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전미순(41)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슬랩> 갈무리
“조종사가 된 여성 승무원…유리천장 깬 비결은?” “승무원 유니폼 벗고 조종사로…에어서울 첫 여성 부기장 탄생”
전미순(41)씨가 항공사 에어서울의 부기장이 됐을 때, 언론에 보도된 기사 제목이다. 전씨는 승무원으로 일하다가 조종사가 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에어서울의 첫 여성 조종사이자 첫 여성 부기장이었다. 그는 당시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비행기는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른다. 나는 파일럿으로서 비행기를 어떻게 안전하게 조종할 것인지에 집중할 뿐”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그의 꿈은 4년여 만에 산산조각 났다. 지난 8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으면서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한겨레>와 만난 전씨는 “‘기장의 말이 곧 법’이라는 사내 문화가 있다. 기장의 눈 밖에 나면 누구나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해고까지 당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전씨에게 조종사란 꿈은 절실했다. 전씨는 아랍에미레이트 국영항공사인 에미레이트항공 승무원 출신이다. 승무원 시절 비행기 조종석에 들어갔던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서른살이 되던 해, 그는 ‘조종사 되기 5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5년 동안 비행학교를 가기 위한 돈을 모으고, 목표한 금액이 모이자 비행학교가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2018년 6월 전씨는 에어서울 조종사로 합격했다. 그의 나이 37살이 되던 해였다.
전미순씨가 에어서울 항공기 앞에서 유니폼을 입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전미순씨 제공
하지만 절실함이 컸던 만큼, 누군가는 그런 그의 절실함을 이용했다. 전씨에 따르면 회사에서 기장은 ‘신’이었다. 조종사의 경우 항공사 입사 뒤 1년 동안 훈련생 과정을 거친다. 훈련생은 계약직 신분이다. 훈련생 시절 전씨는 훈련 파트장인 ㄱ기장으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ㄱ기장은 ‘본인의 자녀를 조종사로 키우고 싶다’며 나를 여러 차례 가족 모임에 불러냈다.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비행 시뮬레이터 센터에도 불러, 센터를 이용하는 고객이나 자신의 자녀에게 조종 방법을 가르치도록 했다.” 업무 외 지시가 10개월 가까이 지속되자, 참다 못한 전씨는 ㄱ기장에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전씨는 “이 사건이 (기장들의) 집단 따돌림이 시작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전미순씨가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있는 모습. 전미순씨 제공
“전미순은 질문이 너무 많아.” “전미순은 외국물을 너무 많이 먹었어.”
전씨가 기장들로부터 받은 지적이다. 기장에게 반기를 든 것을 시작으로 전씨의 모든 행동은 ‘문제’가 됐다. 전씨가 질문이 많다는 점, 영어를 할 때 발음을 굴린다는 점마저 지적의 대상이 됐다고 전씨는 말했다. 여성이란 전씨의 정체성도 지적 대상이 되기도 했다. “머리도 숏컷으로 자르고, 화장도 하지마라” “남자가 되라”는 요구를 하는가 하면, “여자면 더 악착같이 해야지”와 같은 성차별적 발언을 수시로 들어야 했다. 전씨는 “훈련생과 부기장은 ‘튀면 안 된다’는 사내 문화가 있다. 여성 조종사는 나 혼자이다 보니 내 목소리도 튀고, 내 생김새도 튀었다. 내가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전미순가 인터뷰하고 있다. <슬랩> 갈무리
기장의 ‘기강 잡기’가 도를 넘은 사건도 있었다. 2019년 7월 전씨가 부기장이 된 지 한 달쯤 됐던 때다. ㄴ기장은 “너(전씨) 때문에 쉴 수가 없으니 조종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별다른 설명도 없었다. 전씨는 3시간30분 가량을 이유도 모른채 “죄송합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청하며 자리에서 버텼다. 그러나 ㄴ기장의 화는 가라앉을 줄 몰랐고, 전씨는 어쩔 수 없이 40∼50분 동안 조종실을 떠나있어야 했다. 승객의 안전을 해칠 수도 있었던 일이라 판단한 전씨는 회사에 보고했지만, 별다른 조처는 없었다. 오히려 사내에선 ‘감히 부기장이 기장과의 일을 회사에 보고했다’며 전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결국 해고로까지 이어졌다고 전씨는 생각하고 있었다. 조종사는 수시로 자격심사제도를 받게 돼있는데, 심사 과정에서 차별 행위가 있었다는 게 전씨 주장이다. 그는 “승객을 태우고 진행하는 심사에서 심사관(기장)이 정상 비행에서와는 달리 지나치게 많은 요구를 했다. 또 왕복 비행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게 규정인데, 편도 비행만 평가한 뒤 탈락을 줬다. 왕복 심사한 것처럼 항공일지를 조작하는 일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에 민원을 넣었다. 국토부에선 회사에 재심사를 권고했고, 재심사에서 전씨는 또 다시 탈락을 받게 된다. 전씨는 “현행 자격심사제도는 ‘합법적으로’ 조종사를 부당해고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심사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회사 소속의 심사관은 사내 분위기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전씨의 신고를 받고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에어서울 쪽은 “해고 절차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에어서울은 고객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기량 부적격의 부기장을 인사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서는 “퇴사 뒤에야 보고돼 내부조사는 따로 없었다. 권익위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