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ㄱ(14)씨는 학교 친한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체 채팅방에 옆반 학생의 신체 사진을 찍어 올렸다. 같은 채팅방에 있던 친구가 “왜 남의 사진을 이렇게 찍어 올리냐”고 묻자 ㄱ씨는 “웃겨서 올린 건데 왜 시비냐”고 했다. 중학생 ㄴ(15)씨는 친구 사진을 편집해 ‘능욕짤’(얼굴을 나체 사진이나 불법촬영물에 합성)을 만들어 개인 휴대전화에 소장하고 있다가 같은 반 친구한테 들켰다.
이후 두 학생이 설명한 동기는 간단했다.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디지털성범죄 청소년 가해자를 상담하는 강자겸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이하 아하센터) 팀장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인지 몰랐다는 반응도 있지만, 알았다고 하더라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용인되는 행동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젠더폭력은 세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번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에 익숙한 청소년 세대의 디지털성범죄 가해 행위가 급증하고 있다. 29일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한병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10대 사이버성폭력 범죄 피의자는 2017년 233명에서 지난해 1103명으로 4.7배 늘었다. 같은 기간 20대는 1.8배(921명→1708명), 30대 1.3배(741명→982명), 40대 1.1배(330명→373명), 50대 이상 1.3배(124명→162명) 증가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청소년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성폭력의 주된 가해자는 또래 친구였다. 아하센터가 올해 8월부터 두 달 간 초등6년∼고3년 학생 11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1 청소년성문화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남자 청소년 12.2%, 여자 청소년 16.6%가 일상생활에서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이들 가운데 남자 80.6%, 여자 63.6%가 주된 가해자로 또래 친구를 꼽았다.
이런 실태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질 좋은 성교육을 균질하게 받긴 어렵다. 필수 교과 과목이 아니기에 어떤 교육감, 학교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성교육 수준이 달라진다.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교육청 차원에서 성교육을 제도화한 곳은 울산시교육청 한군데 뿐이다. 울산시교육청은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와 함께 올해부터 초등5년과 중1년, 고1년을 대상으로 성교육 집중학년제를 운영하고 있다. 다른 시·도 교육청은 대부분 교육과정을 개발해 학교들이 재량껏 진행하도록 권고한다. 때문에 일부 학교에서는 국어, 과학 등 교과 과목 시간에 성이나 사랑, 몸과 관련한 주제를 다루며 성교육 의무 시간(연간 15시간, 성폭력 예방교육 3시간 포함)을 채우기도 한다.
교육부 책임도 제기된다. 교육부는 ‘성교육 방식은 시·도 교육청의 몫’이라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2015년 ‘학교 성교육 표준안·지도안’을 내놓은 뒤 성차별적 표현 등으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듬해 시·도교육청에 수정본을 배포하면서 표준안·지도안 활용 여부는 각 시도 교육감에게 위임했다. 교육부 조명연 학생건강정책과장은 <한겨레>에 “사회적 합의가 안 된 부분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획일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보다 각 교육청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근본적 교육의 틀을 바꾸는 건 교육부의 역할이란 지적이 많다. 한 시·도 교육청 관계자는 “교과서 중심의 학교 교육과정을 그대로 놔두고 교육청이 알아서 성교육을 잘 하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며 “교과 과목들에 대해 교육부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성교육도 정부 차원에서 교육의 질을 담보하고 교육과정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했다. 아하센터 함경진 부장도 <한겨레>에 “입시나 학업성취도가 우선시되는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성교육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성교육은 인권 교육의 영역이기도 하다. 개별 교육청과 학교 자율에 맡길 일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책임지고 다뤄야 하는 이유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다른 성교육의 질을 균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교육부가 일괄적으로 제도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화 방안으로는 △성교육 집중학년제 운영 △교과 과목으로 지정 △다른 교과목과의 융합수업을 위한 구체적인 지도안 개발 등이 제시된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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