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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뉴스AS] 임신 32주에 불법중절약…여성의 위험한 선택에 사회는 ‘침묵’

등록 2022-03-28 04:59수정 2022-03-28 07:53

32주째 불법임신중절약 복용 뒤 조산
아기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여성 논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만 3년째도
제도·법 미비 지속…사회적 책임론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조산아 변기 방치 사망사건’

지난 14일 언론에 보도된 영아살해 혐의 사건이다. 20대 여성 ㄱ씨는 남편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불법으로 구매한 임신중절약을 먹었다. 임신 32주째로, 3∼4일 뒤인 1월8일께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아이를 조기 출산했다. ㄱ씨와 남편은 아기를 변기물에 20여분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회적 비판도 적잖았다. 하지만 영아살해라는 범죄 이면에 임신중지를 위해 위험한 방법을 택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현실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낙태죄가 폐지된 지 2년째의 풍경이다.

ㄱ씨는 임신중지 시도 당시 임신 3분기(27∼40주)였다. 임신중절약은 10주 이내에 복용해야만 안전한 약이다. 만약 병원에서 임신중지 상담을 받았더라면 임신 32주째 임신중절약 복용의 위험성을 인식했을 수도 있다. 20대 보호자의 책임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사회적 책임도 무시하기 어려워 보인다.

낙태죄 처벌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2019년 4월, 낙태죄 폐지는 2021년 1월) 이후에도 입법 공백으로 인해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커녕 임신중절약도 도입되지 않은 상태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은 <한겨레>에 “미프진이란 약은 복약지도에 따라 10주 이내에 복용하기만 하면 안전한 약”이라며 “이 사건은 임신중절약이 관리 체계에 들어와 있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보여준다”고 했다.

여성계에서도 같은 취지의 성명을 내놓았다.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 등은 지난 22일 “이 사건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사실은, 이러한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도록 여성들을 내몰아 온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며 “(입법 공백으로 인한 임신중지 체계 미비, 임신중절약 허가 지연 등)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전제들을 묵살하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 앞에 침묵한 채, 오직 여성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운다면 이러한 일들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비롯한 71개 단체가 2018년 7월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비롯한 71개 단체가 2018년 7월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개정입법 및 정책 공백으로 실제 많은 이들이 임신중지를 위해 병원을 찾는 대신 불법 유통망을 통해 임신중절약을 구하고 있다. 불법으로 거래된 임신중절약의 안전성은 담보할 수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이슈페이퍼(‘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중단 의료접근 실태와 정책과제’)를 보면, 약물적 방법으로 임신중단을 경험한 189명 가운데 42.8%는 국내 혹은 해외의 임신중지 약물 판매자·단체를 통해 약을 구매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대체입법의 부재와 정부의 약물 도입에 대한 정책 마련이 늦어짐에 따라 불법 약물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구매하는 행위는 지속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들이 약물적 방법을 택한 이유(중복응답)도 ‘약물방법이 수술방법보다 좀 더 안전하거나 내 몸에 영향이 적을 것 같아서’(41.3%)란 답변이 가장 많았지만, ‘임신중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에 관한 정보가 없어서’(25.9%), ‘알아본 의료기관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해서’(21.7%), ‘임신중단에 필요한 비용이 없거나 부족해서’(18.5%) 등 체계 마련 미비 탓인 경우도 상당수였다.

정부는 여전히 더딘 모양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안정성을 이유로 임신중절약 도입을 계속 미루고 있다. 약의 주요 구성 약물인 미페프리스톤을 세계보건기구(WHO)에선 이미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고, 전세계 87개 나라(올해 1월 기준)에서 사용 중인 실태와 대비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한겨레>에 “미프지미소정 심사과정 중 일부 자료에 대한 보완이 필요해 업체에 보완 자료 제출을 요청한 상태”라고 27일 밝혔다. 앞서 <한겨레>는 지난해 11월24일 식약처로부터 같은 대답을 받은 바 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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