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결혼 6년 차 워킹맘입니다. 남편은 저보다 3살 많고 그도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여기까진 흔한 맞벌이 가정으로 보이지요.
저는 남편의 호탕하고 유쾌한 성격에 끌려 다른 면은 뒤로하고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술자리가 일상인 편입니다.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해온 저는 육아가 일보다 힘들었습니다. 아이 돌봄 대부분을 제가 맡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생각하며 이젠 그럭저럭 적응했습니다. 최근 남편은 직장 일에, 육아, 집안일 등 스트레스가 크다며 친구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져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퇴근 후 집안일을 모두 마친 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운동을 하러 갑니다. 저의 유일한 취미 생활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부 싸움을 하며 남편이 그럽니다. 자기가 바라는 건 자유로운 술 약속과 부부 관계인데, 이 모두를 제가 못하게 하니 숨이 막혀 살 수가 없고 자살 충동이 일어난다고요. 남편은 제가 자기를 분노로 몰아간다며 탓했습니다.
큰 싸움을 한 뒤 저희는 몇 달 넘게 한 집에서 남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방도 따로 씁니다. 남편은 화해하면 가사 분담을 다시 해야 하니 오히려 이게 편하다고 합니다. 저도 서로 오해를 풀려고 깊은 대화를 나누면 결국 싸움으로 끝나니 지금은 이렇게 지내는 게 안정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그는 어김없이 약속이 있다며 문자로 통보를 해오네요. 답답한 워킹맘
A. 인간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호탕하고 유쾌한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이기적인 태도와 술자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이 숨겨져 있었고, 남들 보기엔 아이 하나 키우는 평범한 맞벌이 가정이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절과 고통이 자리하고 있네요.
자, 먼저 굳이 과거의 잘못을 따져볼까요. 애초에 이 결혼은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호탕하고 유쾌한 성격에 끌린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자유로운 술 약속과 부부 관계’가 결혼생활에서 바라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당신이 결혼을 감행한 것이 크나큰 오류이고 잘못이지요. 가사 분담조차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뻔뻔하고 이기적인 남자를, 왜 그때는 알아보지 못한 걸까요? 한 가정을 이루고 살 사람이라면, 어떤 가정을 만들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서로의 생각을 종합적으로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연애할 때,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절대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 당시의 무언가가 나의 종합적인 판단을 가로막고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진행하게 했겠지요.
그럼 이제 현재로 돌아와 지금은 어떤 오류가 있는지 따져볼 시간입니다. 자유로운 술 약속과 부부 관계를 원하고, 가사 분담을 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해서 냉전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과 거짓된 안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 스스로 진지하게 물어보세요. 서로를 이해하지도, 응원하지도, 배려하지도 않는 사람과 그저 한집에서 사는 것으로 정말 괜찮으신가요? 많은 부부가 곪을 대로 곪은 관계에도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아이를 한부모 가정의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이 두려워, 이혼 경력을 떠안는 것이 두려워 이혼을 감행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결정이 두렵다면 적어도 모든 방법을 동원해 노력해야 하지 않나요? ‘오해를 풀려고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해보는 것’은,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진 사이에서 역효과를 부를 확률이 높지요. 더 골이 깊어지기 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기를 권해요. 그 과정이 힘들다 해도, 지금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도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떤 식으로든 선택하세요. 부부라는 형식만 유지한 채 남남처럼 살기로 결정하든, 부부의 관계를 끊어내기로 하든, 노력해볼 만큼은 해야 그 결정에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한 가지는 꼭 생각해 보세요. 화해하면 가사 분담을 해야 하니 이대로가 편하다는 말을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남편, 과연 내 아이에게 필요한 아버지이긴 한 걸까요? ‘너희 아빠랑 너무 이혼하고 싶었는데, 너 때문에 참았어’라는 어머니의 말이 아이의 인생에는 평생의 큰 짐과 상처가 된다는 걸 꼭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오류는 바로잡기에 너무 늦었지만, 현재의 오류는 바로잡을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역시,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헤르츠컴퍼니 대표)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고민이 생기셨나요?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채택된 사연은 익명으로 실리며, 추후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보낼 곳 : esc@hani.co.kr