽). 34판(쇄)을 찍을 정도로 당대 인기가 뜨거웠던 조리서 &lt;조선요리제법&gt;. 국립여성사전시관 제공
해주 최씨가 쓴 최초의 한글 조리서 자손보전(사진 왼쪽). 34판(쇄)을 찍을 정도로 당대 인기가 뜨거웠던 조리서 <조선요리제법>. 국립여성사전시관 제공

‘조리법’ 자체에 집중했던 이제까지의 전시와 다르게, 이번 전시는 음식을 만들고 조리법을 기록했던 ‘사람’에 집중하기 위해 ‘조리서의 역사’를 훑었다. 정영훈 국립여성사전시관장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음식을 만들고, 개발하고, 기록하고, 후대에 알려줬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전시”라며 “이 질문이 오늘날 매일 수행하듯 그림자노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특별기획전은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는 근대 이전의 조리서를 통해 가부장제라는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요리를 연구·기록·전수했던 ‘지식 생산자로서의’ 여성의 활약을 전한다. <자손보전>(1660년대), <음식디미방>(1670년대) 등이 전시된다.

1960년대 절미운동의 일환으로 각 가정에 보급됐던 ‘절미통’(사진 왼쪽). 하루에 적어도 한 숟가락의 쌀을 아끼자는 캠페인이 펼쳐졌다. 전기냉장고가 보급되기 전 쓰였던 나무 냉장고. 국립여성사전시관 제공
1960년대 절미운동의 일환으로 각 가정에 보급됐던 ‘절미통’(사진 왼쪽). 하루에 적어도 한 숟가락의 쌀을 아끼자는 캠페인이 펼쳐졌다. 전기냉장고가 보급되기 전 쓰였던 나무 냉장고. 국립여성사전시관 제공

2부에서는 서양요리가 유입되고 대중매체를 통해 조리법이 확산되던 근대 이후 전통을 계승하려 애썼던 여성의 활동을 소개한다. 근대 인쇄시스템으로 출판한 최초의 조리서이자 34판(쇄)를 거듭했던 당대의 베스트셀러 <조선요리제법>(1949)과 이 책을 쓴 교육자이자 요리연구가 방신영(1890∼1977)의 삶도 조명한다. 이동은 국립여성사전시관 학예사는 “이 책은 출간 당시 ‘경성의 종잇값이 올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대 큰 인기를 끌었던 조리서”라며 “특히 근대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요리와 근대 과학적 지식을 접목하여 저술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3부에서는 해방 이후 가전제품의 탄생, 주방 구조의 서구화가 어떻게 기존 조리법과 가사노동의 조건을 변화시켰는지 살핀다.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각 가정에 보급되었던 ‘절미통’, 전기냉장고가 보급되기 이전의 ‘나무 냉장고’ 등이 눈에 띈다.

4부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한 주방의 성차별 문제를 짚는다. 남녀 가사분담 격차, 전문 요리사 분야의 ‘유리천장’ 문제를 제기한다. 전시관은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여성 헤드셰프의 비율은 5%에서 많게는 10%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소개하며 ‘그림자 노동’ 문제를 환기한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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