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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독박육아’ 아내엔 “불만 쌓여” 남편엔 “가장의 무게”…문제적 자막

등록 2023-06-14 06:00수정 2023-06-14 09:35

서울YWCA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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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 9월 방영된 <한국방송>(KBS) 예능 프로그램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서 한 남성 출연자가 집에서 친구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 모습을 지켜본 패널들이 해당 출연자를 칭찬하며 “엄마야, 엄마” “우리 엄마도 이렇게 안 해 주는데” 등의 말을 했다.

#2. 지난해 9월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서는 여성 출연자가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한 남성 매니저에게 음료 한잔을 제공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자 ‘엄마처럼 스위트하게, 매니저를 자식처럼 챙긴다’라는 자막이 뒤따랐다. 매니저도 해당 출연자가 “엄마처럼 잘 챙겨주신다”고 강조했다.

인기 예능·오락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여성을 ‘돌봄’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등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와이더블유시에이(YWCA)는 13일 이런 내용이 담긴 ‘2022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채널 예능·오락 프로그램 가운데 지난해 6∼9월 방송콘텐츠 가치정보 분석시스템(라코이)에서 월별 종합 반응이 높은 상위 20개 프로그램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분석 결과, 이들 예능·오락 프로그램에선 여성 출연자를 향한 외모 평가나 성적 대상화와 같은 성차별 사례 21건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14건이 앞서 살펴본 ‘성별 고정관념 강화’ 사례에 해당했다.

한 예로, 지난해 10월 방영된 종합편성채널 <엠비엔>(MBN)의 <고딩엄빠2>에서는 남성 출연자가 ‘아내와 같이 일해서 전세금을 마련했다’고 말했는데도, 아파트 사진이 나오는 화면에 ‘남편의 피땀 눈물의 결정체’라는 자막이 달렸다. 또 남성 출연자에게 ‘성실한 남편에게 지어진 가장의 무게’라는 자막을 제시한 반면, 세 자녀의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는 여성 출연자가 나오는 장면에선 ‘지독한 독박육아로 불만이 쌓인다’는 자막을 달기도 했다.

보고서는 “가사노동은 부부가 함께 맡아야 하는 삶의 필수 노동”이라며 “가사를 혼자 전담하는 것에 대한 여성의 문제 제기는 ‘불만’으로, 남성이 노동을 해서 버는 돈은 ‘피, 땀, 눈물’로 강조하는 프레임은 성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젠더 기반 폭력(여성에게 신체적·성적·심리적 피해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폭력)의 심각성을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축소한 사례도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문화방송에서 방영된 <오은영 리포트 시즌2>에서 국제결혼 중개로 만난 여성 배우자에게 “내가 너를 사왔어”와 같은 폭언과 욕설을 하는 남성 배우자가 출연했다. 그런데 방송은 이 남성의 폭력성을 실직한 남성의 우울감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설명했다.

보고서는 “명백한 가정폭력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변명하고, 옹호하며, 합리화하는 시각을 방송에서 그대로 내보낸 것”이라며 “출연자의 사연은 성별과 인종 등에 기반한 불평등, 차별과 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언급하지 않은 채 남성의 정서적 우울감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성차별은 예능·오락 프로그램 출연자의 성비와 성별 역할에서도 드러난다. 20개 예능·오락 프로그램 출연자 529명 중 여성 출연자는 214명(40.5%)인 반면, 남성 출연자는 315명(59.5%)으로 더 많았다. 또 주 진행자(39명) 중 남성은 28명인 반면 여성은 11명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예능·오락 프로그램이 단순히 여성 등장 비율을 늘리는 것을 넘어 프로그램 안에서 여성이 평등하게 재현되고, 성차별을 재생산하지 않도록 방송 제작진의 더 민감한 성인지 감수성(성별로 인한 불균형을 이해하고 일상 속 성차별을 감지하는 민감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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