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불법 합성물이 텔레그램에 유포된 피해 사실을 밝힌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부의 부실 대응을 비판하고 나섰다. 박 전 위원장은 3년 전 엔(n)번방 사건을 처음 알리고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였다. 그는 지난 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불법합성물 피해) 신고 뒤 약 한 달 동안 잠잠하던 경찰이 언론 보도 이후에야 연락을 해왔다”며 “텔레그램이 협조하지 않는 한 무엇도 피해자에게 힘이 되지 않는다. 국가가 나서서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텔레그램을 한국에서 추방하겠다는 수준의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엔번방 사건 당시 가해자 10명 이상이 자신의 얼굴에 노출 사진을 합성해 제작·유포한 이른바 ‘능욕방’에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본인의 불법합성물이 유포된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됐나.
“지난 8월 나를 지지하는 분들이 제보를 해주셨다. 내 얼굴에 노출 사진을 합성해 유포하는 일명 ‘능욕방’이 텔레그램에 생겼다고 했다. 링크를 받아 방에 들어갔다. 신고를 위해 불법합성물을 직접 수집했다. 처음 방에 들어갔을 때는 100명 정도 있었다. 하루에 100명씩 늘더니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는 500명가량이 있었다. 그 가운데 대여섯명이 불법합성물을 제작해 유포하는, 직접 가해를 했다.”
―방에서 겪은 고통이 심했을 것 같다.
“직접 들어가 있으니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방에서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며칠간 방을 들어갔다가 나갔다가 했다. 그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됐다. 텔레그램은 자신과 같은 단체방에 들어가 있는 이용자들을 알 수 있다. 제가 ‘추적단 불꽃’ 활동 때 썼던 텔레그램 계정으로 들어가 보니, 그 당시 가해자 중 10명 이상이 그 방에 들어와 있었다. 최소 2년 이상 텔레그램에서 가해를 저지르던 이들이 제 ‘능욕방’에도 들어와 있던 셈이다. 아이디를 바꾸고 재가입한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그런 것까지 감안하면 더 많을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해당 피해 사실을 밝히게 됐나.
“내 생각보다는 늦게 방이 만들어졌다. 중요한 건 시점이다. 내가 제1야당의 비대위원장일 때는 만들지 못하다가 자리에서 내려오자 가해를 시작한 것 아닌가. 가해자들은 강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이번에 드러난 ‘제2의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제2의 엔번방 사건)도 피해자가 대부분 미성년자라고 한다. 내 사건을 굳이 공론화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번 일로 텔레그램 (성착취의) 심각성을 조금 더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결심했다.”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8월3일 지인이 온라인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ECRM)으로 범죄를 신고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경찰에서는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신고가 접수만 됐을 뿐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9월1일 언론에 피해를 밝히고 난 다음날(9월2일)에서야 경찰이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경찰은 신고자에게 전화해서 “수사가 진행되진 않았다. 가해자를 특정할만한 증거 자료가 있느냐”는 식으로 물어봤다고 한다. 사건 신고할 때 텔레그램 링크 등을 다 보냈는데, 경찰이 해당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더라. 사건을 수사하려면 경찰이 방에 들어가서 채증해야 한다. 가해자를 검거할 수 있을 정도의 결정적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다. 결국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피해자나 활동가의 몫으로 남는다.”
―반복되는 디지털 성착취를 막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가장 큰 문제는 텔레그램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 조주빈, 문형욱도 경찰이 끈질기게 몇 개월 동안 쫓고 쫓아서 잡은 것이지, 텔레그램이 도와서 잡은 게 아니다. 텔레그램이 협조를 하지 않는 이상 어떤 입법을 한다고 해도 피해자에게 실질적 힘이 되긴 어렵다고 본다.”
―텔레그램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지난 3월 브라질 대법원이 “텔레그램이 브라질 당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허위 정보가 포함된 메시지를 삭제하지 않았다”며 텔레그램 앱의
즉각적 차단을 명령한 바 있다. 그러자 파벨 두로브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는 하루 만에 사과하고 경찰에 협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결국 한국도 텔레그램에 대해 ‘국가적으로 엄격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현재 텔레그램은 경찰이 수사 협조 공문을 보내도 답이 없고 공식적인 창구도 없다. 경찰 개인이 텔레그램에 협조 공문을 보내게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추방하겠다는 수준의 메시지를 내야 텔레그램을 통한 디지털 성착취를 멈출 수 있다고 본다.”
―사용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는데.
“누군가는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인격 살인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 표현의 자유, 통신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은 자신은 절대 피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기득권을 가진 위치에서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정부는 디지털 성폭력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다고 보는가.
“이 문제는 오롯이 여성가족부에만 맡길 수도 없고 정부 부처 전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다만 여가부는 이미 발생한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그게 불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현숙 여가부 장관을 앉힐 때부터 부처 폐지를 염두에 뒀는데, 여가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윤 대통령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고 여가부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모색하라고 지시를 내려야 한다. 대통령부터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로는 어떤 게 있을까.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알려진 뒤 가해자와 연락 도중에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럴 경우 경찰은 피해자에게 “피해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방을 나오라”고 하는데, 피해자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방을 나가면 가해자가 성착취물을 유포할 것 같고, 그렇다고 계속 방에 머물면서 협박당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경찰 등이 피해자의 아이디를 직접 받아서 대처하는 것도 방법이다.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경찰 한명이 담당하는 사이버 범죄가 너무 많아 방마다 들어가서 채증하는 것도 현실적으론 어렵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치인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가 슈퍼카를 타고 범죄를 저지른다면, 국회 입법 수준은 경운기를 끌고 탈탈거리며 쫓아가는 수준에 불과하다. 과거 텔레그램 성착취가 알려졌을 때 ‘엔(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으니 다 된 것 아니냐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는 못 잡는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디지털 성범죄를 끊어내려는 노력을 국회가 보여야 한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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