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의 노출 사진을 동의 없이 판매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성인화보 업체 ‘리히’가 다른 성인화보 업체에 비해 모델과 ‘불공정’한 계약을 맺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동의 없는 사진’ 유포 자체로도 위법 소지가 있는데다, ‘계약서 대로 했다’는 리히의 계약마저 불공정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25일 리히와 다른 성인화보 업체 두 곳의 모델 촬영 계약서를 비교했다. 먼저, 촬영물 저작권이 업체에 있다는 점은 리히를 포함한 성인 화보 제작사 모두 공통적이었다. 하지만 리히와 다른 업체와의 계약서는 모델 권리 보장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리히는 화보 판매 전, 모델에게 촬영물을 미리 확인하거나 수정·삭제 요구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으나, 다른 업체 두 곳은 모델의 권리를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예를 들어, 리히가 모델들과 맺은 계약서에는 공통적으로 “모델의 최종제작물에 대한 확인 요청이 없는 경우에도 을(모델)은 발매 이후 최종결과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쓰여있다. 뿐만 아니라, 모델이 업체에 최종제작물을 확인 요청했을 때도, 촬영물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조항이 없다. 리히의 계약서엔 모델의 사진 수정·삭제 요구 권한이 아예 없는 것이다.
리히와 계약한 한 모델의 계약서 중 일부. ㄱ, ㄴ, ㄷ 모델의 계약서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문항이다.
그에 반해 다른 성인화보 업체들은 이미 판매 중인 사진이라 하더라도, 모델에게 사진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ㅁ업체는 “을이 문제를 제기한 사진은 추가 보정을 하거나 혹은 삭제해 을이 최종 확인을 마친 사진에 대해서만 사용하도록 한다”고 계약했으며, ㄹ업체도 “을(모델)은 웹화보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180일이 지난 후 판매중지를 요청할 수 있다”, “부득이 삭제가 필요한 경우 환불금액의 2배를 갑(업체)에게 배상한 후 이를 삭제할 수 있다“고 했다.
촬영물 사용 기한에 대해서도 리히와 다른 업체 두 곳의 계약 조건은 차이가 났다. 리히의 경우, 아예 사용 기한에 대한 언급이 없어 리히가 모델과의 계약이 끝난 뒤에도 사실상 ‘무제한’으로 촬영물을 판매·활용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ㅁ업체는 “(촬영물) 판매권은 각 촬영 일자로부터 2년으로 제한”한다고 기간을 제한했으며, ㄹ업체도 요청이 있으면 계약 뒤에도 판매 중지와 삭제를 요청할 수 있었다.
리히와 달리, 다른 성인화보 업체들이 모델에게 촬영물에 대한 권리를 적게나마 보장하는 이유는 노출이 많은 성인 화보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계약서와 무관하게 촬영물이 동의 없이 판매·유포될 경우, 형사적으로 성폭력처벌법상 불법촬영물 판매죄에 해당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모델 표준계약서에서 모델의 ‘노출 작업 결과물 유출’에 대한 작가의 주의 의무를 명시한 부분.
문화체육관광부의 모델 표준계약서는 모델에게 사진 유포를 거부할 권한이 명시하고 있다. 특히 노출 사진에 대해서는 “노출을 포함한 모델 업무의 경우, 작가는 작업 결과물이 대외적으로 공개 또는 유출되지 않도록 별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등 모델 보호 의무까지 포함하고 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