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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여자 조감독 말은 못 듣겠단 영상계, 그 문화 부수러 모였다”

등록 2022-08-02 11:39수정 2022-08-02 16:09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프프프
“잡일 맡기고, 중요 결정에선 제외”
남성 중심 네트워크, 문화 바꾸고 싶어
“자기 작품에 자부심 더 가졌으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서 오줌을 누는 사람들이 어떻게 앉아서 오줌을 누는 사람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느냐” 1948년 8월4일 대한민국 정부 초대 상공부(지금의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이 된 임영신(1899~1977)은 취임 뒤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여자 말은 듣지 않겠다.” 최근 한국의 영상업계에 남성 조감독이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여성 조감독에게 던진 말이다. 남성 우위, 남성 중심의 문화는 77년이 지나도 이토록 단단하다. ‘남초’인 영상 제작 업계에서 여성들이 오래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끌어주는 네트워크가 절실했다. 그렇게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프프프(FFF, Feminist Filmmakers Forever)가 탄생했다.

<한겨레>는 지난 21일 프프프를 운영하는 프로덕션 대표이자 감독인 알(활동명), 술라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프프프는 2020년 이들을 포함해 3명에서 시작했다. 올해는 84명의 여성 영상인이 3기 프프프로 활동 중이다. 광고, 방송, 영화 및 비디오아트, 실사촬영, 모션그래픽, 인터랙티브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영상인들이 모였다. 이들이 영상업계에서 직접 겪은 성차별이 프프프를 키웠다. 술라는 “조감독을 할 때 남성 동료와 동업했었는데 나한테는 주로 편집이나 사람 상대하는 일을 줬다. 현장에서도 ‘잡일’을 맡았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를 제외하기도 했다. 잘못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이래서 여자랑 일하면 안 된다’며 예민하다는 소리도 들었다”고 했다. ‘여자 말은 안 듣겠다’는 사례는 한 여성 영상인이 알에게 들려준 경험이다.

“잘못 지적하면 ‘이래서 여자랑 일하면…”

이들은 지금 프로덕션 대표다. 남성중심적 문화를 없애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알은 “남성 직원들은 직원들이 모여 식사할 때도 감독인 내가 밥을 먼저 먹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앉자마자 선배들의 상을 차리는 등 군대 문화가 있다. 나는 그런 쓸데없는 예의 차리는 것에 반대한다. 밥은 각자 먹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술라는 “남성 대표나 감독을 보면 지인을 헐값에 데려와서 ‘형이 키워주겠다. 현장 경험시켜주겠다’고 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면서 형-동생 라인을 만들어가는 거다. 난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한 만큼 정당한 임금을 주고 있다”고 했다.

프프프 로고. 프프프 제공
프프프 로고. 프프프 제공

영상계의 성비 불균형은 심각하다. 2020년 6월 영화진흥위원회가 펴낸 ‘한국영화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를 보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개봉한 영화의 주요 스태프의 여성 비율은 의상(85.1%)과 분장(91.1%)을 빼고 모두 남성보다 낮았다. 분야별 여성 스태프 비율은 미술 42.1%, 편집 39.5%, 각본 25.0%, 프로듀서 23.4%, 음악 20.5%, 제작 15.7%, 사운드 13.3%, 연출 11.5%이었다. 특히 촬영(7.1%)과 조명(2.4%)의 여성 스태프 비율은 10%를 넘지 못했다.

이런 탓에 여성 영상인들이 겪는 고충이 크다. 프프프가 여성 영상인들을 모아 업계 내의 불공정과 성차별에 대해 토로하는 ‘토로회’를 연 이유다.

프프프 ‘토로회’ 가운데

디(활동명·영화감독)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과 진학도 무서워서 못 했다. 유명한 여성 영화감독이 남성보다 현저히 적고,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주변에 물어봐도 모두가 ‘여자는 감독하기 힘들다’고 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자란 나는 남성중심적 문화가 싫고 불편한데 영화를 하려면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인상 때문에 진입이 엄청나게 늦어졌다. 이런 문제가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여성 청소년과 청년에게 높은 진입 장벽이 된다. 여성 감독이 많다면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그런 상황이 아니다 보니 악순환이 계속된다.”

케이(프로덕션 대표, 뮤직비디오 감독) “회사 대 회사 미팅을 진행할 때 나와 남성이 같이 나가면 내가 대표인데도 남성이 당연히 대표일 거라 인식한다. 그럴 때마다 해명해야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심지어 건물 관리인분들도 내가 대표인 걸 아는데 매번 ‘아가씨’라고 부른다.”

와이(영화 스태프) “영상·영화 제작자들의 구인·구직 커뮤니티만 봐도 구인 글에 남성만 뽑는 케이스가 허다하다. 공고에 여성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정작 뽑진 않는 게 대부분이다. 한 팀에 여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미 여자가 있다”고 말하며 더는 뽑지 않는다. 그렇게 들어간 현장에서 성차별이 만연하다. 내가 단편 영화 스크립터일 때 한 남성 사수는 나에게 “너는 여자 소개 좀 해주고, ○○(연출부 남성)은 힘든 일이 있으면 형한테 연락해. 형이 끌어줄게”라고 말했다. “저는요?”라고 반문하자 “일단 여자 소개부터 해주고 이야기하자”고 한 적이 있다. 성폭력도 일어나지만 공론화가 힘든 분위기다. 특히 직급 낮은 여성 스태프가 직급 높은 남성 스태프에게 성적 폭력을 당하면 다들 쉬쉬하며 넘어간다. 나도 그래본 적 있고, 주변 모두가 그런 경험이 있다.“

제이(컬러리스트) “촬영장에 올 때 민낯으로 오지 말고 화장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화장하고 가면 “정신 못 차렸냐? 현장에서 화장을 해?”라고 또 욕먹는다. 촬영, 조명 쪽은 확실히 남자 비율이 우세하고 미술, 의상, 편집 쪽은 여자 비율이 우세한 것 같다. 편집 같은 후반작업에는 여자가 많다지만 사수는 남성이 훨씬 많다. 영상업계가 사람을 갈아 넣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힘들어하면 ‘여자라서 약하다’고 낙인 찍는다.”

에이(영상 프로덕션 스태프) “큰 촬영 현장이 아니라서 나도 남성 스태프들과 같이 조명이랑 카메라를 만지고 옮긴다. 내가 무거운 장비를 들려고 하면 남성 스태프들이 하겠다고 뺏어간다. 그러면서 “너는 여자라서 꿀 빤다”고 한다.”

프프프는 토로회 뿐 아니라 △누리집에 올라온 포트폴리오를 통한 구인·구직 △지원 사업, 영상 프로그램 및 장비 정보 등을 담은 뉴스레터 발행 △여성 멘토와의 워크샵 △다른 여성 작업자와 협업 등의 활동을 한다.

“우리는 사회문제에 더 민감하다는 장점 있어”

3명으로 시작한 프프프는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 크루’ 2, 3기 참가팀에 선정돼 단체를 키워왔다. 7월4일 오후 7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원 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는 글을 올려 이 사업을 비판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5일, 여가부는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술라는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성평등 사회를 만드는 (정부 부처의) 대표자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여당 원내대표 말 한마디에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사람을 장관으로 둘 수 있는가”라고 했다. 술라는 “다른 단체도 사업 지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4기에는 지원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렇게 돼서 안타깝다”고 했다.

이들은 “여성 영상인이 자기 작업에 조금 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술라는 “공익 광고를 만드는데 남성 위주 프로덕션에서는 여성을 ‘긴 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모습’으로만 그려서 심의에 걸리는 모습을 자주 본다(정부 부처나 지자체는 홍보물을 만들 때 성별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표현이 있는지 등을 점검한다). 하지만 여성 제작자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소수자로서 사회문제에 더 민감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알은 “직접적인 성차별도 문제지만, 여성 영상인이 자신감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포트폴리오(자신의 작업 결과물을 모은 자료)를 공개하는 것도 부끄러워하는데 막상 작업을 보면 훌륭하다. 자기 어필을 해야 일을 따올 수 있는 환경이다.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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