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 서울 지역 예선을 진행하는 ‘뷰티한국’이 참가자의 돈과 인맥이 개입할 여지가 큰 유료 인기투표를 진행하면서 과열 경쟁 우려가 일고 있다. 지난해 처음 열린 키즈 코리아는 6∼13살 여성 어린이를 연령별로 키즈·칠드런·프리틴 3개 분야로 나눠 진·선·미를 선발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성 상품화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하게 됐어요.”
ㄱ씨 딸은 지난 9일 치러진 미스코리아 서울 지역 예선에 출전했다. 딸은 나중에 취업할 때 미스코리아 경력이 도움될 지도 모른다고 아빠를 설득했다. ㄱ씨는 경험 삼아 출전하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허락했다.
경험의 대가는 컸다. 주최 쪽은 ‘미스 서울’을 뽑을 때 4월23일~5월8일 진행한 ‘모바일 인기투표’ 결과를 반영했는데, ‘유료 투표’ 기능을 열어놨다. 이런 탓에 많은 참가자가 돈을 들여 자신에게 투표하는 과열 경쟁 양상이 빚어졌다.
ㄱ씨도 여기에 휩쓸려 수십만원을 내고 딸에게 투표했다. “말이 인기투표지 돈과 인맥이 있으면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언론에서 미스코리아 대회를 성 상품화 행사라고 비판할 때 정확히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여성의 외모를 전시해서 돈을 끌어모으는 것, 그게 성 상품화가 아니면 뭐가 성 상품화겠냐.” ㄱ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올해로 65회를 맞는 미스코리아 대회는 줄곧 성 상품화 이벤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주관사인 한국일보·글로벌이앤비(E&B)는 이런 의견을 받아들여 미스코리아 대회를 미인대회가 아닌 ‘글로벌 여성 인재 발굴대회’로 탈바꿈하려 시도했다. 대표적인 시도가 수영복 심사 폐지다.
그러나 지난 9일 미스 서울을 뽑는 지역 예선 대회에서 수영복 영상 화보가 등장했다. 이번엔 유료 인기투표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추가로 나왔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 인재를 뽑겠다면서, 참가자의 경제력·인맥이 상당한 변수로 작용하는 유료 인기투표를 심사 기준 중 하나로 사용한 셈이다.
유료 인기투표는 대회 본선이 아닌 일부 지역 예선에서 진행한다. 지역 예선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주목도도 높은 미스 서울 대회는 유료 인기투표 방식을 적용했다.
미스코리아 서울 지역 예선을 주관하는 ‘뷰티한국’은 지난해부터 앱 ‘랭킹스타’를 통해 모바일 인기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진·선·미 선정에 반영하고 있다.
뷰티한국이 운영한 모바일 인기투표 앱 ‘랭킹스타’ 화면. 취재가 시작되자 돌연 운영이 중단됐다. 앱 랭킹스타 화면 갈무리
문제는 인기투표 결과에 돈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투표를 하려면 ‘표’ 기능을 하는 포인트가 있어야 하는데, 이 포인트는 무료와 유료 두가지 방법으로 구할 수 있다. 매일 로그인하면 출석체크로 50포인트, 광고를 보면 10포인트를 준다. 매일 손도장을 찍지 않아도 돈을 쓰면 포인트를 살 수 있다.
뷰티한국이 운영한 모바일 인기투표 앱 ‘랭킹스타’ 화면. 취재가 시작되자 돌연 운영이 중단됐다. 앱 랭킹스타 화면 갈무리
앱에는 일종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100포인트=1000원이고, 300·500·1000·2000포인트 단위로 유료 충전할 수 있다. 또 대회 협찬사 제품을 구매해도 일정 금액의 포인트가 지급된다. 단, 하루에 1000포인트 한도 내에서만 투표 할 수 있다.
올해 미스 서울 대회 모바일 인기투표 1위를 차지한 참가자는 260만211포인트를 받았다. 전액 유료 충전한 포인트라고 가정하면 2600만원어치에 이르고, 절반만 유료 포인트라고 해도 1300만원 어치다. 미스 서울 참가자 32명은 적게는 20만포인트, 많게는 260만포인트를 얻었다. 모바일 인기투표 1위를 한 참가자는 미스코리아 서울 미, 2위는 미스코리아 서울 진에 선정됐다.
주관사는 유료 투표 과열을 대비한 최소한의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 무료 포인트에 가산점을 주는 등의 장치를 넣지 않은 것이다. 돈을 써 포인트를 얻으려는 경쟁은 과열됐고, 적지 않은 참가자가 제 돈을 내고 포인트를 샀다고 한다.
지난 9일 오후 6시 유튜브 채널 <뷰티 한국>서 생중계 된 ‘2021 미스코리아 서울 예선’장면. <뷰티 한국> 유튜브 채널 갈무리
과거 미스 서울에 출전했던 ㄴ씨는 “아무리 친한 지인이어도 돈까지 써서 나에게 투표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민망해서 일단 수백 포인트를 산 뒤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투표 버튼만 눌러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ㄴ씨는 “모바일 인기투표 결과가 진·선·미 선발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를 보여주는 정량지표 같은 것도 없고, 대회 후에도 어떤 부분이 부족해서 순위권에 들지 못했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참가자들이 순위가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인기투표 결과에 목 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스 서울 대회 주관사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키즈 코리아’ 대회도 운영한다는 점이다.. 미스 서울 대회와 마찬가지로 모바일 인기투표를 진행한다. 지난해 분야별 1등은 약 70만표 정도를 얻었다.
이 대회에 자녀를 참가시킨 ㄷ씨는 “아이가 탈락하면 그걸 지켜보는 부모 입장에서는 속이 상하니까 아무래도 과열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키즈 코리아 대회는 그나마 투표비가 저렴한 편이고, 다른 어린이 미인대회는 더 비싸다. 나는 최고 40만원까지 써봤고, 주변 엄마들 얘기 들어보면 100만원까지도 쓰는 것 같더라”고 했다.
<한겨레>는 ‘뷰티한국’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했으나,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