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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가정폭력 피해 늘었지만 쉼터 입소는 왜 줄었을까

등록 2022-06-10 17:29수정 2022-06-10 17:35

2016~2020년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30% 늘었지만, 쉼터 입소 인원 절반 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클립아트코리아
2016~2020년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30% 늘었지만, 쉼터 입소 인원 절반 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클립아트코리아

최근 5년 동안 가정폭력 피해는 줄지 않았지만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 입소자는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쉼터의 열악한 시설 환경과 엄격한 입소 수칙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0일 ‘2021년 여성가족부 가정폭력 관련 시설 운영실적’을 보면,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2016년 30만3745건에서 2020년 39만6951건으로 30%가량 늘었지만, 가정폭력 쉼터 입소 인원은 같은 기간 2102명에서 1133명으로 46%가량 줄었다. 국내 최초 가정폭력피해자 쉼터 ‘오래뜰’(한국여성의전화 부설)의 신상희 시설장은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에서 “쉼터 입소자가 줄었다고 가정폭력이 줄어든 건 아니다”라며 피해자들이 쉼터에 입소하지 않는 이유로 △열악한 시설 환경 △휴대전화 사용 제한 등 엄격한 수칙 △개별 피해자 특성을 고려할 수 없는 현실 등을 꼽았다. 이날 토론회는 오래뜰 개소 35주년을 맞아 한국여성의전화와 국회 여성아동인권포럼이 가정폭력피해자 지원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쉼터 입소를 꺼리는 주요 원인으로는 열악한 시설 환경이 지목된다. “97% 이상이 소규모 공동생활 시설로, 한 공간에 실무자 포함 20여명이 밀집돼 생활하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게 지원단체의 설명이다. 아동과 동반하는 입소자의 경우 다른 입소자들과 한방에서 지내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화장실과 샤워실 한두개를 열 명가량이 함께 사용해야 하는 쉼터들도 있다. 김인숙 광주여성의전화 부설 쉼터 ‘바램’ 시설장은 “자신의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불안·위험에 노출돼온 피해자들은 타인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시설로는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안정적으로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어렵다”고 했다.

휴대전화 사용 제한 등 쉼터 운영수칙도 입소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쉼터는 피해자 신변 보호와 쉼터 위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휴대전화 사용, 4대 보험이 가입되는 경제활동, 신용카드 사용, 외출 등을 제한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활동의 필수품인 휴대전화 사용 제한은 자립을 위한 경제활동 참여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신상희 시설장은 “취업 정보를 직접 받을 수 없는 문제, 이혼 소송으로 법원과 직접 소통하지 못하는 문제 등 휴대전화 이용 제한으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입소자들이 많다”며 “독일 사례처럼 기술 개발, 통신사 협조 등을 통해 휴대전화를 이용해도 위치추적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의 쉼터들은 입소자에게 추적을 불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안전한 휴대전화를 지급한다.

개별 피해자들의 특성을 고려할 수 없는 쉼터의 현실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에서는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위험도가 높은 입소자를 위한 맞춤형 쉼터가 따로 없다. 반면 네덜란드의 경우 입소 때 위험도에 따라 입소자를 분류한다. 응급 단계인 피해자는 응급 쉼터에서 회복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다. 개별 쉼터 안에도 입소자별 특성이나 가구 구성 인원에 맞는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주거 공간이 있다. 아이와 함께 입소한 피해자, 성소수자 여성 등도 눈치 보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쉼터에 거주하는 가정폭력피해자들은 자신의 상황과 피해의 특성에 따른 적절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피해자 특성에 따라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자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수진 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 계장은 “쉼터에서 안정을 찾은 피해자가 퇴소한 뒤에도 여전한 사회적 장벽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에게 법적·제도적 자립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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