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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미국 상당수 주에선 가정폭력때 체포의무

등록 2017-10-24 11:26수정 2017-10-24 11:28

[밥&법] 가정폭력처벌법 제정 20년
미네소타주 등 ‘덜루스 모델’ 정착
법원·검경·민간기관 함께 사후관리
주거지서 퇴거조처뒤 지속적 관찰
미국 미네소타주 둘루스시 새인트루이스카운티법원의 모습.
미국 미네소타주 둘루스시 새인트루이스카운티법원의 모습.

미국 여성폭력방지법(VAWA: The Violence Against Women Act)이란?

미국은 1994년 여성폭력방지법을 제정해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 포괄적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사법 체계를 꾸리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연방법으로 명시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여성을 위한 안전한 가정, 여성의 민사상 권리, 여성의 동등한 재판, 매맞는 이민여성과 아동보호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2013년 이후 가정폭력방지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동성애자, 성전환자, 원주민, 이민자에게까지 확대했다.

“집에 갈 수 있게 해달라. 지금 자동차에서 살고 있다.”

지난 17일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의 지방법원. 몇 달 전 아내를 폭행해 경찰에 체포되고 법원에서 주거 퇴거 명령(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남편 사이먼 스내드커는 이렇게 요청했다. 남편의 폭행 이후 홀로 다섯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아내도 아기를 안고 법정에 참석했다. 아내 제시카 스내드커는 “남편은 같이 있을 때 폭력 징후를 계속 보이는 사람이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이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며 남편의 퇴거 명령 철회를 거부했다.

법원은 미네소타주 가정폭력법에 따라 남편 사이먼이 이따금씩 자녀를 정기적으로 만나도록 명령했지만, 사이먼은 지난달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자녀를 만나지 않고 있다.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사이먼이 자신의 주거 퇴거 명령을 철회해달라고 계속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사는 사이먼에게 자녀들과의 면접 교섭 명령을 이행하라고 거듭 강조하고, 다음달 ‘다이프’(DAIP·가정폭력 개입 프로그램 센터)에서 자녀와 만날 날을 지정해줬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포크 가수 밥 딜런의 고향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 인구 8만6천여명의 작은 도시인 이곳은 1982년 가정폭력 경범죄 폭행을 의무적으로 체포하는 정책을 미국 최초로 채택한 지역이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는 배우자(데이트 관계 포함) 뺨을 때리는 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진술만으로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상당한 근거를 인정해 경찰은 가해자를 체포해야 한다. 가해자에게는 주거 퇴거 명령 같은 피해자 보호 조처가 내려진다. 메리 애즈머스 덜루스시 검사는 “대부분 가정폭력 사건을 기소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미국 미네소타 덜루스시 가정폭력개입프로그램(다이프·DAIP) 센터 정문.
미국 미네소타 덜루스시 가정폭력개입프로그램(다이프·DAIP) 센터 정문.
이 지역은 사법당국과 민간기관의 협력 체계도 공고하다. 법원이 가해자 재교육과 면접교섭, 피해자 지원까지 사건 해결을 위한 이행명령을 내리고 이행명령을 집행할 민간기관을 정해준다. 민간기관에서는 가해자 재교육, 면접교섭,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해당 기록을 법원에 보고한다. 경찰과 검찰 등은 반드시 민간기관과 수사 정보까지 교류하며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진행한다. 이런 민관 협력 체계와 탄탄한 피해자 지원 체계는 ‘덜루스 모델’이라 불리며 미국 전역에 수십년 동안 벤치마킹돼 왔다. ‘덜루스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70년대 이 지역 시민사회의 노력이 존재한다. 당시 여성운동가 엘런 펜스는 가정폭력 범죄에서 의무체포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재범률을 비교한 참여관찰 연구를 진행했다. 그 뒤 의무체포의 효과성을 입증해 덜루스 경찰청장에게 ‘의무체포제’를 정책으로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1980년에는 미국 전국경찰서장회의에서 경찰이 가정폭력을 중재하기보다 가해자를 적극 체포해야 한다는 권고안이 채택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네소타주의 형사소송법에 가해자 의무체포 조항이 포함됐고, 현재 미국 상당수 주에서 가정폭력 가해자를 의무적으로 체포하는 ‘체포 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덜루스시 가정폭력개입프로그램(다이프·DAIP) 면접교섭센터의 모습.
미국 미네소타 덜루스시 가정폭력개입프로그램(다이프·DAIP) 면접교섭센터의 모습.
덜루스 모델의 힘은 무엇보다 민간기관의 역할에서 나온다. 법원은 주거에서 퇴거된 가해자에게 다이프 면접교섭센터에서 자녀를 만나도록 명령한다. 가정폭력 가해자를 피해자와 분리하지만 가해자가 자녀와 보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 기관은 가해자 친권을 보장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 안전을 위협하는 발언 등을 하면 이를 모니터링해 법원에 보고한다. 양육권을 상의하는 사무공간을 법원에 설치하는 수준인 한국의 면접교섭센터에 견줘 민간기관의 역할이 매우 크다. 신상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우리나라는 가해자가 퇴거 조처를 받지 않아 피해자가 쉼터로 나와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우리나라도 가해자에 대한 퇴거 조처를 강력히 시행해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를 확실히 하고, 피해자는 외부가 아닌 자신의 집에서 보호받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덜루스에서 민관 협력 사법체계가 가능했던 이유로 판사와 검사장이 시민 투표로 결정되는 선출직인 점을 꼽을 수 있다. 가정폭력을 수사하는 14명의 검사와 함께 일하는 마크 루빈 검사장은 “나는 선출직 검사가 시민에게 더 책임감을 강하게 느낀다고 생각한다. 시민이 보고 있기 때문에 상황마다 옳은 판단을 하고, 민간과 협력하게 하는 동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덜루스/글·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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