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웅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활동가가 1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지방선거 출마 이유를 밝히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대 대선을 거치며 백래시(사회 변화에 대한 반발)는 ‘대중의 목소리’가 됐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놀이처럼 자리 잡은 안티 페미니즘을 정치권은 선거 전략으로 내세웠고,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로 퍼 날랐다. 제도권 정치와 언론은 20대 남성을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규정했다. 이른바 ‘이대남’ 담론이다. 성평등을 요구하는 여성들과 이대남을 대결 구도로 몰아가며 이를 ‘젠더 갈등’이라고도 일컬었다.
“‘차별하자’는 주장을 어떻게 정치권이 나서서 ‘대중의 목소리’라고 규정할 수 있나요?” 1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연웅(27) 무소속 은평구의원 예비후보는 이렇게 되물었다. 이대남 담론에 관해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그는 “젠더 갈등은 만들어진 갈등”이라며 “청년세대가 마주한 고통에 정치권이 해결책을 제시하는 어려운 길 대신, 갈등 조장이란 쉬운 길을 택한 탓”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어려운 길’을 찾기 위해 구의원 선거에 뛰어든 이유다.
김 후보는 청년 남성들의 모임인 ‘행동하는 보통남자들’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 모임은 정치권이 규정한 ‘이대남’ 밖 이대남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20∼30대 남성들이 꾸린 단체다. 지난 2월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3월 ‘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 구호를 외치며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김 후보는 “또다시 남성이 나서 말하는 것에 조심스러웠지만, ‘다른 이대남도 있다’는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상황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이 만들었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가 내세우는 공정은 ‘선택적 공정’이고 ‘그들만의 공정’이라는 것이 김 후보의 생각이다. 중산층 이상에서 자란 4년제 대학 출신의 수도권 거주 20대 남성만을 위한 ‘공정’이라는 말이다. “저는 차별을 공정으로, 차별주의를 능력주의로 둔갑시킨 것이라고 봐요. 애초 능력이란 것도 주관적인 거니까요. 가령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선출된 게 후보 중 가장 능력이 있어서였나요? 저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이 대표 등은 자기모순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거죠.”
김 후보는 공정과 능력을 내세워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에 반기를 들었다. 배제가 아닌 포용을, 차별이 아닌 실질적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년의 범주는 넓고 다양해요. 왜 여성 청년, 지방 청년, 고졸 청년 등의 질문에는 정치가 답을 하지 않죠? 여성가족부와 여성 할당제 폐지, 소수자 배제로는 청년세대가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어요.” 그는 “이런 문제들의 근본원인은 구조적 차별과 제도적 미비에 있다. 갈등 조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가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이유다.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회원들이 지난 2월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성별과 세대의 갈라치기에 대해 성평등 목소리를 내고, 성차별과 혐오를 멈출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페미니즘’은 김 후보가 지향하는 정치의 방향성 중 하나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배경이 그를 페미니즘으로 이끌었다. 김 후보는 “어떠한 이유로든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 게 페미니즘”이라며 “정상가족을 기반으로 한 논리와 제도로부터 나는 배제된 채 살아왔다. 내가 겪는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마주한 어머니의 죽음도 그의 가치관에 영향을 줬다. 김 후보의 어머니는 2010년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선 ‘과로’ 탓이라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김 후보의 어머니는 간호조무사 일과 식당 서빙 일을 하루에 번갈아가며 했다. 가사·돌봄 노동도 어머니의 몫이었다. 김 후보는 “그 때만 해도 가정 내 성 역할이 뚜렷했다. 아버지는 돈을 잘 벌어오던 과거에 갇혀 사업을 접지 못했고, 어머니는 종일 밖에서 일하고도 당연하게 가사 노동을 해야했다.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사실은 성평등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김 후보는 ‘실패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어머니의 죽음 뒤 자신과 가족이 겪은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많은 이들이 정신보건시스템에 쉽게 접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6년 법인을 설립한 뒤, 3년 동안 ‘상담을 잇담’이란 심리상담 플랫폼서비스를 직접 운영했다.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용료를 낮추려다 보니 수익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돌이켜보면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사업으로 풀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세대의 자살률이 높잖아요. 무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사회가 만들어 놓고, 이런 죽음을 개인 탓으로 돌리고 있어요. 정치가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목표입니다.”
김 후보는 “우선 제대로 된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게 청년 정치인, 페미니스트 정치인인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했다. 아직 예비후보지만 포부는 여느 기성 정치인보다 커 보였다. “이대남뿐만 아니라 다양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 다시 한 번 평등과 공정에 대해 논의해야 해요. 그중 일부는 정책으로 일부는 사회적 약속으로 만들 겁니다. 그래야 모두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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