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그간 추진해온 성평등 정책을 진단하고, 당선자 공약을 점검하는 자리를 가졌다. 연구자들은 그동안 성평등 관련 법·제도 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나, 현실의 성평등 수준은 여전히 국제 기준에 한참 뒤처진다는 점을 공통으로 지적했다.
연구원 개원 39주년을 기념해 연 이번 세미나는 오후 2시부터 온라인에서 생중계됐다. 연구자들은 △노동 △가족 △여성폭력 등 분야에서 한국 사회가 일군 성과를 살피면서 새 정부가 펼칠 공약을 점검했다.
‘노동’ 분야의 점검을 맡은 강민정 연구위원은 윤 정부의 추진해야 할 핵심 과제로 ‘노동시장 구조적 성차별 해소’를 꼽았다. 강 위원은 국제적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인 성별임금격차, 성별직종분리, 유리천장, 성별근로형태 분리 등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강 위원은 또 “정책적으로 ‘청년’이 주목받는 이 모든 상황에서 청년 ‘여성’은 어디에도 없다”며 “특히 (청년 여성은) 노동시장에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했다. 강 연구위원은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인 ‘성별근로공시제’에 대해 “자발적 참여로 시행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고 했고, 육아휴직 확대(2년→3년) 공약에 대해서도 근로형태에 따라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상당하기 때문에 “정책 우선순위는 제도의 커버리지(이용 범위) 확대가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새 정부가 저출생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데, 이는 성평등 사회에 가까워져야 해결 가능한 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은지 연구위원은 윤 정부가 청년 여성의 가치관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짚었다. 김 위원은 “이미 청년 여성들은 일 중심적 생애 전망을 갖고 있다. 이 추세를 역행할 경우 저출생이 심화하는 단계를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연구원이 2019년 실시한 조사에서 ‘귀하의 청년기 삶에서 다음의 영역에 중요성을 얼마나 부여하고 있는냐’고 물었더니 여성 응답자의 36.2%, 남성의 35.9%가 ‘일’을 꼽았다. 일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높았다.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전업주부 모델이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위원은 현재 우리나라가 “여성 역할의 혁명은 일어났으나, 사회는 적응 지체되어 출생률이 급하락하는 불균형 상태”라고 진단한 뒤 “여성 고용, 남성 돌봄을 확대하고 질 좋은 사회적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성평등을 사회로 진전하면, 이러한 불균형은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안전사회를 위한 여성폭력 정책의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 장미혜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의 여성폭력은 법적 부부도 아니지만, 완전히 모르는 사람도 아닌 관계에서 주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관계에서의 폭력을 어떻게 정의하고 처벌할지가 (향후 여성폭력 대응의) 핵심”이라고 했다. 장 선임 연구위원은 지난해 여성가족부의 수탁을 받아 진행한 첫 ‘여성폭력 실태조사’의 결과를 일부 소개했다. 그는 “여성 응답자 가운데 34.9%가 평생 한 번이라도 여성폭력을 당한 적 있다고 응답했고,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폭력을 경험은 비율은 16.1%였다”고 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윤 당선자의 공약 가운데 여덟번째가 ‘안심 대한민국’인만큼, 빅데이터 활용한 거시적 차원의 여성안전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응답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도 처음 공개됐다. ‘성별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정부의 주요과제로 추진하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76%는 ‘동의한다’고 답했다. 성별을 나눠보면, 남성은 70%, 여성은 82%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가 성평등 정책을 잘할 것으로 보느냐’는 문항에는 응답자 48%가 ‘부정평가’(매우 혹은 대체로 못할 것)를 했다. ‘모르겠다’는 의견은 15%, 긍정평가(매우 혹은 대체로 잘할 것)는 36%에 불과했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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