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여성가족부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서울시의 방조 혐의 등에 대해 다음주 중 서울시 현장점검에 나선다고 23일 밝혔다. 성평등 정책 관련 주무부처임에도 피해자 보호 조치가 미흡하고, 고위공직자의 잇따른 성범죄에 대해 책임 있는 조처를 내놓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사건 발생 2주 만에 뒤늦게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앞서 여가부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이 알려진 지 닷새 만인 14일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며, 피해자를 ‘고소인’으로 지칭하고 ‘서울시가 요청할 경우’에 한해 “‘성희롱·성폭력 근절 종합지원센터’를 통해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컨설팅을 지원하겠다”고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정옥 장관은 딱 한차례 “2차 피해가 우려스럽다”고 한 걸 제외하면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가부의 잇따른 ‘뒷북’ 조처와 소극적인 태도는, 2년 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미투 고발 때에 비춰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당시 여가부는 보도 바로 다음날 ‘충청남도를 대상으로 직접 특별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한테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적극 제공한다고도 했다. 정현백 당시 여가부 장관은 직접 나서서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여가부의 이런 변화를 “지난해 20대 남성의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고 ‘젠더’ 이슈가 그 원인으로 꼽히자 어떤 논란도 일으키지 않을 만한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여성비하 논란이 있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건의했던 정 전 장관과 이 장관은 ‘결이 다른’ 인물이란 설명이다. 이 장관 발탁 당시 여성계에서조차 “의외의 인물”이란 평가가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권 인사의 성비위에 여가부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걸 청와대가 불편해했다는 주장도 있다. 여가부 내부에선 “2년 전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 이후 피해자를 지지한다는 논평을 낸 뒤 청와대가 이를 문제 삼자, 대변인이 경위서를 써야 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여가부의 협소한 조직 규모와 제한적인 권한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성별에 기반한 폭력과 차별이 여전히 만연한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존립 목적조차 흔들리면 안 된다. “여가부는 남성혐오적이고 역차별적인 제도만 만들어 예산을 낭비하므로 폐지하라”는 무분별한 주장이 ‘국회 청원’이라는 이름으로 10만명의 동의를 얻는 현실을 바꾸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여가부가 우선 스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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