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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영상 그뒤] 1년8개월 전 환호했던 이들의 간절한 12월

등록 2020-12-13 11:01수정 2020-12-13 14:15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영상 속 그들
“12월31일 ‘낙태죄는 없다’ 외칠 수 있기를”
2019년 4월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시민들이 환호했다. 한겨레는 1년8개월이 지난 2020년 12월, 환호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봤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9년 4월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시민들이 환호했다. 한겨레는 1년8개월이 지난 2020년 12월, 환호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봤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판결이 나왔다고 합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모두 승리를 외쳐주십시오. 낙태죄는 위헌이다! 뜨겁게 서로 안아주십시오.”

2019년 4월11일의 함성을 기억한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많은 이들이 얼싸안았다.

형법 ‘낙태의 죄’ 제 269조 1항이 헌법불합치로 결정됐을 때 시민들은 66년 만에 낙태죄가 폐지됐다고 환호했다.

2020년 말까지는 임신중지를 이유로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새 법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안갯 속 상황이다. 정부는 낙태죄 조항이 그대로 남아있는 법을 입법예고했다. 이를 심사하는 국회가 어떤 결정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헌재 앞 상황을 찍은 영상과 사진에 등장했던 이들이 다시 힘을 내자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겨레TV [영상+]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순간, 헌재는 환호로 가득찼다

▶나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대표

2019년 4월11일 이후 제 책상 앞에는 ‘20190411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라는 문구의 손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낙태죄 완전 폐지의 요구에는 사회경제적 상황도, 자신의 건강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오로지 혼자서만 감당해야 했던 여성들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그날 2012년 11월에 시술 도중 사망한 19살 여성의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사건이 저에게 낙태죄 폐지를 꼭 이루어야 할 부채감처럼 남아있다고 이야기 했었는데요.

다시는 상담을 할 사람도, 시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헤매다 결국 다른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거나 건강을 해치는 여성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 또 하나의 장벽을 넘어야 할 시간이지만 국내외의 변화들을 보면서 사실상 낙태죄 폐지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올해 12월31일에 다시 한 번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고 다같이 모여 외치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면서요.

▶제이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장

당시 헌법재판소 선고 직후에 ‘더이상 낙태죄는 없다’는 환영 집회를 열었다. 그 때도 사실 완전한 끝은 아니며 앞으로 법 개정 작업이 남아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더이상 낙태죄는 없다’고 한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임신중지 처벌법의 위헌성을 분명히 짚고 있었다.

헌재 선고를 이끌어내기까지 오랜 시간 수많은 여성들과 지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 노력이 있었다. 국회와 정부로 공이 넘어간 것인데,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정부는 처벌유지안으로 결과를 퇴행시켰다. 임신 주수 제한을 만든 채 이를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는 낙태죄 전면 폐지라는 새로운 출발선을 당장 당겨오는 데에 소극적이다.

활동가로 일하며 임신중지 관련 상담을 많이 받았다. 낙태죄로 고발하겠다는 협박을 받는 분들도 있었고, 국민으로서 이런 경우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전무하다는 것에 놀라고 분개하여 연락주신 분도 있었다. 안전한 병원을 찾으려는 경우도 다수였다.

이런 상황이 개인의 문제로 흩어질 게 아니라, 낙태죄로 인한 국가적 폭력의 결과라는 것을 많은 여성들이 함께 이야기해 왔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이들은 이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은 낙태죄의 전면 폐지를 요구하며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이제는 임신중지에 대해 허락과 처벌의 기준을 씌울 것이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 체계를 구축할 방안을 찾고, 여성들 각자의 몸과 삶에 대한 온전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변화는 이미 도래해 있다고 느낀다.

▶류민희 낙태죄 헌법소원 대리인단

2019년 4월11일의 환희를 뒤로 한 채 임신중지 접근성을 제한하는 퇴행적인 정부 개정안이 올해 10월 발의되었다.

입법기한 1년 8개월을 허비한 채 이렇게 2020년 12월이 왔다. 한국 여성들은 이 정당한 권리를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고 오히려 처벌의 위험에 시달렸다.

다가올 2021년에는 안전한 임신중지 접근과 지원을 고민하는 법과 정책을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 이것은 높은 기준도 아니고 그저 평등의 출발일 뿐이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

50대인 저와 제 또래 동료들은 지난해 4월11일, 헌재 앞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포토라인을 내어주고 여성운동 현장에 오래 있었던 언니와 뒤에서 지켜봤어요. 한 발 옆에 서서 과거를 회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피임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던 우리 세대를 이야기 하며 ‘우리 때는 정말 무식하게 살았어’ 이러면서요.

저는 2012년 헌재가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릴 때도 헌재 앞에 있었습니다. 2012년과 지난해 헌재 앞은 풍경이 달랐습니다. 미투운동의 영향으로 여론이 달라진 것이죠. 그간 낙태죄 폐지 이슈가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다가 페미니즘 리부트로 인해 전면에 드러났습니다. 우리 세대 땐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던 ‘낙태죄’를 지금은 ‘전면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적극 나올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었어요. 과거에는 형법에서 낙태의 죄를 빼자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조차 하지 못하고 모자보건법 낙태허용사유에 사회경제적 이유를 추가하라는 소극적 운동을 했었어요.

7년 사이 낙태죄 폐지운동은 대중운동이 됐습니다. 젊은 2030 영페미그룹이 당사자가 되어 ‘낙태죄 전면 폐지’로 의제를 확 밀어부쳤습니다. 여성운동이 자신감을 가진 것이고, ‘낙태죄’를 대중 여성의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된 것이죠.

2012년과 2019년 헌재 앞의 풍경에서 폐지운동의 당사자 여성들이 2030 영페미그룹으로 바뀐 것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반갑고 기분 좋았습니다.

싸우는 당사자와 싸우는 내용이 진전한 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호주제 폐지를 가지고 유림과 싸워야했습니다. 지금은 정치적으로 세력화되어 있는 사람들과 싸우고, 안건이 정치 안으로 넘어와서 국회에서 싸웁니다.

페미니즘이 정치의 영역으로 와 본격적으로 권력기관과 싸우는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밑에서 수다처럼 이야기해온 것들을 공론의 장으로 가지고 올 수 있게 된 것이죠. 최근 비혼출산 논쟁처럼 앞으로 재생산권 관련 다양한 담론들이 더 많이 충돌 할 것인데, 앞으로 더 많이, 더 지혜롭게, 함께 싸워나갑시다.

▶조미경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2019년 4월11일, 헌재 앞에 가지 못했던 장애여성들을 대표해 말합니다.

국가의 인구정책 기조에 따라 여성의 몸과 삶을 통제하고 동시에 장애인은 태어나지 말아야 될 생명으로 선별해왔던 모순적이고 폭력적인 긴 역사는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성과 재생산 정의를 위한 염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낙태죄 헌법불합치라는 하나의 산을 넘었던 순간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역사를 퇴행시키며 여전히 낙태죄를 존속시키기 위해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내놓았고 국회는 2020년 12월31일을 앞두고 무책임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장애여성운동가로서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지난 국회 공청회를 비롯하여 장애인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치인이 낙태죄를 존치하기 위해서 장애인의 생명을 동원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결정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게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고 육아를 해나가며, 안전하고 접근가능한 의료서비스와 사회적 지원 체계안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성과 재산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함께 끝까지 투쟁합시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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