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ㄱ씨는 직장 상사인 팀장에게만 자신이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점을 밝혔다. 팀장에게만 어렵게 한 말이었는데, 팀장은 여러 직원이 있는 자리에서 “ㄱ씨는 운전병 출신이잖아”라고 말해버렸다. 동료들에게 ㄱ씨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아우팅’(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 정체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해버린 것이다. ㄱ씨는 “얘기를 하더라도 내가 직접 해야지, 그런 식으로 밝혀지는 것은 정말 원치 않았다”며 힘들었던 경험을 전했다.
성소수자 10명 중 6명은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ㄱ씨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아우팅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 등 6개 인권단체 네트워크인 퀴어노동권포럼이 지난 5월1~22일 직장생활 중인 성소수자 4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4.1%가 ‘일터에서 누구에게도 커밍아웃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고 최근 밝혔다. ‘친한 동료 일부(1~4명)에게만 밝혔다’는 답변은 25.3%였다.
응답자들은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 답답한 순간으로 ‘성소수자임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할 때’(66.8%), ‘연애나 결혼 질문을 받을 때’(64.3%) 등을 꼽았다. 응답자 ㄴ씨는 “회사에서 밥을 먹거나 연휴·휴가와 관련된 일상들을 나눌 때 애인과 함께 한 일들을 매번 친구(와 함께 했다)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매우 피로하고 소모적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 등 6개 인권단체 네트워크인 퀴어노동권포럼이 지난 5월1∼22일 진행한 ‘이런 직장이라면 커밍아웃한다’ 설문조사 결과 요약. 서울노동권익센터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기 위해선 ‘소수자 친화적 직장분위기’(48.4%)가 필요하다고 가장 많이 꼽았다.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했다는 ㄷ씨는 “직장 광고용 전광판에 ‘차별금지법’이 쓰여 있었다. 그런 분위기와 감수성, 정치적 표현이 거리낌 없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편하게 저를 드러내고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동성 배우자와의 결혼식, 신혼여행 휴가 보장’(33.2%),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명시된 사내 규정’(30.1%) 등과 같이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제도의 필요성도 꼽았다.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다는 성소수자 직장인 ㄹ씨는 “과거 미국계 회사에 다닐 때는 친한 동료들한테는 거의 커밍아웃을 했다. 사규에 성소수자 차별금지가 명시돼 있어서 참 안심이 됐다”며 “한국 회사는 갈 길이 먼 것 같다”고 말했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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