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지원시장 2년 추적 김보화 박사 논문
감경·감형 팁, 정서 교류하는 커뮤니티 들춰
“성범죄, 정보력·자본력 싸움으로 탈범죄화”
“방어권? 왜 성범죄에만 그러는지 본질 짚어야”
감경·감형 팁, 정서 교류하는 커뮤니티 들춰
“성범죄, 정보력·자본력 싸움으로 탈범죄화”
“방어권? 왜 성범죄에만 그러는지 본질 짚어야”
일러스트레이션 ‘리셋’ 임우정
성범죄 가해자가 감형을 받기 위한 팁과 전략이 점점 더 시장 상품화되어가고 있다. 성범죄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정보·법률·상담 등의 제반 서비스다. 매뉴얼에 따라 재판부에 ‘진지한 반성’을 내보이기 위해 기부를 하고, ‘사회적 유대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군복무 포상기록, 장기기증 서약까지 제출된다. 문제는 이러한 ‘서비스 상품’이 통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피해 세계와 유리시킨 채 가해자와 성범죄를 탈범죄화한다는 것이다.
김보화 연구원은 지난 6월 발표된 박사 논문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이화여대 여성학)를 위해 2019년부터 꼬박 2년 동안 이 시장의 메커니즘을 추적했다. 216쪽 분량의 논문엔 성범죄가 또 하나의 산업으로 키운 ‘가해자 지원 시장’이 고스란히 그려져있다. 무엇이 이 산업을 성장하게 했고, 그 성장이 시민의 성범죄 인식을 어떻게 바꿔나가고 있는지, 오랜 고민의 결과도 담았다. 이 논문은 여성계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피해자 지원 16년차 활동가이자,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책임연구원인 김 박사를 지난달 서울 마포구에서 만났다.
“변호사만 찾지, 반성은 않는다” “2010년대 중반부터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성범죄 가해자가 모여서 수다 떨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런 사이트의 회원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더라고요.” 김 연구원이 지목한 가해자 커뮤니티는 두 곳. 둘 다 네이버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한 법무법인이 운영하는 ㄱ커뮤니티는 회원수가 7만5000여명에 이른다. 남성만 가입할 수 있는 ㄴ커뮤니티는 회원수 1만3000명이다. 이들 커뮤니티는 성범죄 가해자를 가해자 지원 산업으로 이끄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예컨대 ㄱ커뮤니티에는 △심리상담사 상담신청(양형 참작사유 제출용) △사례별 법률서식 다운(내려받기) △법률전문가 상담신청 등의 카테고리가 있다. 이걸 누르면 각각 성범죄 ‘재범 방지’ 상담을 하는 심리상담사나, 수많은 사건 ‘해결·합의’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광고하는 변호사, 다양한 내용의 반성문과 탄원서를 유료로 내려받을 수 있는 법률서식 공유 사이트로 바로 연결된다. 카페 하단에는 성범죄해결 ○○로펌, 카메라이용촬영죄 법무법인 ○○등의 광고 배너가 뜬다. 초보 가입자가 성범죄 가해자 지원 시장에 쉽게 닿을 수 있도록 정거장 역할을, 법무법인이 운영하는 이 커뮤니티가 수행한다. 커뮤니티는 또 △흔들리는 멘탈잡기 △위로해 주세요 △경찰(검찰)조사 받고 왔어요 △판결선고를 앞두고 등 상황별로 회원끼리 감정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코너도 세분화해 마련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이러한 움직임이 가해자 카르텔을 구성하고, 성범죄를 범죄가 아닌 것처럼 인식시키는 ‘탈범죄화’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 카페를 보면 (회원들끼리) 서로 너무 애틋해하고 응원해요. 가해자들끼리 공식적으로 서로의 언어를 독려하고, 전략을 만들고 이러다 보면 성범죄에 무감각해지기도 쉬워요. 쉽게 말해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아 이 변호사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지 ‘내가 왜 그랬을까’ 반성하지 않는 거죠.”
논문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이화여대 여성학)를 쓴 김보화 박사.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성폭력 가해자들은 법시장에서의 합리적인 소비자로 이동함으로써 성폭력은 경제적인 것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 가해자 전용 카페들은 가해자들의 공감과 연대를 기반으로 탈범죄화된 가해자 남성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논문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 발췌)
양형기준에서 비롯한 감형 팁, ‘당뇨진단서’제출까지 논문은 가해자가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는 걸 재판부에 증명하기 위해 한국성폭력연구소 같은 피해자 지원단체에 본인 또는 가족·변호사·법무법인의 이름으로 기부까지 하는 “트랜드”가 생겼다고 지적한다. 또 ‘사회적 유대관계 원만’을 증명하기 위해 자원봉사증, 헌혈증, 군 복무 중 받았던 사격 우수상 등 각종 상장, 장기기증 서약까지 동원하는 실태도 들췄다. <한겨레>가 앞서 언급한 ㄱ커뮤니티에서 ‘양형자료’를 실제 검색하니 “제가 준비한 양형자료 좀 봐주세요” 등 양형자료가 적정한지 조언해 달라는 류의 글이 상당수 발견됐다. 한 가입자는 “초·중·고 생활기록부, 대학교 성적표, 당뇨진단확인서, 성(폭력)에 대한 도서나 관련 내용 감상문 등을 준비했다”고 썼다.
성범죄 전담 법인들은 ‘진지한 반성’하고 있다거나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증명의 내용들을 조작하고 있고, 이에 대한 재판부의 승인은 성범죄 전담 법인들의 개입 여지를 확장시키고 있다. (…) 가해자 변호사들의 사법적 기술들이 강화될 수 있는 이유는 재판부가 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므로, 조작될 여지가 있는 감경사유를 배제해야 하고 변호사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기술들을 승인하지 않아야 한다. (같은 논문 발췌)
성범죄 가해자 지원 시장을 보여주는 온라인 커뮤니티
“기댈 곳 없는” 피해자들, 수임료 대출 브로커를 찾다 “피해자에게 무료 법률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하면 대번에 ‘국선변호사들은 성의있게 안 해주잖아요’라고 해요. 할 말이 없죠. 그러다 보니 자꾸 (성범죄가) 자원의 경쟁이 되고요. 연구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성범죄 피해자에게 수임료를 대출해주는 일종의 브로커가 생겼다는 거예요. 나이 어린 피해자의 경우 돈은 없고, 국선(변호사)은 못 믿겠고, 부모님한테 말도 못하겠고, 그런 상황에서 (로펌에서) ‘수임료 대출 알선해줄게’ 하면 하게 되는 거죠.” 진화하는 가해자 지원 시장과 정체된 피해자 지원 제도. 김 연구원은 이런 현상을 ‘법시장화’의 틀로 바라보고 있다.
법시장화란 “법과 시장이 상호작용하고, 정치적인 영역을 경제적인 영역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성폭력을 권력과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탈정치화하는 기술·전략·지식의 총체”로 개념화하고자 했다. …법을 정의가 군림하도록 만드는 수단이 아니라 이익에 복무하는 수단(푸코 인용)이라는 관점에서 봤다. (같은 논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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