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성폭력 사건 대법원 장기 계류 규탄 기자회견에서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박고은 기자
“늦어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성폭력 사건 장기계류는 인권침해다!”
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정문 앞,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와 ‘준강간 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모여 외쳤다. 두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된 지 36개월·21개월이 넘었지만 선고를 하지 않자, 피해자 지원단체들이 인권위에 대법원 등을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다. 대법원 형사 사건 평균 재판기간은 2.9개월(2020년 상반기 기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인데, 두 사건의 피해자들은 평균 재판기간보다 7~12배가 넘는 시간 동안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공대위는 “기약 없는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는 동안 피해자들은 일상을 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명백히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은 2010년 2명의 해군 상관이 함정에 갓 배치된 부하 여군을 성폭력한 사건이다. 해군 간부 박아무개 소령은 지난 2010년께 직속 부하였던 여성 장교 ㄱ씨가 성소수자인 걸 알고 “남자 경험을 알려 준다”며 10여 차례 성추행하고 2차례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의 지휘관(함장)이었던 김아무개 대령은 피해사실을 알게 된 뒤 상담을 빌미로 자신의 관사에 ㄱ씨를 불러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해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2017년 1심에서 박 소령과 김 대령에게 각각 징역 10년·8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018년 11월 2심을 맡은 고등군사법원은 두 사람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2017년에는 20대 남성이 술에 취한 피해자 ㄴ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일어났다. 1, 2심 재판부는 가해 장소에 설치된 폐회로티브이(CCTV)상 ㄴ씨가 만취해 남성에게 끌려가는 모습이 확인됐는데도 “피해자가 만취로 항거불능 상태임은 분명하나 준강간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2020년 5월 대법원에 접수되어 1년9개월째 계류 중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인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2심이 무죄가 나온 상황에서 가해자들은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살고 있다. 반면 피해자들은 합리적 이유 없는 대법원의 지연된 판결로 죽음과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인권위는 대법원의 행위가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것을 명확히 함으로써 무책임한 대법원의 관행을 바로잡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해군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지금도 군에서 근무 중”이라면서 “피해자는 잘못된 2심 판결을 대법원이 하루빨리 바로 잡아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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