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를 조속히 추진하라고 25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여성가족부 업무보고 뒤 열린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여가부 업무를 총체적으로 검토해 여가부 폐지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김현숙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윤 대통령에게 △모든 가족 대상 맞춤형 정책서비스 강화 △‘아이돌보미 국가자격제’ 도입 등을 통한 일·가정 양립 지원 △위기청소년 ‘통합시스템’ 2024년까지 구축 △5대 폭력 피해자 신고부터 피해회복까지 원스톱 지원 및 권력형 성범죄 근절 등 4개 부문 주요 추진과제를 보고했다. 여가부 폐지와 관련한 추진방안은 보고하지 않았으나, 윤 대통령은 ‘폐지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별도로 지시한 것이다.
이런 윤 대통령의 태도는 사회적 논의를 강조했던 두달 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이던 지난 5월5일 대변인실 이름으로 입장문을 내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가부 폐지’ 공약을 추진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다만 여가부 장관을 중심으로 여가부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과 역할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김 장관도 5월 취임 이후 줄곧 “여가부 폐지의 타임라인(기한)은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각계 의견을 들은 뒤 폐지안을 내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조직 개편 방향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전략추진단도 지난달 17일 여가부 내부에 꾸려진 상황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속도전을 주문하면서 여가부의 시계도 빨라질 수밖에 없게 됐다. 김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 뒤 기자들과 만나 “시간을 많이 갖고 (폐지안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오늘 지시는) 대통령이 빠른 시간 내 안을 내놓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했다”며 “대통령이 빨리(안을 마련)하라고 했으니, 속도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차분한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여가부 관계자는 “(여가부 폐지는) 그동안 계속 듣던 얘기라 이번 대통령 발언에 큰 감흥은 없다”며 “그동안 여가부의 권한, 인력, 조직 위상 등에 한계를 많이 느꼈는데, (이번 기회에) 중앙부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기능이 강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여가부 업무보고는 ‘3무’였다. 김현숙 장관은 ‘여가부 폐지’뿐만 아니라, 성평등 정책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책도 업무보고에 담지 않았다. 앞서 문재인·박근혜 정부 등에서 여가부는 업무보고 때 성평등 정책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대책을 주요 정책과제로 꾸준히 내놓은 바 있다.
여가부가 이날 특히 강조한 정책은 ‘아이돌봄 서비스 민간영역 확대’다. 김 장관은 업무보고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민간에서 제공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민간 공통의 ‘아이돌보미 국가자격제도’를 2024년까지 신설해 도입하겠다”며 “이를 통해 현재 3만명 정도인 아이돌보미를 민간 포함 17만명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또 한부모가족과 청소년 부모에 대한 아동 양육비 지원을 확대하고,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조처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부모가족 아동 양육비 지원 대상을 현행 중위소득 52% 이하에서 오는 10월 58%로 확대하고, 8월께 양육비 채무자의 출국금지 기준을 현행 5천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이날 여가부가 업무보고한 내용은 대체로 윤 정부의 국정과제를 충실히 반영했다. 그러나 국정과제인데도 ‘패싱’당한 정책도 있었다. ‘성별근로공시제’가 대표적이다. 이는 양성평등 관련 정책으로, 입직부터 퇴직 때까지 단계별로 성별 데이터를 수집해 공개하는 제도다. 김 장관은 이 제도를 두고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 포함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5일 노동부 업무보고에 관련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윤 정부 양성평등 정책에서 그나마 전향적이라고 평가받은 공약이 두 부처의 무관심 속에 사실상 방치된 것이다.
국정과제에는 담기지 않았으나, 여가부가 선제적으로 제안한 정책도 있었다. ‘남성 피해자의 특성을 고려한 보호시설 설치 추진’이다. 여가부는 해바라기센터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남성 피해자 지원 비율이 해마다 소폭 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남성 피해자를 위한 보호시설이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이들 센터는 성별 불문 모든 피해자를 지원하지만, 남성만을 위한 ‘보호시설’은 전무하다는 것이 여가부의 판단이다.
최윤아 이주빈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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