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외국인 직원을 대상으로 성폭력예방교육을 하면서 엉터리로 번역된 교육 자료를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9일 외교부에서 제출받은 성폭력예방교육 자료를 파악해보니, 55분 분량 교육 자료 가운데 315개 문장에서 오역이나 오타가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실은 외부 통·번역 전문업체에 관련 자료를 의뢰해 내용을 분석했다. 전세계 167개 나라 재외공관에는 3050명의 한국인 직원과 1876명의 외국인 직원이 함께 근무한다.
김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 예방의 중요한 기본 개념들을 완전히 잘못 번역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성차별적 고정관념’과 ‘피해자의 거부의사’다.
자막 감수 내용을 보면, ‘성차별적 고정관념이 자리한 경우 성차별적 문화가 성희롱과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장에서 ‘성차별적 고정관념’(discrimination based on gender stereotypes)을 ‘성고정관념 차별’(gender stereotyping discrimination)로 썼다. ‘많은 경우 행위자는 피해자의 거부의사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란 내용에서는 ‘피해자의 거부의사’(the victim’s non-consent)를 ‘피해자의 거절할 생각’(the victim’s intention to refuse)으로 잘못 번역했다.
외교부 성폭력예방교육 영어 자막을 감수한 통·번역 전문업체 관계자는 “영상을 본 외국인 직원이 교육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며 “교육 자료에서 핵심적인 단어들이 잘못 표현된 경우도 있었다. 원어민 감수자가 감수를 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일부 재외공관의 경우, 성폭력예방교육이 정해진 기한 안에 실시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양성평등기본법 시행령 제20조1항1호’에는 ‘국가기관 등은 신규 임용한 사람에게 임용된 날부터 2개월 이내에 성폭력예방교육을 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몇몇 재외공관은 정해진 연간 교육 일정 외에 수시로 채용한 직원에 대한 성폭력예방교육은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재외공관에서 외국인 행정직원들을 포함해 적절한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예방교육 자료 등과 관련한 내용을 확인해 필요한 조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는 잇따른 성폭력 사건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지난 5월에는 네덜란드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40대 외국인 직원이 20대 한국인 여성 직원을 수차례 성추행한 사건이 알려졌다. 가해 남성은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았고, 피해자는 사직했다. 2017년에는 외교관 김아무개씨가 뉴질랜드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감봉 1개월의 경징계를 받기도 했다. 외교부가 제출한 ‘외교부 소속 공무원 및 행정직원의 성비위 징계 현황’을 보면,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28명이 성비위에 따른 품위유지 의무위반으로 징계를 받았고, 이 가운데 15명이 간부급(과장급 이상)이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