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페토 등 메타버스가 아이들이 아닌 성착취자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권주리 십대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메타버스가 불량 이용자를 제재하거나 신고하는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아동·청소년의 개인 정보는 쉽게 드러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메타버스 내 젠더폭력 실태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변호사·검사 등 법조인, 피해자 지원단체 활동가, 메타버스 스타트업 대표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단법인 선(이사장 강금실)과 사단법인 올(이사장 전효숙)은 14일 오후 4시 ‘웹 3.0 에서의 기본권과 윤리–메타버스에서의 젠더폭력’을 주제로 화상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권주리 십대여성인권센터(센터) 사무국장은 ‘메타버스 내 디지털 성폭력 모니터링 현황’을 발표했다. 센터의 활동가 6명은 모니터링을 위해 아바타의 나이를 10대로, 성별을 여성으로 설정하고 제페토에 입장했다. 자신을 30대 남성이라고 소개한 한 이용자가 5명에게 공통으로 성착취를 시도했다. 이 이용자는 ①캐릭터를 칭찬하며 접근하고 ②대화 기록이 남지 않는 비밀채팅방으로 초대해 일상·성적인 대화를 이어가며 ③아이템(의상)을 선물하는 방식으로 환심을 사고 ④신체 사진을 달라는 등 성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유형을 보였다. 권 사무국장은 “성착취자들은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고 싶은 미성년자의 마음을 이용해 아이템을 선물하고 이를 빌미로 성적인 행동을 요구한다”며 “이런 방식으로 얻은 미성년자의 사진이나 영상을 판매하거나, 성폭행·성매매를 강요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메타버스가 성착취 플랫폼으로 진화하는데도 사업자의 대처는 미흡하다고 권 사무국장은 꼬집었다. 현재 불량 이용자(성착취 시도자)를 상대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①내부 신고 ②차단 안내뿐인데, 두 방식 모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권 사무국장은 “차단은 불량 이용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할 뿐 그의 활동을 실제로 제재할 수 없고, 신고하면 그 뒤 처리기준·결과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실제 센터가 제페토 측에 신고 처리기준을 물었더니 ‘말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반면 불량 이용자는 범행을 이어가기 유리한 구조라는 게 권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아이디나 닉네임을 30일마다 바꿀 수 있어 불량 이용자가 닉네임, 아이디, 캐릭터를 모두 변경하면 추적이 어렵다. 플랫폼 내 몇몇 서비스의 ‘기본 설정’도 문제가 있다. 예컨대 ‘나와 포토부스를 찍을 수 있는 사람’의 기본 설정은 △나를 팔로우한 사람 △내가 팔로우한 사람 △없음 선택지 가운데 ‘나를 팔로우한 사람’으로 되어있다. 청소년 이용자가 이 기본 설정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내 캐릭터를 성희롱·성추행하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다. 권 사무국장은 실제 이런 피해를 호소하는 신고도 있었다고 했다.
신종 정보기술과 형사법의 관계를 연구하는 대검찰청 AI·블록체인 커뮤니티 소속 김정화 검사는 사견을 전제로 “현재 아바타를 상대로 한 스토킹, 강간·강제추행, 공연음란 등의 행위를 규율할 법이 부재하다”며 “메타버스 공간에서 처벌을 해야 할 정도의 행위가 발생했다면 기존 법의 입법 목적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반영해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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